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젊은최양 Apr 13. 2023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20)

사랑, 현실, 선택, 그리고 이별

엘로이즈의 후드가 바람에 벗겨져 그 묶인 금발의 뒷모습이 처음 보였을 때. 설렘을 느꼈다.

뛰어내달릴 때, 그녀의 언니처럼 나까지도. 뛰어내리고 싶었다.


서로가 아니면 안 되지만 그들을 갈라놓는 현실에 가슴이 터져 울었다.

귀족과 화가, 글도 모르는 시녀. 셋은 친구, 또는 연인이 되어 일주일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그 시절의 문학, 놀이, 그리고 음악을 즐기고 서로 사랑했으며 혼자이기 힘든 순간을 함께 버텨주었다. 그녀들의 짧지만 져버리지 않는 사랑 내용에 낙태, 지위적 평등, 어쩔 수 없는 차별 또한 너무 자극적이지는 않게 더해져 감상자로 하여금 각자만의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한다.


그들의 이별은 선택이었을까, 현실에 대한 순응이었을까. 나는 어쩔 수 없는 후자라 생각한다.

종종 보고 싶은 퀴어영화가 있었는데 영화관 상영 기간이 짧고, 짧은 상영 기간에 비해서는 나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아 늘 놓쳤었는데 당시 타이밍이 좋았다.


이후 셀린 시아마 감독의 다른 작품도 궁금해 독립영화관에서 찾아보았다. 걸후드라는 영화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너무 좋아서인지 크게 임팩트 있지는 않았다. 흘러가는 정황이 우리나라 정서에 맞지 않아서 그런지 푹 빠져 몰입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사가 별로 없는 영화임에도, 셀린 시아마 감독의 영화답게 캐릭터 표현이 참 잘 되어 있었고 그 덕분에 주인공 마리엠의 변화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어린이에게, 성소수자에게,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 또는 신체적으로 더 강하다는 이유만으로 남자가 여자에게, 신념이 다른 사람에게, 부모가 자녀에게도 폭력은 폭력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청혼에도 거절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그러한 상황에 놓이지 않으려 버티고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 변화였고 성장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반항으로 보일지라도 그건 어쨌든 성장이었다.

결국 셀린 시아마 감독의 두 영화는 모두 선택과 성장을 말한다. 잠잠하지만 단단한 어조로 전달하기에 마음에 꽂힌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숨은 덕후가 이리도 많은 것은. 오랜만에 셀린 시아마 감독의 두 영화를 떠올려보니 영화 감상에 목말라졌다. 하루는 왜 이리도 짧은 것인가-

매거진의 이전글 미드나잇 인 파리(짧은 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