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2018)

누군가에게는 별 것도 아닌 것

by 젊은최양

고된 가정사, 알바로 겨우 삶을 영위하는 것. 종수는 우연히 해미를 다시 만난다.

해미는 우물 안에서 혼자, 하늘만 보다가, 종수를 만난다.

종수는 아버지의 재판에 간다. 한 마리 남은 소에게 여물을 준다. 보일이의 밥을 챙긴다. 대답 없는 전화를 받는다. 해미를 기다리고, 그 관계의 실낱을 붙잡는다.

비닐하우스였다. 누군가에게는 별 것도 아닌 것.

태워졌고, 태워버렸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실존의 의미.

IMG_1006.JPG?type=w1
IMG_0963.JPG?type=w1


영화나 문학이나 비한다면 깊지 않게 감상하는 것 같다만, 일반적인 것보다는 또 심취해서 보는 편이다. 의식하지 않고 최고의 국내 영화를 꼽아보면 모두 박찬욱 감독님의 작품들이었다. 하지만 그날 버닝을 다 함께 감상하고는 마음이 여기로 향했다.


이후, 종수의 이상향인 윌리엄 포크너의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를 읽었다. 계속계속 가라앉다가 순식간에 흩날려지는 내 속에 있는 기운들. 종수가 원하던 폭발은 이런 유의 것이었을까.

개인의 시선을 면밀히 공감하며, 새로운 증거에 놀라며, 감정에 감탄하며 순식간에 읽었다.

KakaoTalk_20250204_163929384.jpg


버닝의 모티프는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이고 해당 작품의 모티프는 바로 포크너의 『헛간, 불태우다』이다. 고전을 보면 이런 게 가장 재밌다. 이 얽히고설킴, 내 지식 안에서의 또 한 번의 믹스. 포크너의『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덕분에 뒤통수가 얼얼해서 순식간에 재독까지 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화양연화(2000) - 왕가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