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만 준비한 우리

우리에게 형식은 너무 어려워!

by 젊은최양

결혼(結婚);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음.

결혼-식(結婚式); 부부 관계를 맺는 서약을 하는 의식.


부부 관계(夫婦關係)

; 2. 법률적으로 사실혼 관계에 있는 남녀.


결혼 12년 차 선배의 현실적이고 따뜻한 조언이 담긴 ≪결혼식은 준비하지만, 결혼은 준비하지 않았다≫라는 책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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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을 모집하는 분께 이런 이야기를 남겼었다.


투박한 저는 오히려 결혼은 준비하지만 결혼식은 뒷전이네요.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결혼, 결혼식이 제가 의미하는 바와 같으려나요. 함께한다는 것에 극도의 거부감이 있어 '결혼'이라는 제도에도 멀리 떨어져 살던 제게, 5년 가까이 무엇 상관없이 사랑한다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있어 '식'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같이 산다는 건 여전히... 무언가 부담이 있어요. 그래서 아무리 준비를 해도 준비가 되질 않아요. 그래서 더욱 '식'은 뒷전이 됩니다.



저 글을 전달했을 당시, 불과 3주 전까지만 해도 거처를 합치는 것에 대한 그 '막연함'에 두려움이 있었는데, 지금은 벌써 청첩장 모임을 몇 번이고 했고, 이사까지도 완료한 상태가 되었다. 해보니 오히려 전부 고마운 것들뿐이다. 남자친구(이제 정말 예랑;ㅎㅎ)는 나에게 정말 최고의 남자 최고로 소듕한 선물. 참 감사하다.


저자는 다양한 방식으로 결국 다음 세 가지를 말한다.

1. 자신에 대해 면밀하게 알아야 한다.

2. 상대는 타자(他者)라는 것.

3. 남들의 시선이 아닌 우리의 만족에 집중할 것.


서평단 모집자께 남겼던 이야기를 보면 알겠지만, 내가 우려하는 것은 사실 '상대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오히려 '신뢰라는 가치 자체에 관한 의심'이다.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상대방을 의심한다는 게 아니라 '신뢰', '믿음, '존중', '사랑'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들이 정의해둔 그 가치들이 실존하느냐에 대해 의심이 있다는 거다.


1. 자신에 대해 너무 면밀하게 알고 있는 것이 내겐 오히려 독이다.

의리는 있지만 취향은 확고하고, 좋아하는 것들의 가짓수는 계속 늘고 있는데 변덕도 심한 게 내 삶이다.

변화와 스릴을 은근히 즐기면서도 어떤 건 또 소심하게 곱씹느라 잠을 못 이룬다.

기복을 통해 쾌감을 느끼는 면이 있다. 그러면서도 나만의 틀에 벗어날 때는 불같이 변한다.

한 마디로 제멋대로. 나도 나를 예측 못한다.

이런 나 자신을 계속해서 마주할수록, 나조차 모르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기대하거나 기대겠는가, 그것은 사치라고, 내 지론을 세웠다.


2. 그래서 연애 상대를 더더욱이 타자(他者)로만 두었다.

어차피 '결혼'이란 건 의심 투성이의 제도. 아주 어려운 것.

'평생'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 상대를 따져보지 않게 되었다.

기대하지 않으니 실망도 없다.

하지만 그런 내 모습은 오히려 상대방에게 실망으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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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타인에 대한 기대를 수행하듯 없애고 있었는데, 내 속에 조금이라도 관계에 대해 또는 상대에 대해 기대가 피어오르려고 하면 자책했고, 인간이기에 실망스러운 부분이 보였지만 그때도 실망을 느낀 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인간적으로 더 성숙하려면 이러면 안 된다고 나를 채찍질했다.

만난 지 얼마나 된 사람이라고, 나는 나 스스로도 제대로 모르는데 나 자신도 믿지 못하는데 남을 의지하고 의존하는가! 정신 똑바로 차려 반성하자, 되뇌었다.


심지어 친구에게는 '결혼은 이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서도 하지 않고는 못 배길 때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 적도 있는데, 이 책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와서 놀랐다.

(책에서는 헤어짐을 염두에 두진 않았지만. 난 당시 극단에 있었다.)


그 친구에게 그 대사가 다소 임팩트 있게 다가왔는지 아직도 한 번씩 언급한다.

결혼한 친구와 나는 과거 나의 대사에 여전히 동의했다. 하지만 이제는 '의존 없이도 어느 정도 스스로 설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정도의 의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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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위에 잠이 많아진다. 더운 걸 못 견디지 않는데, 대신 잠을 잔다.

어느 여름, 주말 내내 잠을 많이 잤다. 전날의 숙취 때문에 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볕의 강도가 약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결국 잠에서 슬며시 깼다.

남자친구는 한 손으로 무언가 읽기에 집중하며, 다른 한 손으로는 나를 마치 고양이 쓰다듬듯 만지고 있었다.


반려 동물을 입양하고서 그 아이의 평생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남자친구는 마치 그 사람들이 자신의 반려 동물을 아끼는 것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를 단순히 남자와 여자, 생물학적 이성으로서만 매력을 느끼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사람과 사람, 성격 좋은 가장 가까운 친구로서만 대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이 남자가 내게 하고 있는 것이 사랑이구나 싶었다. 확신 후 나는 솔직해졌다.

(혼자서 섀도복싱을 하고 있었다는 뜻. 자기와의 싸움 미쳤다 증말루.)


그때가 되어서야 오히려 나는 그에게 질투를 표현하고 투정으로 기댔다.

의지하기도 하고 정도를 넘어서 의존하기도 했다.

앞날을 기대하기도 했고, 나만큼 기대하고 있는지 의심하면서 닦달하기도 했다.


이미 꼬여 있었던 나로 인해, 그를 통해 매듭이 해제되어 선물 꾸러미를 드디어 열어볼 수 있게 된 나로 인해

3. 남들의 시선이 아닌 우리의 만족에 집중하는 건 이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우리에게 형식은 너무 어려워.

이제서야 '결혼'이라는 가치에 발끝을 담가보고 있는데, 형식적인 관문인 '식'은 참 쉽지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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