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적으로 풀어낸 우리네 인생의 쓴 부분
≪스물≫, ≪바람 바람 바람≫, ≪극한직업≫, ≪달짝지근해: 7510≫. 이병헌 감독의 영화는 서투른 첫사랑, 신뢰할 수 없는 결혼 생활, 고군분투해야만 하는 사회, 다양한 연애의 끝과 시작을 잠깐이라도 웃어넘길 수 있게, 또는 거기에서 새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표현한다. 특히나 영상에서의 영화적 스킬들, 빠른 장면 전환과 급한 호흡, 라임 맞춘 랩을 듣는 듯한 어체가 참 재미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이 담고 있는 내막이 낮은 깊이감이 것들이 아니라는 점이 아릿하다.
고반장이 아내를 속이고 퇴직금으로 치킨집을 본격적으로 차렸다는, 이해의 범위 안에 속한 거짓을 제외하고는 도덕적으로 불편한 부분이 없어서 대중에게도 큰 인기와 인정을 받은 ≪극한직업≫부터 감독은 '편안한 선 안'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뽐낸다. 사실 복작복작 서투른 첫사랑 이야기들이 얽혀 있는 ≪스물≫만 해도 찾아내려면 영화 ≪몽정기≫와 비슷한 수준의 불편한 지점이 있다.
그중 ≪바람 바람 바람≫은 그러한 불편한 지점이 수도 없이 즐비되어 있고 도덕의 선 바깥에서 정점을 찍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가 다 끝난 후에도 나쁜 기분은 쉽사리 깨끗하게 씻겨내려가지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저급 불륜 영화, 그뿐으로 남겨질 수도 있겠다.
그런데 가만 들여다 볼까. 솔직히 막장 아닌 삶을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당신 인생도 도덕의 경계가 아주 높은 사람에게는 막장일 수 있다. 액션을 취하지 않았다면 정말 순결한 걸까. 당신의 그 속은 어떤가. 정말 완전히 깨끗한가. 혹시 설마, 막장의 직면과 그 속에서의 공감이 불편했던 건 아닌가. 이 영화는 다름 아닌 '왜 사랑을 해도, 결혼을 해도 외로운 거죠?'라는 질문에 답하길 바라고 있을 뿐인데 이다.
몇 가지 함께 볼 만한 다른 작품들이 떠올랐다.
1. 애정이란 것을 사이에 두고 심리와 관계를 표현했다는 점에서 박찬욱 감독님의 『헤어질 결심』이,
2. 굉장히 가라앉은 분위기지만 어찌 보면 유쾌한, 얽히고설킨 남녀들을 나타내었기에 최근 감상한 영화 『엘사 앤 프레드』가,
3. 입 안에 숨겨둔 내밀한 감정을 은근한 시점에 드러내고 나누는 자비에 돌란의 『마티아스와 막심』이,
4. 한 지붕 아래에서 몸을 부대끼고 살아도, 가족조차 완벽하게 알 수 없는 타인이라고 쿡쿡 쑤시는 영화 『완벽한 타인』도,
5. 그리고 더불어 '노라이즘'을 탄생시킨 헨리크 입센의 극작품 『인형의 집』도 함께 감상하면 나름의 연결 지점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영화를 보고 끄적끄적 단상을 남긴 2021년 3월 14일, '요새 책이나 영화를 감상하는 것에 정지 신호가 떠 있는 느낌.... 그래서 꾸역 하지는 않는다. 다시 감상의 순간이 발끝 간지럽게 바라질 때가 오겠거니. 사실 사는 것에 지쳐있는 요새다. 더 잘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일기를 남겼더라. 그때의 나 자신아 열심히 살아 지금의 나에게 온 것을 환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