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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점록 Mar 16. 2024

이승을 덮는 천  

    이승을 덮는 천

                                          이 점 록


  폭탄은 세상을 덮는 천이다  

  영원히 보지 않을 것처럼 덮고 덮는다            

  쌓이는 눈은 천길 아래로 녹아들고   

  허겁지겁 생손으로 눈더미 헤집으며 핏줄을 찾는다

   

  찾았다 살아있다

  겨우내 칼바람이야 어쩔 수 없지만

  천형같은 운명도 꽃바람처럼 받아들인다   

  철겹게 눈이 쏟아져도 발가락 피돌기는 온전하다  


  봄이 왔다

  살을 에는 겨우살이 도망치듯 저멀리 가자

  흙내 맡은 풀들이 어깨춤을 추고

  여기저기 불꽃놀이하듯 웃음꽃이 팡팡 터진다


  초여름이 왔다

  새색시마냥 수줍은 듯 함초롬히 피었다

  안개같은 보랏빛이 덜컹 애처롭다

  아! 맥문동이여     

  


시작 메모 :

눈폭탄은 이승을 덮는 천이다.

뒤뜰 마당에 맥문동이 깊이 묻혔다.  

눈더미를 생손으로 허겁지겁 헤집으며 매몰된 맥문동 구조에 분투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한겨울을 버티자 기다리던 봄이 왔다.

차례차례 꽃은 피고... 아! 맥문동이여 


출처 : 《한국문학인》, 통권 제 66호, 한국문인협회, 2024.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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