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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점록 Aug 04. 2024

전통의 지혜와 가치를 만나다.

조상들의 지혜를 찾아서...

온고지신은 우리의 몫이다. 

  삼복더위가 절정이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줄 흘러내린다. 지역의 자랑거리를 찾아 길을 나섰다. 우리 선조들의 삶과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한국등잔박물관」을 탐방했다. 등잔을 전시하고 있는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박물관이다. 홈페이지 검색을 거친 후 사전에 박물관으로 전화를 했다. 가까워질수록 이정표가 반기듯 다가왔다.


  박물관은 용인시 모현읍 능곡로 56번길 6(능원리)에 위치하며 포곡읍과 인접해 있다. 도착하니 주차장은 비교적 한산하다. 늘 그렇듯이 정문 안내판이 먼저 길손을 맞이한다. 우리 민족 문화유산이자 조상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등잔, 제등, 촛대 등 한국전통 조명기구 일체를 한자리에 모은 전시공간이다. 등기구 활용 모습 및 생활사를 엿볼 수 있어 기대감이 크다. 


  잠시 재단법인 한국등잔박물관의 연혁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전기가 들어오기 이전 사용하던 조명기구들을 전시하는 등기구 전문 민속박물관이다. 1969년 수원의 고등기(古燈器) 전시관으로 출발하였다. 등잔 수집 소문이 널리 퍼져 여러 차례 전시회를 갖기 시작하며 유명해졌다. 이후 1997년 이곳 용인에 정식 개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박물관은 독특한 외형을 자랑한다. 본관의 모습은 수원 화성 공삼돈의 모습을 따서 건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공삼돈은 가운데가 비어있는 높게 지은 성곽시설을 뜻한다. 적의 움직임을 살피기에 좋고 강력한 화기를 설치해 적을 공격하기에 알맞은 지점에 만든 것이라 한다. 박물관을 들어가려면 대문을 직접 열고 들어가야만 한다. 하지만 나름 운치가 있어 거부감은 전혀 없다. 조상님께서 대뜸 "온고지신 하였느냐?고 꾸짖으실 것만 같다. 

 

문화재는 민족의 영혼

  기대에 찬 기분으로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젊은 학예연구원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는 마치 등잔처럼 친절하고 밝은 모습이었다. 우리는 일거에 한마음이 되었다. 왜냐하면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잘 모존하고 지켜야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묻고 답하는 형식이 계속되었다. 학예연구원의 충실한 설명으로 이해와 감상, 그리고 체험의 기회를 만끽했다. 감사한 마음이다.                                     

경기도 민속문화재 제14호 '조족등'                                                              경기도 민속문화재 제15호 '화촉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조족등(照足燈)'이다. 순라군이 도둑이나 화재를 경계하기 위해 밤에 사람의 통행을 금하고 야경을 돌 때 길을 밝히기 위해 사용한 등기구다. 형태가 박처럼 생겼다 해서 ‘박등’이라고도 불렸다는 설명이다. 내부에는 철제의 초꽂이가 회전할 수 있게 돼 등을 상하좌우로 움직여도 초는 항상 수평을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기름종이를 여러 겹 발라 만들어진 다수의 조족등과는 다르게 원형 박의 밑부분을 잘라 만들었다는 점에서 가치가 뛰어나다고 한다. 오늘날 손전등으로 생각할 수 있다. 

  

  다음은 '화촉'이다. 벌집의 밀랍으로 만든 초이다. 빛깔을 들이고 꽃을 새겨 장식했다. 불을 켜면 은은하게 꿀 냄새가 나며, 귀한 초이기에 특별한 예식과 혼례에 사용되어 화려하다. 결혼식 날만 관아에서 빌려 사용했다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두 개가 한 쌍으로 이루어진 원통형의 초이다. 심지는 관솔로 되어 있고, 초 외면에는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란 무늬가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어 유물의 가치가 크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화촉은 곧 혼례를 의미한다. 지금도 결혼식을 한 때 '화촉을 밝힌다'라는 말을 쓰고 있다. 이처럼 아직도 우리 문화에 선조들의 찬란한 문화가 이어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을 불태워 어둠을 밝히는 화촉처럼 인생의 첫출발을 상징하는 의미 또한 상당하다. 

 

   한편 '조촉등'과 '화촉' 두 점은 2020년도 경기도에서 유물의 가치를 높이 평가해서 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이로써 역사, 예술, 학술적 가치가 높아졌으며, 적절한 보호와 관리로 지역 관광 자원으로도 활용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문화재는 민족의 영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청동고사리말림형등경(고려시대)                                                                         자승등잔대(조선후기)

  박물관 탐방은 나에게 새로운 경험과 지식을 선사해 주었다. 각 전시물은 그 자체로 이야기와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우리 조상들이  밤을 밝히면서 크고 작은 사연을 간직한 등잔, 촛대, 서등, 제등 등 다양한 전통 등기구를 만나볼 수 있었다. 물론 다양한 전시물을 통해 과거의 문화와 역사를 탐험할 수 있었다. 그것들을 통해 시대의 다양한 생활상을 엿볼 수 있었다.   

각종 등잔대와 촛대


  2층 전시실에는 실내외에서 사용된 다양한 등기구를 기능별, 재료별로 분류하여 일상을 밝힌 등잔의 모습을 전시하고 있다. 청동과 나무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촛대와 목제 등잔, 유기 등잔, 철제 등잔과 같은 아름다운 등잔대들, 이렇듯 민속학적으로 가치있는 등기구 유물의 감상은 우리 후손 모두에게 풍성한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유물은 문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스토리가 있다. 

  

  한국등잔박물관의 초대 관장인 故 김동휘 박사는 "등잔의 심미성 뿐만 아니라 마치 등잔이라는 유물이 자기 주인의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것처럼 문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있는 스토리가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탐방 시에도 "우리에게 정신적으로 깨우쳐 주는 것들을 얻어 가기를 바란다"는 창립자의 희망처럼 나의 희망이 되었으면 한다.


  등잔도 유행이 있었다고 한다. 불교 중심의 고려 시대는 염주문야 촛대가 유행하였으며, 유교 중심의 조선 시대는 죽절(대나무) 문양 등잔이 유행하였다. 우리나라 등잔의 특징으로는 온돌문화의 영향을 받아 바닥에 앉았을 때의 눈높이에 맞춘 40~50cm 정도의 키가 큰 등잔대와 등잔을 함께 사용했다고 한다.

정화수(井華水) 떠 놓고 가족의 무사안녕을 비는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


  별빛이 채 사그러지지도 않은 새벽녘에 길러 온 맑고 깨끗한 정화수(井華水). 우리 어머니의 정성이 가득 담겨 있다. 깨끗한 한복으로 갈아 입고 치성을 드리는 어머니의 모습. 나는 마치 넋이 빠진 듯 한참을 바라보았다. 이처럼 박물관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제공해주는 공간이다. 우리에게 지식과 영감을 주고 우리의 시각을 넗혀주기도 한다. 


  박물관 야외 곳곳에도 전시물이 자리하고 있다. 조화롭게 꾸며진 자연환경과 인공의 연못, 함께 배치된 석등과 솟대, 장승과 문인석 등이 분위기를 한껏 끌어 올려준다.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역사 교육의 장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창의성을 자극하고, 예술적 사고의 확장을 얻으니 참 좋다. 


  이번 탐방을 통해 나는 한국등잔박물관이 얼마나 가치있고 흥미로운 장소인지를 깨달았다. 앞으로 더 많은 박물관을 방문하여 다양한 문화와 역사를 탐험하고 새로운 영감을 얻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과 숨은 명소 한국등잔박물관을 꼭 한번 가볼 만한 장소로 권하고 싶다. 오직 하나 밖에 없는 보석같은 박물관이기 때문이다.  선조들의 삶의 발자취를 향유하고 집으로 가는 길 무더위가 무색할 정도다.



#경기도 # 용인 #한국등잔박물관 #문화재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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