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품고 사는 동화

프랭크 바움의 ≪오즈의 오즈마(1907)≫

by 젊은최양

2025년 5월 28일. 이번 5월 한 달 동안 지금까지 총 여섯 권의 책을 읽었다. 대부분 고전이었다. 그중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1954)≫에 사로잡혀 혼자서 있을 때는 물론, 어디에서도 그 작은 디스토피아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러고 만난 도로시와 오즈마는 나를 정말로 다정하게 안아줬다. 삶이라는 것에는 네가 보고 있는 그런 면모만 있는 건 아니라고 발랄하게 웃었다. 일주일을 어딜 가든 이 책 한 권을 품고 살았다.



"안녕하세요." 그들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저를 구해- 줘서 고-마워요." 똑같이 단조로운 목소리로 기계가 말을 계속했다. 그 목소리는 어린아이들이 꽉 누르면 소리를 내는 작은 양이나 고양이 장난감같이 그의 몸속에 있는 풀무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지식을만드는지식의 《오즈의 오즈마》 p.51




여자아이가 주인공인 판타지스러운 모험 시리즈라는 점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865)≫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작년 봄, 바로 이맘때 문학동네 북클럽 에디션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성인이 된 이후 처음 다시 재독했기에 바로 연관이 되었다. 심지어 내가 가지고 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오즈의 오즈마≫ 모두 그 당시의 삽화까지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에 더욱이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동화라는 가면을 쓴 인간 내면에 대한 철학책이라면,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는 오롯이 어린이들을 위한 예술이다.



내가 밤사이에 변했나? 생각해보자.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 내가 그대로였나? 조금 다른 기분이었던 것 같기도 해. 하지만 내가 똑같지 않다면, 다음 의문은, '대체 내가 누구냐'는 거야.

문학동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p.23

KakaoTalk_20250528_214840069_17.jpg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는 '정당에서 대표자를 선출하는 회합'을 뜻하는 '코커스(caucus)'라는 단어를 사용해 '코커스 경주'라는 아주 우스꽝스러운, 빙빙 돌기만 하면서 뚜렷한 성과는 없는 경쟁을 보여주기도 한다. 인간 내면 성장을 비유함은 물론이거니와 어른이 보아도 재미있을 만한 정치적 풍자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하려던 말은," 도도가 기분 상한 듯 말했다. "몸을 말리는 제일 좋은 방법은 코커스 경주라는 겁니다."

(중략)

맨 먼저 도도는 동그라미 비슷하게 경주 코스를 그렸고, ("정확한 모양은 아니어도 됩니다"라고 말했다), 일행 모두 코스 위에 여기저기 자리를 잡았다. '하나, 둘, 셋, 출발'이라는 말은 없었고 다들 저 좋은 때 달리기 시작해 저 좋은 때 그만두었으므로, 경주가 언제 끝났는지 알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삼십 분 저도 달려 다들 그럭저럭 몸이 마르자 도도가 갑자기 "경주 끝!"하고 외쳤고, 다들 도도를 에워싸고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누가 이긴 거예요?"

문제는 도도 역시 골똘히 생각하지 않고서는 답을 내릴 수 없다는 거였고, 도도는 (초상화 속 셰익스피어가 으레 그러는 자세로) 한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은 채 한참을 서 있었고, 나머지는 조용히 기다렸다. 마침내 도도가 말했다. "모두 이겼고, 모두 상 타야 해요."

같은 책, p.35

KakaoTalk_20250528_214840069_16.jpg


정말이지 지금의 실정과 맞물려 보인다. 우리는 보여주기 식의 성과 없는 활동들을 보고는 '모두모두 잘한다'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무얼 보고 있는가.



그는 오락성만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았다. 난센스로 이뤄진 장시 ≪스나크 사냥≫, 수학 우화 ≪헝클어진 이야기≫만 보아도 그렇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루이스 캐럴과 그의 목사 친구 자녀들이 함께 떠난 템스강에서의 소풍에서 시작되었지만 말이다. 그는 단순하게만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개인적으로 특히나 좋아하는 인물은 쐐기벌레다.



"넌 누구냐?" 쐐기벌레가 물었다.

별로 대화를 시작하고 싶어지는 첫마디는 아니었다. 앨리스는 좀 수줍게 대답했다. "저-저도 잘 모르겠어요, 선생님, 지금은요-어쨌든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제가 누구인지 알았는데, 그후로 여러 번 바뀐 것 같아요."

"그게 무슨 말이야?" 쐐기벌레가 엄하게 말했다. "똑바로 설명해라!"

"죄송하지만 저도 잘 설명할 수가 없어요, 선생님." 앨리스는 말했다. "그게 있잖아요, 전 제가 아니거든요."

같은 책, p.53

KakaoTalk_20250528_214840069_15.jpg



상식적으로 변화(변태과정)가 있을 수밖에 없는 쐐기벌레와 변화하기에는 요상한 인간 앨리스의 대화가 흥미롭다.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앨리스에게 정답을 내밀지만, 앨리스에게는 받아낸 답안지 또한 문제로만 읽혔다.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거야." 쐐기벌레는 말하고, 물담뱃대�를 입에 넣고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이번에 앨리스는 쐐기벌레가 알아서 말을 꺼낼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일이 분 후 쐐기벌레는 물담뱃대를 입에서 떼고 한두 번 하품을 하더니 몸을 떨었다. 그러더니 버섯�에서 내려가 수풀로 기어가며 지나가는 말처럼 남겼다. "한쪽은 널 커지게 하고, 다른 쪽은 작아지게 할 거야."

'무엇의 한쪽이고 무엇의 다른 쪽이라는 거지?' 앨리스는 생각했다.

"버섯 말이야." 쐐기벌레는 앨리스의 속마음을 듣기라도 한 듯 말했다. 그리고 이내 사라졌다.

앨리스는 잠시 주의깊게 버섯을 쳐다보며 어디가 한쪽이고 어디가 다른 쪽인지 분간해보려고 했다. 버섯은 완전히 둥글었으므로 이는 매우 어려운 문제였다.

같은 책, p.61

KakaoTalk_20250528_214840069_14.jpg




이처럼, 다소 무게감 있는 질문을 툭툭 던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달리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는 좀 더 우리 곁에 있는 친절한 이야기이다. 노란 벽돌 길이 '금본위제도'를, 도로시가 원래 신고 있던 은신발이 '은본위제도'를 상징한다는 말이 있지만, 바움은 단지 아이들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여자아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어린이 소설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오즈(OZ)가 무게를 재는 단위인 온스를 뜻한다며 증거로 내세웠지만, 정작 바움이 제목을 짓게 된 계기는 자신의 파일 캐비닛에 번호가 O-Z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서른을 넘기고 다시 읽어보니 철저하게 아이들을 사랑하는 작가의 친밀한 모습을 오히려 더욱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다시 ≪파리대왕(1954)≫으로 돌아가보려고 한다. ≪오즈의 오즈마≫에서 ≪파리대왕≫의 인물들을 찾았기 때문이다.

(≪파리대왕≫이 궁금하다면 우선 이 링크를 확인해보시길.

https://succinct-dewberry-fa2.notion.site/1954-200be5b74684802690cee4414ea0d9fb

)



이성을 상징하는 ≪파리대왕≫의 랠프도로시와 견줄 수 있다. 명쾌한 근거 없이 고집으로만 무리를 이끌려 들고 스스로의 노고에 대해 보상을 바라는 랠프와는 달리, 도로시는 위험에 먼저 나선다. 상한 자존심과 창피함을 무릅쓰고.



"저는 그에게 간청하는 것이 두렵지 않아요." 도로시가 말했다. "저는 캔자스에서 온 어린 소녀에 불과해요. 우리 고향에서는 간청하는 게 위엄을 잃는 것이 아니에요. 제가 놈 왕을 불러내겠어요."

(중략)

그래서 도로시는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놈 왕이시여, 제발 이리 나와서 우릴 만나 주세요."

놈들이 다시 웃기 시작했다. 하지만 낮게 으르렁 거리는 소리가 산에서 들려왔다. 그러자 순식간에 놈들은 모두 사라지고 조용해졌다.

지식을만드는지식의 《오즈의 오즈마》 p.159

KakaoTalk_20250528_214840069_11.jpg



그리고 귀한 것은 오히려 양보한다. 불편해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줄 아는 용기가 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소라�를 손에서 놓지 않던 랠프와는 다른 모습니다. 그녀는 벨트를 오즈마에게 양보하고 아픈 헨리 아저씨에게 돌아간다. 다정하면서도 합리적인 선택과 판단을 한다.



"그럼," 도로시가 잠시 생각한 후에 말했다. "전 마법 벨트를 오즈마에게 주겠어요. 그녀가 자기 나라에서 사용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녀는 벨트를 잃지 않고도 나를 헨리 아저씨에게 옮겨 달라고 소원을 빌 수 있어요."

같은 책, p.272

KakaoTalk_20250528_214840069_13.jpg



본성과 야만성을 상징하는 ≪파리대왕≫의 잭 메리듀는 배고픈 호랑이와 비교해볼 수 있다. 폭력과 욕구에 그 어떤 필터 없이 가릴 것 없이 액션하는 잭과는 달리, 배고픈 호랑이는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끝없는 자기객관화에 빠진다. 잭의 모습이 독자에게 공포를 창성시킨다면 배고픈 호랑이의 모습은 웃음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살찐 아기들! 맛있게 들리지 않아? 하지만 난 먹어 본 적이 없어. 내 양심이 그건 잘못이라고 말하니까. 만약 내게 양심이 없다면, 아마 아기들을 먹고 다시 배가 고파질 거야. 그러면 그건 내가 불쌍한 아기들을 아무 의미 없이 희생시민 게 되잖아. 안 돼. 나는 배고프게 태어났으니, 배고프게 죽을 거야. 난 내 양심에 거리낄 만한 어떤 잔인한 행동도 하지 않을 거야."

"난 네가 매우 착한 호랑이라고 생각해." 호랑이의 커다란 머리를 쓰다듬으며 도로시가 말했다.

같은 책, p.116



프랭크 바움은 '본능적으로 폭력과 욕구가 가득한' 인물일지라도 자기객관화로, 겸손함으로 스스로를 정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걸까? 끼리끼리 유유상종이라고, 다음 페이지까지 이어지는 배고픈 호랑이, 겁쟁이 사자, 도로시의 대화는 정말 솔직하다.



"그건 네가 오해한 거야." 호랑이의 대답이었다. "어쩌면 나는 착한 짐승일지 모르지만, 부끄럽게도 못난 호랑이야. 잔인하고 사나운 것이 호랑이의 본성이거든. 순진한 생명체를 먹는 것을 거부할 때, 나는 훌륭한 호랑이처럼 행동하지 못하고 있는 거야. 그것이 내가 숲을 떠나 내 친구 겁쟁이 사자와 함께한 이유야."

"하지만 내 친구 사자는 진짜 겁쟁이는 아니야." 도로시가 말했다. "난 그가 정말 용감하게 행동하는 것을 봤어."

"그건 모두 오해야, 친구야." 사자가 진지하게 반대했다. "다른 친구들에게는 때로 내가 용감하게 보였을 거야. 하지만 난 겁나지 않은 위험에 처했던 적이 없어."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도로시가 솔직하게 말했다.

같은 책, p.116

KakaoTalk_20250528_214840069_10.jpg



지성을 상징하는 ≪파리대왕≫의 피기는 허수아비�와 맞대어 놓을 수 있다. 문명의 시초를 지닌 인물이지만 힘과 매력이 부족해 공격의 대상이 되었던 피기와 달리, 허수아비는 친구들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는 존재다. 그들은 서로의 다름과 강점을 존중한다.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생각을 잘하는 친구는" 도로시가 노란 암탉에게 말했다. "허수아비야."

같은 책, p.66



또한, 그들은 서로가 용기를 낼 근거가 된다. 무리를 무력으로 이끈다는 점에서 얼핏 인간 본성과 잔인성을 상징하는 ≪파리대왕≫의 로저와 비슷해 보이는 양철 나무꾼�도 마찬가지로 친구들과 더불어 용기로 희생을 말한다.



"비록 놈 왕의 용광로 가까이 가려면 내게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말이야. 난 지푸라기로 채워져 있어서 작은 불꽃 하나도 나를 완전히 태워 버릴 테니까."

"용광로는 내 양철도 녹여 버릴 수 있어." 양철 나무꾼이 말했다. "하지만 난 갈 거야."

같은 책, p.126

KakaoTalk_20250528_214840069_06.jpg



<오즈의 마법사> 세 번째 시리즈인 이번 작품에서는 새로운 두 친구가 등장하는데, 말하는 노란 암탉과 태엽을 감아주어야 하는 구리 로봇이다. 특히, 노란 암탉 빌(빌리나)은 편견이나 잣대에도 깜짝하지 않고 당당하며, 강인한 실제적인 힘(능력)으로 상대편(수탉)을 제압하기도, 유쾌한 유도리(지혜)로 수십 명의 인간(+허수아비+양철 나무꾼+구리 로봇+요정+왕족)이 풀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기도, 스스로의 주관과 판단으로 아주 손쉽게 결단하기도 하는 가장 하찮아 보이지만 가장 도량이 넓고 관대한 인물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낳는 달걀�(탄생, 시작)은 최대의 적 놈 왕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되기도 한다. 실상 주인공은 이 친구가 아닐까 한다.



"음, 제 이름은 원래 빌이에요." 의자 등받이에 앉아 있던 암탉이 대답했다. "비록 도로시가 그걸 고쳐서 빌리나로 만들었지만요. 하지만 이름은 중요하지 않아요. 제가

병사들 일부는 말랐고, 일부는 뚱뚱했으며, 일부는 키가 작고, 일부는 키가 컸다. 하지만 스물일곱 명 모두가 다양한 디자인과 색깔의 멋진 제복을 입고 있었고, 똑같아 보이는 제복은 하나도 없었다.

같은 책, p.101

KakaoTalk_20250528_214840069_05.jpg



≪파리대왕≫에서는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은 꼬마들, 선한 일반 민중을 의미하는 쌍둥이까지도 악에 휩쓸리지만, ≪오즈의 오즈마≫에서는 새로운 친구들도, 심지어는 스물일곱 명의 용기 없는 병사들도 모두 각자의 매력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더 나을 것도, 덜할 것도 없이 존중과 화합을 한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함께 있는다.

살아 있다는 건 바로 존중과 화합이다. 존중과 화합이 있다면 모험의 처음부터 도로시의 곁을 지켜온 당돌한 노란 여성 닭� 빌(빌리나)과 스미스와 틴커- 회사에서 제작되었고 이볼-도라는 이름을 가진 이브의 잔인-한 왕이 구매한 로봇� 틱톡도 모두 살아 있다.



"하지만 너희 인간은 벌레를 먹는 닭을 먹잖아." 노란 암탉이 이상한 꼬꼬댁 소리를 내며 반박했다. "그래서 인간도 닭과 똑같이 나쁜 거야."

이 말을 듣고 도로시는 생각에 잠겼다. 빌리나가 한 말은 분명 사실이었다.

같은 책, p.24

KakaoTalk_20250528_214840069_03.jpg




"저는 살아- 있지 않으니까, 그는 저를 죽일 수 없-었죠. 죽기 위해선 먼저 살아-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그가 아-무리 때려도 저에겐 아-무런 해를 입히지 못-했어요. 단지 제 구리 몸통을 더욱 반질-반질-하게 했을 뿐이죠."

같은 책, p.52


병사들 일부는 말랐고, 일부는 뚱뚱했으며, 일부는 키가 작고, 일부는 키가 컸다. 하지만 스물일곱 명 모두가 다양한 디자인과 색깔의 멋진 제복을 입고 있었고, 똑같아 보이는 제복은 하나도 없었다.

같은 책, p.101


KakaoTalk_20250528_214840069_01.jpg


KakaoTalk_20250528_214840069_02.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시대를 넘어 한 점에서 만나는 젊은이들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