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중반에 깨달은 노후 행복의 비밀, '비움'의 미학
"아, 참 좋은 아침이다."
어느덧 인생 속도계가 60대 중반을 향해 가파르게 달려가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며 내뱉는 이 첫
마디는 그날 하루의 온도계를 결정한다. 누군가에게는 설레는 개막 선언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버거운 숙제의 시작이다. 퇴직 후 수많은 선후배를 만나며 나는 한 가지 질문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대체 무엇이 노후의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것일까.
흔히들 건강, 돈, 가족의 화목을 답으로 꼽는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만난 이들 중 가장 평온한 표정을 지은 이들은 '많이 가진 자'가 아니라 '잘 내려놓은 자'들이었다. 인생의 속도가 무섭게 빨라지는 이 시기, 우리에게 필요한 공부는 더하기가 아닌 '비움'의 미학이었다.
퇴직 후의 삶
퇴직 후에도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경쟁 속에 산다. 누구 자식이 대기업에 갔고, 누구 연금이 얼마며, 누가 크루즈 여행을 떠났다는 소식들이 카톡방을 유령처럼 떠돈다. 하지만 남의 삶을 잣대 삼아 내 인생을 재단하는 순간, 나는 내 삶의 주인이 아니라 관객으로 전락한다. 남의 집 정원에 핀 꽃이 아무리 화려해도, 내 집 마당의 잡초를 뽑는 내 손길이 더 소중한 법이다. 비교를 멈출 때 비로소 낡은 구두와 소박한 식탁이 사랑스럽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얼마 전, 현직 시절 함께 땀 흘렸던 후배들을 만났다. 자리가 무르익을 무렵 한 후배가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형님, 이제 직함 떼고 형님 아우로 편하게 부르면 어떨까요?" 순간 가슴 한구석이 환해졌다. 나 역시 그게 훨씬 편했다. 내 안에도 여전히 '과거의 나'를 증명하고 싶어 안달 난 해묵은 미련이 똬리를 틀고 있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내가 현역 때는 말이야..." 이 문장이 길어질수록 현재의 나는 초라해진다. 옛 직함과 성과를 자꾸 꺼내 드는 것은 이미 지나간 버스표를 들고 정류장에 서 있는 것과 같다. 과거의 영광은 훈장으로 남겨두고, 지금은 '길가에 핀 꽃에 눈길을 줄 줄 아는 나'로 살면 충분하다. "나는 한때"라는 말이 줄어들수록, "나는 지금"이라는 생동감이 차오른다.
인간관계도, 물건도, 역할도 마찬가지다. 손에 쥐고 있는 게 많으면 반가운 이를 만나도 손을 흔들어 인사할 수 없다. 버리지 않으면 가벼워질 수 없고, 가볍지 않으면 자유로울 수 없다. 옷장 깊숙이 박힌 안 입는 옷을 정리하듯, 내 마음속 켜켜이 쌓인 케케묵은 감정과 불필요한 인맥을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오늘의 하루는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며, 결국 내 인생이라는 긴 풍경화를 완성하는 한 조각이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더 행복한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나는 요즘 세 가지 원칙으로 하루를 디자인한다. 우선 일정을 단순화하여 산책 한 번과 친구와의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빽빽한 일정은 오히려 독이 된다는 걸 알아서다. 여기에 '해야 할 일'의 목록보다 '하고 싶은 일'을 먼저 적으며 오랫동안 나를 짓눌러온 의무감에서 해방되는 연습을 병행한다. 마지막으로 '꼭'이라는 단어를 아끼기로 마음먹고 '꼭 해야 한다'는 말을 하루에 딱 한 번만 사용한다. 그러면 삶의 긴장감이 마법처럼 줄어드는 것을 느낀다.
가벼워지니 웃음이 늘었고, 관계가 편안해졌으며, 역설적으로 돈에 대한 막연한 불안도 줄어들었다. 노후의 행복은 거창한 성취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하나씩 내려놓는 '조용한 용기'에서 시작된다.
오늘 당신의 가방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가. 혹시 너무 무거워 쩔쩔매고 있다면, 과감히 하나를 길가에 내려놓아 보자. 그때 비로소 당신의 노후는 가볍게 춤추기 시작할 것이다. 텅 빈 벤치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며 "참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여유, 그것이 우리 인생 후반전이 선사하는 가장 큰 사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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