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정상은 없다. 유기적인 화학 작용, 사랑.
지난달부터 닉네임을 사용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나의 닉네임은 로렌스다. (거의) 가장 좋아하는 영화의 주인공 이름에서 따왔다.
로렌스 애니웨이는 프랑스계 캐나다인이자 젊은 천재 감독이라고 불리는 자비에 돌란의 영화다.
정체성과 함께 용기까지 찾아낸 로렌스의 심리 상태와 그의 변화가 주변인에 끼치는 영향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단편적으로 보았을 때 성정체성이 주된 내용인 듯 싶지만,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생각할 꺼리들은 충분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변화와 수용, 그리고 진정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성정체성이라는 아이템을 활용해 풀어내고 있다.
지극히 정상은 없다. 생각은 바뀔 수 있다. 가치관은 옅은 바람에도 우수수 소리를 내며 흔들린다. 그렇다면, 가치있는 것에 대한 사고는 쓸 데 없는 망상인 것일까.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르네 데카르트, 《방법서설》(Discours de la méthode, 1637)
사람은 생각하기에 존재한다. 그리고 살아 숨쉬기에 끊임없이 생각한다.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브레즈 파스칼, 《팡세》(Pensées, 1670)
변하지 않으리라 굳게 믿던 본인만의 진리 또한 상황에 따라, 환경에 따라, 동행하는 이에 따라 그 기준이 바뀐다. 변화가 어떻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서로 예의를 갖춰 배려하는 것이 진짜 사랑인 것이다.
여자로 살기로 한 남편을 여전히 그 자체로 사랑하기에 고뇌할 수밖에 없는 프레드와 그녀를 여전히 잊지 못하는 로렌스의 젠더를 뛰어넘는 사랑이야 말로 진정하다 여겼다만, 사실은 또 생각이 바뀌었다. 인정만이 진정한 사랑일까 의문이 생긴 거다.
그리고는, 키득키득 웃을 수 있는 관계, 굉장한 능력은 없어도 하루를 기쁨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낼 줄 아는 것이 사랑이고 좋은 삶이라는 새로운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