퍼스트레이디,
그들만의 우아한 패션 코드 1편

Stories: Fashion and Queen

Stories: Fashion and Queen

퍼스트레이디, 그들만의 우아한 패션 코드 1편

(다이애나 스펜서 & 재클린 케네디)




한 나라의 수장인 대통령만큼이나 대중들의 관심을 받는 퍼스트레이디. 그들에게 패션은 국민의 지지와 연결되는 창구이자,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강력한 도구이기도 했다.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왕관의 무게를 묵묵히 견뎌내야만 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함께 살펴보자.




다이애나 스펜서(Diana Spencer):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사진에 찍힌 여성


최근 영화 <스펜서(Spencer)>의 개봉으로 다시금 주목받게 된 영국의 전 왕세자비 다이애나 스펜서.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사진에 찍힌 여성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그녀를 향한 세간의 관심은 상상을 초월했다. 왕실 사람이라면 응당 겪어야 할 일이었지만 그녀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나타나는 치열한 파파라치의 행렬은 세계적인 스타에 버금갈 만큼 굉장했다. 물론 다이애나가 이러한 주목을 받게 된 이유야 여러 가지 있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아마 그녀만이 품고 있는 독보적인 분위기와 탁월한 패션감각 때문이었으리라. 이를 그대로 재현한 다이애나 역 '크리스틴 스튜어트(kristen Stewart)'의 영화 스펜서 속 의상들은 거의 20년이 지난 현재에도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세련된 룩이다.


ⓒtatler.com



왕세자비가 되기 이전의 그녀는 유모, 요리사, 유치원 보조교사 등의 일을 해온 평범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릴 적 친분 때문에 알게 된 찰스 왕세자와 핑크빛 염문에 휩싸이면서 그녀의 일상은 반전을 맞았다. 연애 기간 내내 언론의 끊임없는 질문 세례에 시달려야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집요한 추궁이 절정에 달할 무렵, 마침내 다이애나는 찰스의 청혼을 받아들였고 둘은 1981년 7월 29일 세기의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결혼식의 큰 스케일만큼이나 화제가 되었던 다이애나의 웨딩드레스는 총장이 7.6m나 되는 어마어마한 길이에, 은은한 아이보리빛의 최고급 소재로 제작되어 강력했던 왕실의 권력이 시각적으로 체감될 정도였다. 수줍은 미소를 한 다이애나의 모습은 TV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고, 당시 수억 명의 인구가 이 결혼식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bbc.com



그녀의 결혼식 이후, 순결함의 상징이었던 순백의 웨딩드레스 대신 옅은 아이보리 빛의 드레스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다이애나의 드레스는 당시 부부 디자이너로 활동했던 데이비드 & 엘리자베스 에마뉘엘이 오직 그녀의 결혼식만을 위해 제작한 세상에 하나뿐인 것이었다. 거대한 퍼프소매와 큰 리본 장식은 80년대 초 패션 스타일을 잘 반영한 디자인이었다.



ⓒharpersbazaar.com



고상함을 강요받는 왕족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이애나의 일상복은 발랄하고 진취적이었다. 산뜻한 컬러의 스웨터와 오버사이즈 스웻셔츠, 바이커 쇼츠 등 2023년인 지금 당장 입고 나가도 어색함이 없을만한 아이템들이 즐비하다. 또한 블레이저와 진, 볼캡 등은 2021년 CELINE의 SS 런웨이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스타일리시하다. 이에 매치한 카우보이 부츠와 에스파듀, 플랫 슈즈, 스니커즈 등 활동하기 편한 슈즈는 왕실 생활로 우울감에 시달리기 전, 당차고 활발했던 그녀의 성격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듯 보인다.



5.jpg ⓒpeople.com




그녀가 이런 무한한 인기를 한 몸에 받게 된 건 오직 빼어난 외모뿐만은 아니었다. 공식 석상에서의 다이애나의 솔직한 연설은 상처받은 국민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져 주었고, 이는 곧 열렬한 지지로 이어졌다. 특히 HIV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개선하는 데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건 그녀의 큰 업적이다.


영국 최초의 에이즈 병동을 열었고, 접촉만으론 감염되지 않는다는 걸 알리기 위해 직접 에이즈 환우들과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하며 안전을 보장했다. 이는 곧 패션으로도 이어졌다. 당시 필수품이었던 장갑을 버리고 맨손으로 직접 그들을 맞이하거나, 붉은색 등 강렬한 원색의 의상을 선택하여 오랜 병동 생활에 심신이 지친 이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oprahdaily.com, ⓒabsolutelyimperfect.com
ⓒthepinknews.com




재클린 케네디(Jacqueline Kennedy):

재키 백의 귀환


재클린 케네디는 부유한 집안 출신답게, 기품 있는 에티튜드와 지성미로 냉소적인 미국인들의 마음을 단숨에 빼앗은 인물이다. 이미지가 워낙 좋았던지라, 당시 상원의원이었던 존 F. 케네디의 대통령 당선에 높은 기여를 했다고도 여겨진다. 사실 그녀는 영부인이 되기 전부터 스타일 아이콘이 될만한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대학 시절 프랑스에서 유학을 한 경험 덕분에 유럽 패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던 데다가, 자연스레 여러 브랜드를 접할 기회 역시 많았기 때문이었다.



ⓒwmagazine.com



대학 졸업 후엔 기자로도 활동한 경력이 있는데, 바로 이런 면이 그녀의 지적인 능력을 돋보이게 했다. 결혼 후 백악관 입성한 뒤엔 역사와 예술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며, 당시 굉장히 남루한 상태였던 백악관을 복원하는 데에 많은 힘을 쏟았다.


과거에 관심이 없다면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을 것이다.


라는 말과 함께 각지에 흩어져 있던 백악관의 유물들과 가구들을 회수하고, 앞뜰에 위치한 로즈 가든(Rose Garden)을 전문 원예가에게 의뢰하여 새롭게 꾸몄다. 예술을 향한 그녀의 깊은 사랑은 이러한 행보들을 통해 국민에게 널리 알려졌고, 그녀의 미적 감각 역시 대중들의 신뢰를 받게 되었다.



9.jpg ⓒwmagazine.com



그녀가 퍼스트레이디로서 한창 활약하던 1960년대는 모자를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는 관습이 있었다. 모자를 쓰지 않고 외출을 한다는 것은 곧 속옷 없이 집을 나서는 일과 같을 정도였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재클린은 유난히 모자를 싫어했다. 왜소한 체구 때문에 모자를 쓰면 전체적인 신체 비율이 틀어져 버리기 때문이었다.


이런 그녀가 고민 끝에 선택한 모자는 바로 '필박스 햇(Pill Box Hat)', 이름 그대로 알약 상자의 모양을 닮아있는 평평하며 각이 잡힌 모자였다. 이 신중한 선택의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당시 유행과는 맞지 않는 고리타분한 모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거리엔 필박스 모자를 쓴 여성들로 넘쳐났으며, 재클린이 쓴 그대로의 형태를 흉내 내기 위해 일부러 구겨서 주름을 만들어내기까지 했다. 이른바 '재클린 효과'가 보란 듯이 증명된 것이었다.



ⓒgraziadaily.co.uk



'재클린 효과'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오버사이즈 선글라스와 7부 소매, 클래식 카멜코트와 파스텔톤의 투피스는 재클린이 즐기던 착장이었는데, 어느새 거리의 또래 여성들의 옷차림 역시 그녀와 비슷해져 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막강한 영향력을 단적으로 증명한 예는 바로 Gucci의 Jackie Bag이다. Gucci의 호보백을 든 재클린의 모습이 파파라치에 포착되면서 이 백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자 아예 공식적인 이름을 그녀의 애칭인 'Jackie'로 명명한 것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Jackie Bag에 얽힌 일화다.



29.jpg ⓒwmagazine.com
ⓒmilkxtw.com

Gucci의 Jackie Bag을 착용한 재클린 케네디



이토록 막강한 패션의 힘을 체험한 재클린은 이를 좀 더 현명한 방식으로 활용하기로 마음먹는다. 케네디의 해외 순방길에 동행할 때마다 자신의 패션 역시 함께 주목받는 걸 익히 알고 있었기에, 이를 친화적 소통의 한 창구로 열어두기로 했던 것이다. 그녀는 순방 시, 각 나라에 맞는 의상을 직접 제작해 착용하는 세심함을 보였고 그녀의 이러한 '패션 외교'는 양국의 시선을 집중시키며 찬사를 받았다.



ⓒwmagazine.com


2편에서 계속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jentestore 바로가기

keyword
작가의 이전글믿고 듣는 음악, 믿고 보는 패션 2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