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ies: Fashion and Queen
(그레이스 켈리 & 카를라 브루니)
한 나라의 수장인 대통령만큼이나 대중들의 관심을 받는 퍼스트레이디. 그들에게 패션은 국민의 지지와 연결되는 창구이자,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강력한 도구이기도 했다.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왕관의 무게를 묵묵히 견뎌내야만 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함께 살펴보자.
우리에겐 배우로서 더 친숙한 그레이스 켈리. “1950년대의 패션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레이스 켈리의 패션들을 참고하라”라고 조언할 만큼 그녀는 시대를 초월한 스타일 아이콘이다. 전형적인 미국의 부유한 중산층 출신이었던 그녀는 어릴 적부터 배우의 꿈을 품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왔다. 산뜻한 금발과 매혹적인 파란 눈. 우리가 서양 고전 미녀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미지였던 그녀는 이러한 외모 덕분에 모델로서의 커리어를 먼저 시작하게 되는데, 연기에도 워낙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던지라 곧 오랜 목표였던 배우로 쉽게 전향할 수 있었다.
시작은 눈에 띄지 않는 단역이었지만 그 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다. 1952년, 흑백 서부영화의 고전이라고 여겨지는 영화 <하이 눈(High Noon)>에서 주인공의 상대역으로 출연하며 인지도가 급상승했고, 이듬해 영화 <모감보(Mogambo)>로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된다. 세계적인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chcock)의 러브콜을 받을 정도로 그녀의 실력과 인기는 날로 급성장했으며, 이후 <다이얼 M을 돌려라(Dial M for Murder)>와 <이창(Rear Window)>과 같은 히치콕 감독의 대표 영화에 출연하며 훌륭한 필모그래피를 쌓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1954년, 영화 <갈채(The Country Girl)>에서 알코올 중독자의 헌신적인 아내 역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게 된다. 이처럼 훌륭한 외모와 강렬한 연기력까지 겸비한 그레이스는 단 5년간의 배우 생활 속에서 더없는 영광을 누렸으며, 배우뿐만이 아닌 한 시대의 아이콘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왼쪽) 영화 <하이 눈 (High Noon)>의 그레이스 켈리
(오른쪽) 영화 <모감보 (Mogambo)> 한 장면
(왼쪽)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Alfred Hichcock)과 함께.
(오른쪽) 영화 <갈채 (The Country Girl)>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 쥔 그레이스 켈리.
훗날 화보를 찍기 위해 모나코에 방문한 켈리는 왕실의 초대로 모나코 공 레니에 3세(Rainier) 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 우연한 만남은 훗날 켈리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게 된다. 켈리에게 첫눈에 반한 레니에의 열렬한 구애는 당시 탑스타였던 켈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만큼 화려하고 특별했으며, 그 열정 또한 꾸준했다. 영화 업계에서 성실하기로 유명했던 유망주 켈리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모나코의 왕비가 되길 결심했던 건 다 이러한 나름대로의 이유 때문일 것이다. 1958년, 일주일의 일정으로 진행된 결혼식은 엄청난 스케일로 전 세계를 이목을 끌었고,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디자인의 웨딩드레스 역시 화제가 되었다. 속이 살짝 비치는 레이스로 덮인 긴소매의 상의 부분은 노출 없이 우아한 실루엣을 드러냈고, 대신 아랫부분은 심플한 소재로 깔끔하게 처리하여 과함 없이 훌륭하게 밸런스를 맞춘 것이 인상적이었다.
켈리의 스타일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액세서리다. 그녀는 아마 에르메스 스카프를 벨트로 사용한 최초의 인물일지 모르니 말이다. 민소매 블랙 터틀넥과 화이트 테일러드 팬츠의 절제된 코디에 더해진 스카프 벨트 포인트는 그녀의 감각이 예사롭지 않음을 짐작케 한다. 또한 진주나 골드 액세서리와 함께 매치된 레드립 포인트는 아직까지도 많은 시상식에서 목격되는 조합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HERMES의 Kelly백을 빼놓을 수 없다. 고급 가죽을 다채롭게 가공하여 만들어진 Kelly 백은 오늘날 부의 상징으로 대표되는 아이템이다. 구하기도 어려운 데다, 장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만큼 심혈을 기울인 이 가방이 켈리의 이름을 갖게 된 건 바로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결혼 후, 곧바로 찾아온 임신에 그녀는 당황했고 볼록해진 배를 감추고 싶어 했고 그때 바로 이 Kelly 백을 유용하게 이용했던 것이다. 모피를 입은 그녀가 수줍은 미소를 띠며 Kelly백으로 배 부분을 가리고 있는 사진은 수많은 잡지에 실리며 HERMES의 매출을 올리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가방의 이름까지 그녀의 이름으로 바꾸어 버리는 '켈리 효과' 였다.
카를라 브루니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에서 활동하는 모델이자 싱어송라이터다. 2008년 프랑스 전 사르코지 대통령과 결혼하며 영부인의 삶을 살게 되었지만, 이미 그녀는 유럽 전역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두터운 팬층을 쌓아온 인기인이었다.
1986년, 19살의 나이에 모델로 데뷔하면서 미국을 제외한 영국, 이탈리아, 파리 Vogue의 커버를 장식할 만큼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가던 그녀는 90년대 VERSACE의 뮤즈로서도 활약하며 여러 디자이너들의 신임을 한 몸에 받았다. 강렬한 마스크와 눈빛, 시원시원한 포즈는 당대 함께 활동하던 여러 모델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으로 패션계에 특별한 인상을 남겼고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로 촬영장의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프로페셔널한 모델로 입지를 굳혔다.
90년대 VERSACE Runway, 90년대 VERSACE Runway
92년 PRADA Collection, 나오미 캠벨 (Naomi Campbell), 디자이너 지아니 베르사체 (Gianni Versace)와 함께
그동안 쌓아왔던 명성에 힘입어 1997년에는 가수 데뷔까지 결심하게 되는데, 그녀가 직접 작곡까지 참여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미모와 재능, 타고난 스타성을 모두 갖춘 최고의 싱어송라이터로 인정받았다. 2002년 발매한 1집 앨범은 20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리며 그녀를 향한 대중들의 사랑을 입증했으며, 2018년엔 한국에 직접 방문하여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처럼 성공적인 커리어의 연속이었던 카를라는 한편 화려한 남성편력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의 믹 재거(Mick Jagger)와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미국의 배우 케빈 코스트너(Kevin Costner)등 그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알 법한 남성들과 염문을 뿌리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그 중 가장 큰 스캔들은 바로 앙토방(Enthoven) 부자와의 일인데, 언론인인 아버지와 철학 교수인 아들 모두와 애정 관계였다는 충격적 사실은 그녀의 도덕성을 의심케 할 정도의 큰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를라는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며 프랑스 대중문화의 한 획을 그은 인물로 화자 되고 있다.
Quelqu’un m’a dit (2002), French Touch (2017)
카를라의 스타일은 모델이라는 커리어 덕분에 항상 주목을 받아왔다.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에 맞춰 유연하게 변화의 흐름을 탈 수 있었던 것 역시 그녀의 타고난 감각과 분위기, 또한 직업적인 측면에서의 강점이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그중에서도 심플한 스타일의 드레스는 카를라가 가장 자주 애용하는 아이템이었다. 화려한 장식 없이 몸의 라인을 드러내는 특징 덕분에 그녀가 가진 신체적 장점이 부각되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카를라의 패션은 최대한 덜어내는 쪽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강한 포인트나 여러 아이템을 조합하는 대신, 옷 자체의 컷과 실루엣, 그리고 소재에 집중했다. 또한 중립적인 컬러를 선호하여 전체적으로 과하지 않은 느낌을 연출하고자 했다.
카를라의 패션에서 인상적인 것은 자신의 위치와 상황에 따라 그에 딱 들어맞는 의상을 선택한다는 것에 있다. 모델에서 퍼스트레이디로 신분의 바뀌며, 그동안의 궤적을 지워내기 위해 우아하며 고상한 착장을 선보였으며 또한 현재까지 이어지는 싱어송라이터의 활동에선 음악 스타일과 걸맞은 전형적인 프렌치 시크 스타일을 지향했다. 이후에도 보헤미안, 락 시크 등 변화무쌍한 커리어만큼이나 도전적인 룩들과 함께 등장했고 이를 하나 같이 무난히 소화해 내며 전직 모델의 면모를 과시하였다.
최근 화제가 된 카를라의 2022년 칸 영화제에서의 라일락빛 드레스는 그동안 잠잠했던 패션계의 이목을 다시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2022년 Harpers Bazaar와의 인터뷰에서 이 드레스에 대해 한여름의 청량함과 인어공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밝히며, 패션에 대한 넘치는 상상력을 드러냈다. 또한 헤어와 메이크업을 거의 하지 않은 채로 레드 카펫에 당당히 나서 꾸밈없는 자연스러운 산뜻함을 더했다.
우리가 무엇을 입느냐는 곧 우리가 우리 자신을 돌보는 방법이나 다름없다.
카를라의 패션 철학이 더욱 빛나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퍼스트레이디의 패션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연적으로 대중의 시선에 노출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물론 이러한 이유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투표를 통해 우리 손으로 직접 선출한 리더의 곁에 가장 가까이 머무는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사진에 포착된 그들의 우아한 순간들은 마치 권력의 향기에 취한 듯 보일지 모르나, 그 안엔 항상 자신을 믿고 지지해 준 국민들에 대한 무한한 존중 역시 함께 담겨있음을 결코 잊어선 안될 것이다.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