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킹' 말만 들어도 무섭다. 언어와 배경, 생김새까지 다른 사람들과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국에서 나고 자라서 대학교 졸업 후 공채로 입사를 한 나는 이 네트워킹 문화가 제일 어렵고 불편했다. 학교에서도 졸업생 및 업계 사람들을 초청해서 네트워킹 자리를 자주 만들어줬었는데, 나는 이 자리가 참 불편했다. 다들 손에는 음료수 한잔씩 들고 하하 호호 웃으며 이야기를 하는데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갈 만한 배짱도 없거니와, 설사 그 속에 껴 있더라도 입 한번 떼기 어려웠다. 대충 분위기 맞춰서 남들 웃을 때 웃고 적당히 호흥을 해 주기는 했으나 그 속에서 내 이야기를 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다. 어려웠던 이유를 생각해 보자면 크게 두 가지였던 것 같다. 첫 째, 샬라샬라 유창하게 이야기하는 애들 앞에서 내가 입을 뗐다가 혹여 말문이 막히거나 틀린 영어를 할까 봐 걱정이 된다. 둘째, 대화의 코드가 뭔지 모르겠다.(즉, 대화의 맥락을 못 따라감) 그래서 네트워킹의 자리는 늘 나에게 부담이고 피곤했다.
네트워킹은 스웨덴에서 구직을 위한 필수 활동이다. 내가 알아보고자 하는 업계의 사람들을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연락한다거나 관심 있는 회사의 네트워킹 이벤트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는 일들은 아주 기본적인 활동이다. 23년 상반기까지는 주로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을 했었는데, 무비자 상태로 입국한 이후로는 내가 가장 피하고 싶었던 네트워킹을 공략해 보기로 했다. 일단 내가 현재 구직 중이라는 사실을 주변 지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렸다. 사실 주변 지인이라고 해봤자 애들 학교 학부모들이다. 나의 처지를 가장 알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었는데 그 이유는 나의 자존심과 아이들의 체면 때문이었다. 나는 '구직'이라는 말 자체가 묘하게 자존심이 상한다. 뭐랄까, 내가 능력 부족인 것 같고 또 구직자만큼 남들 앞에서 내가 명백하게 '을'인 상태도 없다. 왜 이 나라에서 구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썰을 풀어내면 다들 '오, 너 대단하다'라는 한결같은 반응을 보내주지만, 'I'm looking for a job'이라는 말을 꺼내기가 참 쉽지가 않았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현장에서 일을 할 때에는 나도 업무 상 요청을 하는 일이 빈번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일이 아닌 공적인 일이었다. 뜻하지 않게 한국에서 나는 정말 평탄한 삶을 살아왔구나를 구직활동을 하면서 깨달았다. 내가 친하게 지내던 학부모 친구들은 나의 이야기를 듣고 선뜻 나에게 레쥬메를 보내주면 본인들 지인들에게 물어보겠다는 말을 해주었다. 나도 한번 말 떼기가 어려웠지, 한번 해보고 나니 내가 걱정하던 나의 자존심과 아이들의 체면은 더 이상 걱정거리가 아님을 알았다. 이곳에서 이렇게 하는 것이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기 때문에 누구든지 일을 하다가 이직을 하고, 뜻하지 않게 잠시 일을 쉴 수도 있고 또 일을 구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나의 레쥬메와 포트폴리오를 지인들에게 보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지인의 지인을 소개받기도 하고 또 나의 인터뷰 연습을 도와주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채용시장이 얼어붙어서 나와 나의 지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결과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안되는구나..'를 느끼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