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의성산수유마을 꽃맞이 행사
봄이 온다는 소식은 언제나 가슴을 먼저 적신다. 전국 곳곳에서 꽃 소식이 들려오면, 사람들의 마음은 말보다 먼저 꽃밭을 향해 달려간다. 봄은 늘 짧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짧고 소중한 순간을 손안에 붙잡으려 기꺼이 길을 나선다.
경북 의성군 사곡면. 그 야트마한 산자락 아래, 매년 봄이면 온 세상을 노랗게 물들이는 마을이 있다. 바로 산수유마을이다.
며칠 전, 퇴직 후 잔잔하던 일상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고향 친구들이 모인 단체 대화방에 포스터 한 장이 올라왔다.
'제19회 의성 산수유마을 꽃맞이 행사'.
그 글자를 보는 순간, 공직의 세월 속 깊이 묻어두었던 고향의 봄 풍경이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올해 꽃마을 행사는 3월 21일부터 29일까지 산수유마을 일원에서 열린다.
산수화 속을 걷다
이 마을에는 수령 300년이 넘는 산수유나무 약 3만 그루가 드넓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산등성이와 논두렁, 도랑 둑방길 할 것없이, 짙은 노랑 물감을 흠뻑 부어놓은 듯한 산수유꽃의 행렬이 10리(약4 km) 넘게 이어진다.
의성의 명물인 연둣빛 마늘밭 위로 노란 산수유 꽃무리가 화가의 붓끝처럼 톡톡 내려앉은 풍경. 이것이 사곡면이 아니면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봄의 색이다. 고즈넉한 돌담길과 실개천을 따라 천천히 걷다보면, 화려한 무대 위 축제보다 더 깊고 오래된 몸 속으로 스며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한 폭의 산수화가 아니라, 그 산수화 안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다.
다시 피어난 봄의 향연
그러나 이 노란 축제가 누구에게나 마냥 설레는 풍경만은 아니다. 지난해 봄, 의성 일대를 덮친 대형 산불은 수십 년 세월을 버텨온 나무들을 순식간에 잿더미로 삼켜버렸다. 주민들은 그해 축제 대신 서로의 아픔을 나누는 시간을 택했다. 객지에서 그 소식을 접하며 고향 산자락이 검게 타들어 가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봐야 했던 마음의 무게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자연은 다시 봄을 준비했다. 산수유나무들은 어김없이 꽃망울을 터트렸다. 다른 꽃들이 아직 추위 앞에서 머뭇거릴 때, 가장 먼저 노란 손을 내미는 산수유의 성실한 몸짓은, 재 위에서도 묵묵히 제자리를 지켜온 고향 사람들의 모습과 꼭 닮아 있었다.
봄은 기억을 가리지 않는다. 아픔이 배인 땅 위에도 봄은 어김없이 노랗게 온다.
"봄은 짧고, 의성은 노랗다"
올해 축제의 슬로건이 이 한 문장 안에 모든 것을 담았다.
산수유는 의성을 상징하는 군의 꽃이다. '영원불멸의 사랑' 이라는 꽃말처럼, 그 안에는 고향 땅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군민들의 따뜻하고 질긴 성품이 오롯이 담겨 있다. 산수유꽃이 절정을 이루는 기간은 길지 않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사곡면의 봄은 온 세상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그 빛깔은 발길을 멈춘 사람의 눈 속에,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는다.
꽃이 절정에 이르는 시기에는 방문객이 몰려 교통이 다소 혼잡할 수 있다. 그럼에도 꽃을 향해 달리는 길은 설렘으로 충분히 넉넉하다. 이 순간을 놓치면, 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사곡의 봄은 지지 않는다
돌담길과 실개천을 따라 이어지는 산수유 꽃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 순간 걷는 것인지, 봄 속에 잠기는 것인지 경계가 흐릿해진다.
봄은 잠시 머물다 떠난다. 하지만 노란 십리 꽃길이 남긴 잔향은 오래도록 기억의 어딘가에 남아, 다음 겨울이 길고 추울 때 조용히 꺼내볼 수 있는 온기가 될 것이다.
#의성산수유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