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에게 '스톡홀름 어땠어?'라고 묻는다면, 나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너무 좋아. 스톡홀름은 나한테 딱 맞아! 스톡홀름에서 오래 살고 싶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톡홀름에서 내 인생 최대치의 스트레스를 받았다. 참 아이러니하지만 이런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도시를 그만큼 사랑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좋은 사람들을 많아 만났고, 그곳의 자연환경이 나와 잘 맞았기 때문이리라. 이번 편에서는 내가 지독한 스트레스를(뒤돌아보기만 해도 눈물이 날 지경이다) 겪고 마침내 깨달은 점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나의 스트레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구직 활동'이었다. 애초부터 나의 스톡홀름으로의 이동은 커리어 확장이었고, 목표 지향적인 나로서는 2년 안에 학업을 마침과 동시에 번듯한(내가 원하는 곳)에서 잡을 구해야 했다. 2년 안에 잡을 구한다는 것은, 최소한 1년 6개월 전부터 관심 있는 회사와 인터뷰 등 뭐든 이야기가 오고 가야 하고 1년 9개월 째부터는 최종 오퍼를 받고 비자 전환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스웨덴은 학교마다 job seeking 비자(학교 졸업 후 1년 간 job을 구할 수 있는 기간을 줌. 이 비자를 받으면 1년 동안 스웨덴에서 구직활동을 할 수 있다)를 주는 곳이 다른데, 아쉽게도 내가 졸업한 학교는 이 비자가 지원되지 않았다. 그럼 내가 구직 활동에서 받았던 스트레스에는 어떤 것이 있었고 어떤 깨달음이 있었는가.
1.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만들어요?
나는 포트폴리오라는 걸 단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었다. 요새는 꼭 디자인 전공자들이 아니어도 본인이 해왔던 일을 알기 쉽게 기술한 홈페이지 등을 만드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학부 통계학 전공에 이전에 이직 준비를 해본 적이 없어서 도대체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감이 서지 않았다. 구글 및 Medium 등 나의 직종과 관련된 사람들의 포트폴리오를 검색하면서 틀을 잡았고, 고치고 또 고치면서 만들기 시작했다. 중간중간에 포트폴리오 리뷰를 받았었는데, 깨달은 것은 리뷰해 주는 사람마다 코멘트가 다르고 결국 그 코멘트에서 중심을 잡는 것은 '나'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리뷰에서 나온 코멘트를 족족 수정해서 반영했었는데 그것을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면 그 사람들은 또 다른 의견을 내놓아서 내가 갈팡질팡 하게 되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 포트폴리오를 리뷰해 주는 사람들도 그들의 배경과 전문지식에 따라 결이 다르고 선호하는 방식이 다를 것이다. 결국 포트폴리오의 색깔을 정하는 것은 '나'이고, 리뷰를 받고자 하는 항목의 기준을 내가 나름 정해서 리뷰를 받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2. 벗어날 수 없는 링크드인의 굴레
구직 시장에서의 링크드인은 참으로 막강한 파워를 가졌다. 헤드헌터들이 지원자를 가장 먼저 서칭 해보는 것도 링크드인이고, 내가 관심 있어 하는 회사에 아는 인맥이 없을 때 가볍게 DM을 보낼 수 있는 것도 링크드인이다. 따라서 구직 활동을 하면서 링크드 인의 프로필을 잘 다듬어 놓는 것이 중요하다. 이 프로필을 어떻게 쓰느냐도 관건이라서 나는 이것을 기술하는 것에도 꽤 많은 시간이 들였다. 포트폴리오처럼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고, 이것 또한 내가 링크드인에서 나와 같은 직군의 사람들 것을 많이 참고했다. 그런데 프로필만 잘 기술해 놓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다. '이제 링크드인 프로필 윤곽이 좀 나왔네'하며 기뻐하며 손을 놨었는데, 주변을 돌아보니 링크드인에서 내가 '눈에 띄'려면 나만의 콘텐츠를 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고야.... 그렇다. 산 넘어 산이다. 링크드인 또한 네버엔딩 작업이었다. 나는 무슨 콘텐츠를 올려야 할까?를 고민하다가 포트폴리오에서 다 담을 수 없었던 나의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내가 현업에서 썼던 방법론을 잘게 쪼개서 시리즈 형태로 연재했고 그 외 내가 현업에서 힘들었던 점, 내가 나의 커리어를 바라보는 관점 등을 썼다. '글 쓰는 것'에 대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던 내가 대중을 상대로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나에게 매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더욱이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는 링크드인에서 내가 감히 이런 이야기를 써도 되는가에 대한 두려움도 무척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편 한 편을 완성하여 올릴 때마다 '아, 이번 주도 해냈다'라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고 글을 쓰면서 그 당시에는 하지 못했던 프로젝트에 대한 뒤늦은 reflection을 하며 내 업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할 수 있었다.
3. 네트워킹에서 날 구원해 줄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이 전 글에서도 밝혔지만, 나는 네트워킹이 제일 무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했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나를 스스로 쪼아댔는지 모른다. 나는 무엇을 해도 '고효율'이 가장 우선시되는 환경에 매우 적응이 되었던 사람이라, 처음부터 네트워킹에서 hiring에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을 만나 나를 어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다 보니 늘 긴장했고, 그 분위기를 전혀 즐기지 못했다. 네트워킹을 해 본 사람을 알 것이다. 네트워킹 자리에 나가서 한 번에 그런 '기회'를 잡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처음부터 그렇게 접근을 하다 보니 네트워킹의 자리가 부질없다고 느껴졌고, 에너지 소모적인 일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그런데 뒤돌아 보니 네트워킹도 한 번에 되는 것이 아니다. 네트워킹이야말로 사람과의 '관계'를 쌓는 일이기 때문에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었다. 문제는 나의 신분이 그런 여유를 가질만한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긴 했지만. 처음부터 나를 hiring 해 줄 사람을 만나겠다는 목표와 기대를 버리고, 그 자리에서 가볍게 이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인지 호기심을 갖고 대하고, 운 좋게 나와 관심사가 맞는 사람을 만났다면 나의 이야기도 좀 하며 친구를 만다는 생각이었다면 좀 더 그 자리가 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4. 클릭도 하기 싫은 "Thanks for your application...."
내가 몇 번의 apply를 했던가... 세 보지는 않았으나 일 년 동안 대략 30~40 여군데를 지원하지 않았나 싶다. 100여 개의 회사를 지원하고 고작 인터뷰 요청받은 곳이 4~5군데 밖에 없다는 분들이 넘쳐나는 요즘, 소박한 지원이긴 했지만 애초에 나는 무작정 다 돌리고 본다라는 전략보다는, JD(Job Description)를 꼼꼼히 읽어보고 내가 관심 있는 직무인지 나의 경력과 맞는 곳인지를 스스로 점검해 보고 지원을 했다. 그렇게 지원을 하고 나면 한동안 희망고문을 하며 '이 회사에 들어가게 된다면...'이라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리고 왠지 오늘은 인터뷰 요청을 받을 것만 같다가도 내일 되면 '아니야, 서류 탈락일 것 같아'라는 생각을 한다. 서류 심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이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된다. 정말 피가 말린다. 그러다가 "Thanks for your application.."이란는 메일이 오면 와르르 무너진다. 에이씨. 지금은 클릭하지 않아도 썸네일이 보이는 문구만 봐도 이게 탈락인지 합격인지 알 수 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2차 인터뷰까지 보고 최종 오퍼만 남긴 회사의 탈락 메일을 받았다. 많이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이 과정은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그래도 초반에는 내가 역량이 부족한가, 내가 뭘 잘못했지라며 내 안에서 원인을 찾으려 했으나, 지금은 '거기랑 나랑 fit이 안 맞는가 보다'하는 생각을 한다.
5. 내가 나를 말하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인터뷰
인터뷰의 가장 큰 스트레스는 '내가 그 사람들이 원하는 답을 못해주면 어쩌지?'라는 생각이었다. 초반 인터뷰에는 정답을 말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정답이 있는 프로젝트가 어디 있겠는가? 모르면 모르겠다. 그 부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정말 어려웠다. 사실 이 부분은 지금도 어렵다.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느낀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했던 일에 대해 얼마나 내가 깊이 생각하고 고민했으며, 그에 따른 결과에 내가 무엇을 배웠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즉, 나에 대한 reflection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야 내가 인터뷰할 때에도 좀 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6. 그놈의 비자
외국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비자'다. 아이들이 스톡홀름에 잘 적응을 하고 나도 이 도시가 나에게 잘 맞는다라는 생각이 들면 들수록 하루빨리 잡을 구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잡 마켓이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내 안의 나와 주변 사람들이 일단 비자를 받기 위해 '아무 잡'이나 구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을 했다. 나도 솔깃했다. 그래서 '비자만 지원해 준다면, 연봉이고 뭐고 아무 일이나 다 할게요'라고 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그 '아무 잡'도 경력이 있어야 하지 않은가? 해당 직무에 요만큼이라도 경험이 있는 사람과 아예 경험이 전무한 사람이 있다면 고용주는 어떤 사람을 뽑겠는가? 당연히 전자의 사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 잡'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 여기에 뭐 하러 온 거야? 단순 이민이야? 아니면 내 커리어를 위해 온 거야?' 단순 이민이었다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임금을 준다 해도 초기 정착을 위한 비자를 위해 일을 해야 했겠지만, 나는 내 업에 대한 열정이 있었고 성장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말도 안 되는 금액에 나의 커리어를 싹둑 잘라버리는 일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2년여 동안 고질적이었던 불면증이 더 심해졌고, 잠이라도 들었다 싶으면 악몽을 꾸었다. 내가 떨어져 죽는 꿈, 누군가가 나를 미치도록 쫓아오는 꿈 등등 안 꾸던 악몽에 시달리고 하루에도 기분이 100번씩 왔다 갔다 했다. 사람이 이렇게 잠을 못 자도 숨이 붙어있긴 하는 구나라는 생각도 들정도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때문에라도 내가 이곳에 꼭 취직을 해야지. 내가 취직을 하지 못하면 나는 아이들에게도 나쁜 엄마가 되는 거야.'라고 스스로를 얼마나 두들겨 팼는지 모른다. 인터뷰를 잘 해내지 못했던 날에는 내가 나에게 모진 말을 쏟아내고, 나를 경멸했다. 내가 정한 기한 내에 잡을 못 구한 나를 나 스스로가 용서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스스로에게 일말의 여지를 주지 않고 나를 가차 없이 몰아세웠다.
그래서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
나는 결국 한국에 돌아왔다. 돌고 돌아 깨달은 건, 내가 아무리 최선을 다했어도 어떤 일이 되기 위해선 내가 손 쓸 수 없는 어떤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시장의 상황과 운 같은 거. 그러니 죽을 만큼 최선을 다했으면 담담히 받아들이고 더 이상 나를 몰아세우지는 말자. 내가 나 다뤄지려면 조건 없는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나를 다시 충만하게 만들기 위해 일단은 좀 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