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산삼, 무
겨울 무를 동삼(冬蔘)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즐겨먹는 채소 중 하나인 무는 소화기능, 면역력, 기관지 건강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제철 맞은 겨울 무는 영양소가 풍부해 건강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무는 아삭아삭하고 시원한 맛이 일품이라 가을부터 겨울까지 즐겨 먹는 한국인의 소울 푸드인 김치로 매일 밥상에 오른다. 무생채, 무조림 등 다양하게 활용되는 식재료이다.
나는 "겨울 무 먹고 트림을 하지 않으면 인삼 먹은 것 보다 효과가 더 있다."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다.
작년 12월 한창 김장을 할 때다. 무와 배추 농사를 지으시는 노인회장님께서 "김장을 하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엉거주춤하게 얼버무렸다. 사실 퇴직 후 처음 맞는 김장철이라 김장을 할까 말까 망설이던 차였다. 감사하게도 무와 배추를 많이 주셨다. 덕분에 주변 이웃에 나눠주기도 했다. 비약해서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속담이 새삼스럽다. 김장 후 남은 무를 어떻게 할까 곰곰이 생각을 했다.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본다. 당시 아부지께서는 겨우살이를 위해 집마당에 구덩이를 파서 무를 저장하셨다. 구덩이를 깊게 파고 볏짚단을 보온재 겸 구멍마개로 사용했었다. 당시 쇠여물의 주재료가 바로 볏짚이었다. 볏짚은 보리짚이나 밀짚보다 부드러워서 소먹이로 적당하였다. 그 흔했던 볏짚조차 없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우리집 마당 가장자리에는 산수유나무 한그루가 있다. 왠지 그곳이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를 저장할 구덩이를 팠다. 약간 비스듬히 토굴처럼 팠다. 그리고 자루 한가득 무를 넣었다. 보온재를 덮고 목판으로 손이 들어갈 만한 문짝을 만들었다. 정성스럽게 흙으로 봉긋하게 덮었다. 삼한사온의 겨울 날씨. 눈 내린 마당은 꽁꽁 얼어 있었다. 삽질을 먹히지 않아 괭이질을 여러번 했다. 얼었으면 어쩌나 걱정을 했다. 기우였다. 무는 아주 멀쩡하다. 심지어 어린 싹이 나 싱싱해 보인다. 무를 꺼내는 재미가 솔솔하다. 즐거운 상상도 해본다.
나의 어린 시절 겨울은 왜 그렇게 추웠을까? 방에 둔 물이 얼기도 했다. 세수하고 방문을 열면 문고리에 손이 쩍쩍 달라붙기도 했다. 삼한사온의 겨울. 그럴 때마다 엄마는 뭇국을 자주 끓여 주셨다.
"야야, 뜨슨 맛으로 먹어라" 엄마는 채근하셨다. 뜨뜻한 뭇국을 먹고나면 한결 몸이 든든했다.
불현듯 엄마의 높고 깊은 헌신적인 내리사랑을 느낀다. 이제는 내가 아이들에게 채근하지만 온도차가 분명 있는듯 하다.
오늘 아침은 내가 직접 뭇국을 끓였다. 싱싱한 무 채를 쏭쏭쏭 썰었다. 스텐 다용도 냄비에 참기름을 살짝 두른 뒤 무 채를 넣었다. 조금 덖다가 미리 준비해 둔 쌀뜨물을 부었다. 간장과 소금으로 조금씩 간을 맞춰 나갔다. 마지막으로 대파와 계란을 풀어 넣어 약불에 끓였다. 집사람은 연신 맛있단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었으니까. 다들 알고 계시듯이 '남이 해준 음식'이라서......
추운 겨울이 되면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이 파도처럼 밀려 온다. 이른 아침부터 어두컴컴한 부엌에서 나무 땔감을 때서 밥을 짓고 국을 끓이셨다. 배고프던 시절 소박한 밥상이었다. 온가족이 둘러 앉아 밥 먹는 시간이 제일 좋았다. 엄마는 하나부터 열까지 손수 준비하셨다. 하늘 아래 이 땅에서 엄마가 해주시는 음식을 먹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신께서는 영원히 오르지 못할 미끄럼틀을 주셨는가 싶다. 만약 하늘에 계신 엄마가 단 하루 여행을 오신다면 맨 먼저 집사람과 아이들을 인사시켜 드리고 싶다. 진심이다.
겨울 무를 탐하다.
대한한의사협회 공식 블로그에 겨울 무의 효능이 있어 잠시 소개한다.
무에는 '디아스타아제', '아밀라아제' 등 단백질 및 지방의 분해를 촉진하는 성분들이 많아 소화에 도움을 준다. 돼지고기, 소고기 등 육류를 섭취할 때 무를 곁들이면 소화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한다.
무에는 비타인C 및 무기질 성분이 많아 신진대사 및 혈액순환 촉진에 좋으며 면역력 강화에 도움을 준다. 특히 겨울에는 날씨의 영향으로 면역력이 약해지기 쉬워 제철 겨울 무를 챙겨 먹으면 면역력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무에는 '시니그린' 성분이 풍부하게 들어있는데 이 성분은 기관지 내 점막 보호에 도움을 준다. 평소에 기침, 가래가 잦고 기관지가 약해 감기에 자주 걸린다면 무룰 챙겨 먹으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무의 매운 맛을 내는 '이소티오시아네이트' 성분은 우리 몸에 쌓여있는 중금속 및 독소, 니코틴 성분을 중화하고 체외로 배출시키는 효능을 가지고 있어, 대표적인 디톡스 식품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무에는 의외로 칼슘이 많이 들어 있어 뼈를 튼튼하게 하는 무기질 성분인 칼슘은 골밀도를 강화시켜주기 때문에 골다공증 예방에도 도움을 주는 채소이다. 그외 무의 효능으로는 숙취해소, 변비예방, 발알물질 억제 등이 있다고 한다.
무에 관한 정세연 한의원 원장의 말을 인용한다. 옛말에 "자기 전에는 무를 먹고, 아침에 일어나서는 생강을 먹어라"라는 말이 있다. 이는 무가 소화를 촉진시키고, 생강은 위의 기운을 돋우기 때문이다. 무의 매운 맛은 성질이 서늘해서 기운을 하강시키는 작용을 한다. 그래서 저녁에 먹는 것이 좋다고 한다. 저녁에 먹는 무는 소화를 촉진해 속을 편안하게 하고, 밤사이 기침 가래가 끼는 것까지 막아준다.
겨울에는 활동량이 전반적으로 활동량이 줄고 운동량도 줄어들기 십상이다. 칼로리 높은 음식, 당과 포화지방이 많은 인스턴트나 배달 음식을 절제없이 먹다가는 비만, 당뇨, 고혈압 위험을 높일 수도 있다. 무는 식이섬유가 풍부해서 포만감을 주고 혈당, 혈압 관리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겨울철 군살이 붙지 않도록 식단 관리를 할 때 무를 잘 활용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조언이다. 겨울 무가 이렇게 좋은 데 안 먹을 이유가 없다.
무엇을 어떻게 하면서 보낼 것인가? 인생 2막의 최대 화두이다.
다음 겨울이 오면 겨울 산삼을 많이 저장하고 싶다. 그리하여 더 많은 분들과 건강과 정을 나누고 싶다.
인생시계에 걸맞은 비우고 정리해가는 60줄에 바라는 소소한 소망이다.
내가 겨울 무를 탐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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