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북클럽 스페셜 에디션 2024 ≪보이지 않는 소녀≫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환경에 갈래가 구별되는 어름에서 본인만의 가치에 따라 판단을 하게 되고 그에 맞게 액션을 취하게 된다. 환경에 갈래가 구별되는 어름, 물론 이 시점이 당장 문전에서 큰 소리를 내고 있어도 깨닫지 못하는 자도 있고, 닥치기 전에 쌓여가는 퍼즐 조각으로 어림잡아가며 이미 표지(標識)를 보고 있는 자도 있을 터이다. 심지어는 인지했다 하더라도 상황을 맞이하는 당사자의 판결과 의지적인 행동이 또다시, 또 다른 갈래를 낳기도 한다. 표지는 운명이고 떠남과 홀로 남음을 남기며, 피할 수 없는 상태를 앞둔다.
≪프랑켄슈타인≫으로 유명한 메리 셸리의 단편 소설 <보이지 않는 소녀>와 파울로 코엘료의 ≪다섯번째 산≫, 파트릭 모디아노의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를 함께 보며 각 작품에서 말하는 표지의 발견, 갈래의 인식, 이에 대한 의지적인 행동에 대해 비교해보려고 한다.
1. <보이지 않는 소녀> (메리 셸리, 1800년대)
새로움에 대한 궁금증이 표지일 수 있다.
액자식 구성(額子式構成, frame narrative)에서 외화의 화자는 단순히 이야기 전달자인데, 처음 보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표지가 되어 헨리 버넌 스토리의 이야기꾼이 된다.
가장 시선을 끌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벽난로 위 선반에 걸린 수채화 그림이었다.
민음사의 《보이지 않는 소녀》 p.42
닥친 위험이 표지를 찾게 할 수 있다. (적극적-외부상황)
외화의 화자가 전하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헨리 버넌이다. 헨리 버넌은 바람과 파도와 폭풍으로 인해 능동적으로 표지를 찾게 된다. 주인공은 전반적으로 위험을 통해 표지를 찾고 갈래를 인식하고 그제서야 얽힌 일을 정리하는 사람이다.
버넌은 일어나서 안전을 약속해 줄 만한 표지를 찾으려고 했다. 그것이 희미하게 빛났다.
같은 책, p.46
동화 같으면서도 현실적인 것이지. (중략)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바위 꼭대기에 지어진 낡고 무너진 탑에서 나오는 불빛이야. 올해 여름 이전에는 본 적이 없는데 지금은 매일 밤 보이지. 적어도 부러 찾으면 보여. 우리 마을에서는 좀체 보이지 않거든. 너무 구석에 있어서 가까이 갈 이유가 없지. 지금처럼 특별한 때만 제외하고. 마녀가 붙이는 불이라는 말도 있고, 밀수업자라는 말도 있어.
같은 책, p.47
2. ≪다섯번째 산≫ (파울로 코엘료, 1996)
자아성찰과 초인간적인 교통을 통해 표지를 알게 될 수 있다. (적극적-내적인지)
파울로 코엘료는 ≪다섯번째 산≫은 물론, 그의 대표작 ≪연금술사≫를 통해서도 이러한 유의 성찰과 발견을 보여준다.
그는 한 인간의 운명은 대체로 그가 믿는 것이나 두려워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음을 일찍이 깨달았다.
문학동네의 《다섯번째 산》 p.89
그는 '예감'이라는 것이 삶의 보편적인 흐름 한가운데,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의 모든 이야기들 속에 그럴 수밖에 없는 어떤 방식으로 펼쳐져 있는 것임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문학동네의 《연금술사》 p.127
그녀의 검은 눈동자와 침묵해야 할지 미소지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그녀의 입술을 보는 순간, 그는 지상의 모든 존재들이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만물의 언어'의 가장 본질적이고 가장 난해한 부분과 맞닥뜨렸음을 깨달았다. (중략) 마침내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그것은 표지였다. (중략) 순수한 만물의 언어였다. 우주가 무한한 시간 속으로 여행할 때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거기엔 어떤 설명도 필요없었다.
같은 책, p.158
3.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 (파트릭 모디아노, 2007)
표지는 바라고, 마냥 기다릴 대상이 되기도 한다. (소극적)
네 명의 화자가 등장하는 해당 작품에서 주인공은 결국 자클린(a.k.a 루키)이다. 그녀는 엄마가 없는 밤이면 두려움을 안고 거리를 방황했다. 특별하여 시선을 사로잡지만 스스로 희망에 능동적일 수는 없는 여인이다.
하지만 나는 건물의 번지수를 알지 못했다.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곳을 나에게 가르쳐줄 표지를 기다렸다.
문학동네의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 p.103
1. <보이지 않는 소녀>
닥친 위험은 갈래 또한 인식하게 한다. (외부상황)
헨리 버넌은 전반적으로 위험을 통해 표지를 찾고 갈래를 인식하고 얽힌 일을 정리하는 사람이다. 내적인지를 통해 갈피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외부상황에 대응해가며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편이기에 표지의 발견보다 갈래의 인식이 먼저인 인물이다.
헨리는 로지나의 죽음을 전해 듣고는 이유를 묻기 위해 곧장 외국에서 돌아온 터였다. 그녀 무덤에 찾아가고, 두 사람이 행복을 나누었던 숲과 골짜기에서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고자 했다. 수많은 질문을 했지만 불길한 침묵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민음사의 《보이지 않는 소녀》 p.54
2. ≪다섯번째 산≫
내적인지를 통해 깨달은 표지는 절로 갈래를 인식하게 한다. (내적인지의 연결성)
그렇다. 능동적인 깨달음은 상황에 대한 인식으로 자연스레 연결되고, 이는 후에 적극적인 판결과 언행으로까지 어이질 수 있다. 내적인지의 연결성으로 인해 갈래를 먼저 깨닫게 되기도 한다.
그건 배움의 일부였어. 한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향해 나아가다 보면 방향을 틀어야만 할 때가 종종 생기지.
문학동네의 《다섯번째 산》 p.53
누구나 자기 사명을 의심하고 때로는 포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절대 해선 안 되는 단 하나는 사명을 잊는 것이다.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는 자는 자격이 없다. 자신의 능력을 맹신하고 자만에 빠지는 죄를 지을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책, p.85
비극이란 없고 피할 수 없는 길이 있을 뿐이다.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
같은 책, p.193
3.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
갈래는 두려움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소극적)
≪다섯번째 산≫에서는 "그는 한 인간의 운명은 대체로 그가 믿는 것이나 두려워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음을 일찍이 깨달았다"라고 말한다. 운명과 두려움의 대상의 상관관계를 '없음'으로 확정한다. 이와 달리 삶에 소극적인 인간을 갈래의 구별 지점을 두려움 그 자체로 느낄 수도 있다.
그녀가 나를 예전으로, '르 캉테' 시절로 다시 데리고 갈까봐 두려웠다.
문학동네의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 p.93
그러고 나서 삶은 부침과 함께 계속되었다. 울적한 어느 날, 나는 볼펜으로 기 드 베르가 빌려준 책 ≪루이즈 뒤 네앙≫의 표지 위 이름을 내 이름으로 바꾸어놓았다. '자클린 뒤 네앙.'
같은 책, p.104
1. <보이지 않는 소녀>
외부상황에 의한 표지의 발견 → 외부상황에 의한 적극적 갈래의 인식
→ 어수선하고 괴로운 마음 → 문제 해결 → 극복
그의 가장 큭 유일한 바람은 웨일스로 가서 새로운 소식이 있는지, 갈가리 찢긴 마음이나마 달래고자 로지나의 시체라도 찾을 수 있을지 알아보는 일뿐이었다. 그런 이유에서 그는 이 마을로 찾아온 것이었고, 지금 버려진 탑에서 그의 머릿속은 절망과 죽음의 생각으로 어수선했다.
민음사의 《보이지 않는 소녀》 p.55
안전하고 편안한 생활로 돌아온 뒤, 그가 정성을 다해 돌보았는데도 끝내 그녀는 병에 걸리고 말았다. 몇 달이 흐른 다음에야 다시 뺨에 생기가 돌았고 팔다리에 살이 붙어서 슬픔을 전혀 몰랐던 행복한 시절에 그린 그림 속의 모습과 비슷해졌다. (중략) 신혼의 행복을 만끽하면서 로지나는 모진 시련을 겪었던 곳에서 새로운 삶의 기쁨을 맛보았다.
같은 책, p.61
2. ≪다섯번째 산≫
내적인지에 의한 갈래의 인식과 표지의 발견(연결성)
→ 끝없는 대비 → 문제 발생 차단, 피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순응
두려워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 시작되기 전까지만이에요.
문학동네의 《다섯번째 산》 p.205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그토록 정성을 다해 돌본 새끼 양이 사고롤 죽기도 하지요. 뱀한테 물리거나 들짐승에게 잡아먹히거나 벼랑에서 떨어져서요. 피할 수 없는 일은 항상 일어납니다.
같은 책, p.248
"상실의 고통을 마음에서 지울 수 있을까요?"
"그러긴 힘들 겁니다. 하지만 다른 뭔가를 얻으며 기쁨을 발견할 수는 있습니다."
같은 책, p.288
3.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
소극적 표지의 발견 → 소극적 갈래의 인식
→ 두려움에의 복종 → 떠남, 홀로 남음, 피할 수 없는 일에 좌절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상처로부터 완전히 치유된 듯했고, 앞으로는 중립지대에 숨어 있을 어떠한 이유도 없는 듯했다.
문학동네의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 p.158
그녀는 발코니로 나갔다고 했다. 그녀가 난간 너머로 한 발을 내밀었다.
같은 책, p.161
정리해보자면 누구에게나 환경에 갈래가 구별되는 어름을 마주해야 하는 때가 있고, 이를 인지하느냐에 따라, 인지한 후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수없는 경우의 수가 발생한다. 결정하여 걷기 시작한 한 줄의 길은 또다시 넉넉하고 매끄러운 내리막길이 되기도 하고, 끙끙 매달려야 할 동아줄로 변모하기도 한다. 표지는 운명이고 떠남과 홀로 남음을 남기며, 피할 수 없는 상태를 앞둔다.
<보이지 않는 소녀>, ≪다섯번째 산≫,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을 통해 인생에서의 표지의 발견, 갈래의 인식, 이에 대한 의지적인 행동이 어떻게 나뉠 수 있는지 단편적으로나마 알아볼 수 있었고 단계의 연결성도 확인해볼 수 있었다.
외부상황에 의해 표지를 발견하는 자는 외부상황을 통해 갈래를 인식하게 된다. 인지 단계 이후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해도 놓여 있는 상황이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기에 어수선하고 괴로운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적극적인 태도가 있다면 수동적이라 할지라도 문제를 해결할 힘이 있고 이를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내적인지에 의해 사는 사람은 경고(≒표지)를 맞닥뜨리기에 앞서 갈래가 등장할 것을 예상하고 있다. 따라서 운명과 두려움의 대상의 상관관계를 '없음'으로 확정하고 끝없이 내면을 바라보고 깨달으며 새로운 국면을 대비한다. 이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상황을 차단할 수 있도록 하며, 피할 수 없는 일의 발생 가능성 또한 고려하고 있기에 그런 일이 닥친다 해도 보다 순조롭게 순응하여 고생을 이겨낸다.
반면, 어떤 이유로든 본인의 삶에 있어서 주체적인 힘을 기르지 못한 사람은 소극적으로 표지를 발견하고, 소극적으로 갈래를 인식하며, 떠남과 홀로 남음에 당황하고 피할 수 없는 일에 창피를 느끼고 좌절하여 결국 두려움에 복종하게 된다.
한 인간은 여러 요소로 구성되어 있고, 인간에게 발생하는 상황은 불친절하게도 한 번에 하나씩은 아니며, 그 상황 또한 평면적이지 않다. 4D로 다각으로 찔러온다. 따라서 아무리 애쓴다고 한들 매번 내적인 인지를 통해 삶을 다스릴 수는 없다. 어떨 때는 외부상황에 문득 처지를 알게 될 수도 있고 어떨 때는 소극적인 처신으로 당장 모든 것을 실패한 것처럼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결말은 정말 저 끝에 있다. 인생은 단막이 아니어서 1막, 2막, 3막, 4막, 5막 정말 끝에서야 진정 끝이다. 그렇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일에는 평안으로 순응하고 지금의 동행에 감사하기도 하며 긴 인생 동안 내적인지도 너무 "여유롭게" 할 필요가....
이 다음에는 '늙어가는 것에 대해' 어린 조무래기지만 책과 연결해 함께 생각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