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는 별 것도 아닌 것
고된 가정사, 알바로 겨우 삶을 영위하는 것. 종수는 우연히 해미를 다시 만난다.
해미는 우물 안에서 혼자, 하늘만 보다가, 종수를 만난다.
종수는 아버지의 재판에 간다. 한 마리 남은 소에게 여물을 준다. 보일이의 밥을 챙긴다. 대답 없는 전화를 받는다. 해미를 기다리고, 그 관계의 실낱을 붙잡는다.
비닐하우스였다. 누군가에게는 별 것도 아닌 것.
태워졌고, 태워버렸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실존의 의미.
영화나 문학이나 비한다면 깊지 않게 감상하는 것 같다만, 일반적인 것보다는 또 심취해서 보는 편이다. 의식하지 않고 최고의 국내 영화를 꼽아보면 모두 박찬욱 감독님의 작품들이었다. 하지만 그날 버닝을 다 함께 감상하고는 마음이 여기로 향했다.
이후, 종수의 이상향인 윌리엄 포크너의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를 읽었다. 계속계속 가라앉다가 순식간에 흩날려지는 내 속에 있는 기운들. 종수가 원하던 폭발은 이런 유의 것이었을까.
개인의 시선을 면밀히 공감하며, 새로운 증거에 놀라며, 감정에 감탄하며 순식간에 읽었다.
버닝의 모티프는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이고 해당 작품의 모티프는 바로 포크너의 『헛간, 불태우다』이다. 고전을 보면 이런 게 가장 재밌다. 이 얽히고설킴, 내 지식 안에서의 또 한 번의 믹스. 포크너의『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덕분에 뒤통수가 얼얼해서 순식간에 재독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