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피겨스(2017)
우리는 종종 나와 다른 누군가에 대하여 냉정할 때가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다른 누군가도 나처럼 누군가의 부모이고 또 누군가의 자녀이다. 캐서린 존슨과 그녀의 동료들이 직장에서는 화장실도 주전자도 같이 쓰기 싫은 사람이지만, 집에서는 사랑받는 딸이자 어머니인 것처럼 말이다. 그녀들은 사랑을 받고 줄 수 있는 사람이자 누구 못지않게 능력을 갖췄고 그녀들의 직장 동료들도 그러한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외적인 부문만으로 그녀들과 그들의 사이에 선을 긋는다.
캐서린 존슨이 'only colored'라고 적힌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자신의 사무실에서 800m나 뛰어다니는 장면이 나에게는 희극이면서도 비극이었다. 곧 능력을 중시하는 그녀의 상사가 이러한 고충을 알고 'only colored'라고 적힌 문패를 박살 내면서 영화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그러나 나는 그 갈등 해소 과정에서 조차 소극적인 주인공을 보며 씁쓸함을 느꼈다. 그녀의 상사가 그녀의 고충을 알게 된 이유는 그녀가 자발적으로 자신이 처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의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근무시간에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는 이유를 묻는 상사 때문이었다. 또한 동료들의 눈총을 받는 그녀의 상황을 변화시켜 준 것 역시 상사의 정의로운 행동 때문이었다. 차별을 당하는 입장에 서있는 사람조차도 자신의 위치를 인정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아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자신의 환경을 바꾸기 위해 한 것은 열심히 주어진 일을 한 것뿐이었다. 그것은 같은 강도와 양의 일을 하면서도 피부색에 따라 달라지는 업무 환경과 급여를 인정하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그녀의 동료인 도로시 본과 메리 잭슨은 달랐다. 도로시 본은 자신의 직급을 넘어서는 일을 하게 되자 그녀의 상사에게 승진시켜 줄 것을 요구했고, 슈퍼 컴퓨터의 등장으로 전산실에 근무하는 그녀와 그녀의 동료들의 밥줄이 위험해지자 살아남기 위하여 슈퍼 컴퓨터를 공부했다. 그 결과 그녀는 슈퍼컴퓨터의 책임자가 되어 승진도 일자리도 지킬 수 있게 된다. 그녀의 이러한 모습은 자신이 받고 있는 차별의 현실을 인정하되 그 차별이 정당하지 않음을 알고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피부색으로 평가할 수 없는 경쟁력을 갖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또 다른 동료인 메리 잭슨은 나사 최초의 흑인 여성 엔지니어가 되기 위하여 자신에게 기회가 찾아왔을 때 자신의 한계를 다른 누군가가 정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녀가 엔지니어에 지원하자 내부 규정이 추가되는 일이 생긴다. 그 새로운 규정에는 버지니아대학의 공개강좌 과정을 추가로 이수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그 과정을 진행하는 곳인 버지니아대학은 당시 흑인들은 입학허가를 내주지 않는 학교였다. 보통 규정이 그러하다면 진학을 포기했을 텐데 메리 잭슨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 대신 법원에 입학을 허가해 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하고 재판을 받게 된다. 그 재판에서 그녀는 '최초가 된다는 것'의 중요성을 말하며 판사를 설득했고, 그녀는 그녀의 직장인 나사뿐만 아니라 미국 최초의 아프리카계 여성 엔지니어가 된다.
너무나도 유쾌하지만 그 속의 아픔과 절실함을 보게 하는 영화였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그 흔한 말을 삶에 적용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대부분의 우리는 저마다 마음속에 품은 '뜻'이 있지만 자신의 '한계'를 먼저 생각하지 않을까? 마치 힘이 없던 아기 시절 자신의 발에 묶여 있던 밧줄을 풀지 못해 자신의 한계를 정하고, 힘이 있는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의 발목에 묶인 밧줄을 보며 자유라는 '뜻'이 아닌 밧줄이라는 '한계'를 보는 코끼리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