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점록 Jul 22. 2023

낯선 땅이 아닌 낯선 나였다(3)

세상은 넓고 갈 곳이 많다.

  

'아드리 해 붉은 보석' 크로아티아에 취하다.

  어느덧 동유럽 여행 5일 차다. 이제부터 발칸 2개국 투어에 돌입한다.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다. 강행군에 피곤한 탓인지? 면역력이 떨이진 것인지? 입술 포진이 생겼다. 립밤을 사서 사용했지만 별 효과는 없다. 호텔 식용 꿀을 짜서 입술에 바르기도 했다. 나의 이런 모습을 본 일행 중 한 분이 몸에 좋은 거라며 건강보조식품을 나눠 주기도 했다. 낯선 여행지에서 훈훈한 마음씨에 감동했다. 일행들에게 '추한 모습을 보여 죄송하다'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사실 속마음은 불편했다.

   

  부다페스트에서 4시간 만에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 도착했다. 크로아티아는 자연경관, 역사적 유산, 문화적인 매력 등이 결합된 다채로운 나라이다. 시내를 촘촘하게 연결하는 트램을 타고 자그레브 관광이 시작되는 심장과도 같은 '반 옐라치치' 광장에 내렸다. 19세기 크로아티아 영웅인 반 옐라치치 동상이 우뚝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양한 매력을 지닌 여기서 과연 어떤 이야기들을 마주하게 될지 사뭇 궁금하다.   


  잠시 쇼핑할 시간이 주어졌다. 꽃가게가 즐비하다. 상인들은 기다렸다는 듯 밝은 표정으로 우리를 반겨준다. 바로 '돌라츠'시장이다. 조금 더 올라가니 노천에 붉은색 파라솔이 가득하다. 직접 재배를 한 과일과 채소를 파는 재래시장이 나타났다. 과일 가게 아주머니는 추를 이용한 이채로운 수동식 저울로 가격을 정했다. 흥정을 하면서 깎아주기도 한다. 흡사 우리나라 전통 시장처럼 사람 냄새나는 넉넉한 인심을 보여주었다.     

돌라츠 시장


  생수는 평소 버스기사에게 사서 마신다. 1병에 1유로이다. 그렇지만 오늘은 점심을 먹으며 식당에서 생수를 보충했다. 휴대전화 배터리도 식당에 갈 때마다 충전을 했다. 보조밧데리가 필요했지만 준비를 못했다. 식당 앞에서 현지인 가이드와 인사 후 투어를 하였다. 


  자그레브 북쪽을 지키는 돌의 문을 지나 화려한 칼라의 모자이크 지붕이 아름다운 성 마르코 교회는 공사중이라 들어가지 못하고 먼발치서 봤다. 몽고의 침략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로트르슈차크 탑'은 자그레브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정오가 되면 대포를 발사하여 시간을 알린다고 한다. 


  반 옐라치치 광장 주변에서 1시간 20분 정도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멀리 가지는 못하고 벤치에 앉아서 일행과 이야기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바로 앞 상가 윗집에서 엄마와 어린아이들이 우리를 보면서 환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우리도 손을 흔들며 화답을 했다. 친절함이 몸에 배어 아이들에게 산 교육을 시키는 것 같아 흐뭇했다. 버스를 타고 오늘 묵을 장소인 EUROPA호텔에 도착했다. 시설이 깔끔하고 좋다. 이구동성으로 지금까지 호텔 중 가장 만족도가 가장 높았다. 호텔식으로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면서 즐거움을 만끽했다. 


  6일 차 아침이다. 비가 조금 내렸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가는 길목에서 마치 동화 속 마을 같은 '라스토케'에 몸을 내렸다. 라스토케는 천사의 머릿결이란 뜻에 걸맞은 요정이 살고 있다고 해도 믿을 만한 숨 막히는 전경이다. 가이드 K 씨는 카푸치노가 맛있는 카페가 있다며 우리를 안내한다. 크고 작은 폭포는 온 마을을 포근히 감싸듯 흘러내리고 있다. 길손을 위해 아기자기한 수제품을 내다 팔기도 한다. 불현듯 나는 흐르는 물과 조화로운 이 마을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으로 가야 하는데, 누가 봐도 절경에 취한 모습들이다.  

라스토케 마을


   크로아티아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플리트비체 호수(Plitvice Lakes)는 살아있는 자연의 생동감과 신비감을 물씬 머금은 곳이다. 무수한 생명체를 감싸 안은 대자연의 아늑한 품인 동시에 호수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이기도 하다. 다채로운 멋을 지닌 총 16개의 호수가 층층 계단을 이루고 있고 각각의 호수와 호수는 총 90여 개의 크고 작은 폭포가 연결되어 빼어난 자연경관을 선보이고 있다. 마치 삶의 여정에 힘들고 지친 몸과 마음을 보듬어주는 신의 선물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16개의 호수는 에메랄드색 은은한 빛을 발하고, 흡사 하늘에서 뿜어주는 듯한 폭포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마치 금방 만들어내는 듯한 경외감마저 느껴진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흙길 이외의 산책로는 대부분 목재를 많이 사용하여 만들어져 있다. 발길 옮길 때마다 졸졸졸, 콸콸콸 물소리는 오케스트라 연주하듯 흥겨움마저 차오른다. 호수 속 송어 떼는 동쪽나라에서 온 나그네에게 인사하듯 고개를 살포시 내민다. 흡사 여화 '아바타'의 신비로운 배경이 연상이 되었다.  신비로운 분위기와 잘 보존된 자연환경에 요정이 살고 있다고 착각할 만큼 아름답다. 아! 진짜 너무 좋다.

벨리키 슬라프 대폭포


  점심은 현지식 송어요리를 생전 처음 맛보는 호사를 누렸다. 아니 맛뿐이 아니다. 식당 종업원의 퍼포먼스가 웃음을 자아낸다. 음식을 나를 때마다 마치 오페라에서나 봄직한 몸짓, 그리고 겅중겅중한 걸음걸이와 잘 알아듣지 못하는 대사까지 연출한다. 우리 일행 모두에게 최고의 식사 시간이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그분은 음식도 여행임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송어요리를 맛보다


 '알프스의 진주' 블레드를 탐하다.


  점심식사를 먹은 뒤 '알프스의 진주라 불리는 슬로베니아 호반의 휴양지 블레드로 이동했다. 그림같이 아름다운 블레드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블레드 성'이다. 이 성은 호숫가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아찔하게 우뚝 솟아 있다. 무려 130m 높이의 천혜의 자연적인 조건을 바탕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그야말로 완벽한 요새를 꿈꾼 듯하다.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성이다. 성 입구부터 견고함이 물씬 묻어난다. 타워와 성벽 등 중세시대 요새의 전형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블레드 전체가 조망되어 그야말로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하다. 누가 보아도 예술이요 어떻게 봐도 절경이다. 이 성은 국내 한 방송사 드라마의 배경지로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고 한다. 바로 K-문화의 힘이리라.     

블레드 성
블레드 성 안내판

  

  다음은 '블레드 호수'이다. 알프스의 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호수라고 한다. 물이 참 맑다. 눈도 덩달아 맑아지는 기분이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멱을 감느라 먼 이국땅에서 온 나그네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젊은 연인들도 이에 뒤질세라 너무나 자연스럽게 물놀이를 하고 있다. 나도 물속으로 '첨벙첨벙'들어가 헤엄을 치고 싶었다. 만약 패키지여행이 아니었다면 하는 아쉬움마저 든다.  


  그리고 호수의 명물인 플레트너라는 전통나룻배가 있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뱃사공은 호수의 보존을 위하여 오직 이 지역 출신의 남자들만이 운행하는 자격이 주어진다고 한다. 모터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뱃사공이 직접 노를 젓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아마도 자연보호 차원이 아닐까 싶다. 블레드 호수의 아름다운 풍경과 더불어 즐거움을 더하고 있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호수가 있을까 싶다. 그렇게 내 마음을 빼앗아 갔다. 나도 모르게..., 


   가족들과 호숫가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비행기표 체크인을 했다. 귀국행 비행기 좌석이 또 감금석(?)이 될까 내심 걱정이다. 마음을 졸이며 체크인을 했다. 어쩌면 프랑트푸르트 공항에서 좌석 조정이 될 지도 모른다는 순진한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일단 기대를 하면서 오늘밤 묵을 슬로베니아 KREK 호텔로 향했다. 우리 가족은 저녁을 먹고 호텔 앞 대형 매장에서 모처럼 즐거운 쇼핑 시간을 가졌다.

  

  7일 차 아침이다. 호텔에서 아침을 먹으며 직원에게 우유를 찾으니 직접 걸음을 해서 찾게 해 주었다. 나는 감사한 마음에 서투른 영어로 "Very kind"라고 감사를 표하니 그분은 만면에 미소가 가득해졌다. 나 또한 당연히 즐거운 식사 시간이 되었다. 비록 소소하지만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는 우리 속담의 중요성을 새삼 느꼈다.  


  발칸의 행복한 여행이 끝나간다. 졸필의 한계는 여기서도 여지없이 빛을 발(?)했다. 하늘이 빚어 준 너무나 귀하고 선물 같은 땅, 아름다운 풍광을 카메라와 눈과 마음속에 담았다. 하지만 둔필이라 지면에 다 담지 못해 답답한 마음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길손은 오스트리아의 아름다운 호수마을 잘츠캄머굿으로 길을 재촉해야만 했다.



  


작가의 이전글 낯선 땅이 아닌 낯선 나였다.(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