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보다 먼저 다가온 생활 물가
'껌값'이라는 말이 있다.
시중에서 살 수 있는 물건 중 가장 저렴한 축에 속하기에, 누군가에게는 부담 없는 작은 돈이나 대수롭지 않은 가치를 뜻하는 표현이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껌은 통화 가치의 최저선을 가늠하는 상징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얼마 전, 나는 서울남부터미널의 마트 계산대 앞에서 그 견고하던 상징이 조용히 무너지는 순간을 마주했다.
작년말 서울에서 열린 멘토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버스 출발 시각까지 약간의 여유가 있었다. 입가심이라도 할 요량으로 터미널 안 마트에 들렀다. "껌을 씹으면 뇌 활성화에 좋다"는, 어디선가 들은 말이 떠올라 진열대에서 껌 한 통을 무심코 집어 들었다.
내 머릿속 '껌값'의 데이터베이스는 수년 전 어느 지점에 멈춰 있었고, 나는 아무 의심없이 지갑에서 1,0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계산대에 앉아 있던 점원이 나를 힐끗 보더니,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농담 반 진담 반의 어조로 한마디를 건넸다.
"손님, 요즘 껌값이... 껌값이 아닙니다."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농담인 줄 알았다. 하지만 바로 이어진 가격표의 숫자를 보는 순간 나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대부분 1,200원 선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동전 몇 개를 더 얹어 주고서야 겨우 껌 한 통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1995년 200원 하던 껌 한 통의 가격이 어느덧 1,200원이 돼 있었다. 30년 사이 무려 6배, 500%가 넘는 상승이다. 가격은 분명 서서히 올랐을 것이다. 다만 그 변화가 한꺼번에 체감되는 순간은 늘 이렇게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그랬다. 껌을 직접 샀던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할 정도로 무심했던 사이, '껌은 그냥 껌일 뿐'이라는 나의 오래된 감각은 현실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채 박제가 되어 있었다.
껌 한 통 가격에 놀라는 내 모습이 우습기도 했다. 하지만 계산대를 돌아서는 순간, 마음 한편이 묘하게 씁쓸해졌다. 뉴스에서는 연일 고물가 시대를 경고한다. 소비자물가지수, 인플레이션 같은 숫자들이 쏟아진다. 그러나 그런 말들은 늘 머릿속을 스쳐갈 뿐, 피부에 와 닿지는 않는다. 물가는 통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일상의 사소한 물건이 예상 밖의 가격으로 다가올 때 비로소 삶 속으로 파고든다.
문득 '천 원'이라는 돈을 떠올려 보았다. 예전의 천 원은 껌 한 통을 사고도 음료수 하나쯤은 덤으로 고를 수 있는 든든한 '한 장'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천 원은 계산대 위에서 잠시 머뭇거리다, 미안함만 남긴 채 사라지는 허약한 종이가 되었다. 오른 것은 껌값만이 아니다. 점심 한 끼를 먹으려 식당 메뉴판 앞에 설 때도, 퇴근길 커피 한 잔을 마시려 할 때도 우리는 늘 한 번 더 멈칫한다. 밥값, 교통비, 공공요금까지. 우리의 일상은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가벼워지고 있다.
버스 창가에 기대어 껌을 씹어본다. 처음의 달콤함은 잠시뿐, 이내 입안에는 질긴 감촉만 남는다. 묘하게도 지금 우리가 마주한 물가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설마' 하다가, 어느 순간 "아, 정말 많이 올랐구나" 하고 체감하게 되는 그 현실의 질감 말이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계산대 앞에서 조용히 마음속 셈을 할 것이다. 이 가격이 과연 합당한지, 오늘의 지출이 내일의 나를 위협하지는 않을지. 껌 한 통의 가격에 놀라는 일이 더 이상 유난이 아닌 시대. 뉴스보다 먼저 우리의 지갑과 기억이 물가 상승을 증명하고 있다.
#껌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