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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점록 Mar 02. 2023

정직과 성실을 영원한 벗으로

 처음처럼

교육생의 다짐


  내가 처음 경찰관으로 임용되기 전 지금은 없어진 부평에 위치한 경찰종합학교에서 경찰관으로서 행해야 할 기본 소양과 전문 지식을 습득(習得)하고 새로운 직업인으로 태어날 중요한 시기에 인상 깊은 문구를 접하게 되었다.


  생활실 계단 벽에 걸려 있던 액자에 '정직과 성실을 영원한 벗으로'라는 함축적 의미의 글귀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르내리는 가운데 은연중 가슴 한 곳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꿈 많던 학창 시절 교실에 걸려 있는 급훈 또는 주훈으로만 접하였을 문구가 새로운 각오와 다짐으로 경찰관이라는 직업인으로 탈바꿈할 중요한 시점에서 이 문구는 나에게 강한 느낌 그 자체였다.


  그 이후로 나의 삶 속에서 늘 되새기는 좌우명이 되었고 노력하면서 하루하루를 마무리해 가는 이정표 역할을 해 주었다. 예비경찰로서 주어진 교육을 무사히 수료하고 배명을 받아 처음 근무한 곳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생전 처음 밟아본 서울 하고도 서대문경찰서 홍연파출소였다. 사고무친 그야말로 낯설고 물선 객지였다.

나에게 업무에 대한 두려움보다 기본적인 숙식문제가 더욱 급선무였다.


  같이 발령받은 동기와 의논 끝에 염치 불고하고 소장님과 선배님들께 이러한 사정을 말씀드렸다. 당장 갈 곳이 없으니 파출소에서 당분간 지내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리하여 파출소가 직장 겸 하숙집이 된 셈이었다.

가난한 날의 행복이었던 햇병아리 시절이었다.




아픈 손가락


  선배님들의 축적된 업무방식을 하나씩 배우며 보내던 어느 날, 소재수사 건으로 어떤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집이라기보다는 방 한 칸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라고 할까. 변변한 세간살이는 찾아보기 어려운 좁은 방안에는 할아버지와 서너 살 정도로 보이는 꼬마아이가 있었다.


  사실 그때 모습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던 같다. 집안 내막은 구체적으로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한쪽 다리가 없는 할아버지가 어린 손자를 직접 키우신다는 것이었다. 대충 알아본즉 자식은 영어(令圄)의 몸이었으며, 며느리는 가출을 한지가 오래된 상태란다. 그런 어려운 세간살이를 보면서 나름대로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왔다고 생각한 나 자신의 모습을 반추해 보면서 부끄러움이 일어났다.


  가난은 결코 불행이라고 말할 수 없기에 할아버지 가족을 도와 드릴 방법이 있을까 궁리를 해보았지만 별도리가 없었다. 주민등록상에 가족이 등재되어 있다는 이유로 행정적인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세월은 흘러 그 당시 네 살배기 녀석은 무럭무럭 잘 자라서 이제 벌써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다. 녀석의 해맑은 모습을 가끔 대할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편치 못함은 왜일까?


  설날 등 명절 때가 되면 가끔 찾아뵙지만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이러한 사례는 누구든지 근무 수행 중에 충분히 접할 수 있고, 음지에서 묵묵히 봉사하시는 동료분들이 물론 많이 계시리라 믿지만 더욱 많은 분들의 손길로 이어져 지역주민의 어려움에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 세상에는 어려운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 것 같다. 소외되고 지친 수많은 사람들이 힘겹게 살아가지만 아직도 우리의 복지 여건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닌 것 같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은 만 달러 시대로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속화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영원한 벗


  나는 가끔 힘들고 괴로울 땐 푸쉬킨의 '삶'을 읊조리곤 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

      ......


                                   - 중략 -

    ❚ 율기 6조(칙궁, 청심, 제가, 병객, 절용, 낙시)는 실학자 정약용 선생의 목민관이 지켜야 할 지침이다 ❚

  

  최근엔 청량리 588 사람들을 친구로, 상처받고 사는 사람들을 애인으로, 어려운 사람들과 동고동락하는 어느 목사의 인간미 넘치는 삶의 현장을 엮은 책을 감명 깊게 읽은 기억이 있다. 훈훈한 사랑과 눈물이 묻어 나오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고 회고해 본다. 인간미가 상실되어 가는 요즘, 또 특히 바쁜 경찰 업무 속에서도 잔잔한 글들을 접한다는 것은 생활을 좀 더 여유 있게 만드는 모태가 된다고 본다.


  또 어느 철학자의 말에 의하면 친절ㆍ봉사ㆍ성실을 '선'이라고 했다. 친절은 남의 생명을 기쁘게 하고, 봉사는 남의 생명을 도와주며, 성실은 남의 생명을 즐겁게 해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 경찰은 친절봉사란 구호 아래에서 기나긴 세월을 보내왔다. 국민의 공복으로서 얼마만큼 친절과 봉사를 해왔을까.


  실천이 없는 구호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어쩌면 지금까지 우리는 너무 소극적이고 피동적인 근무여건을 스스로 조성해 왔는지도 모른다. 상명하복이 있을 뿐 하의상달은 어려웠다. 진취적 열정과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 위에 정직과 성실이 함께 한다면 우리 조직의 발전은 더욱 극대화될 것이다.


  정직과 성실은 행동의 좌표이며, 반성의 거울이며, 가치척도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의 온몸을 태워 온 세상을 밝히는 촛불처럼 진정한 희생과 봉사가 절실할 때이며, 국민들도 이제는 질 좋은 치안서비스를 구가하는 새로운 경찰상을 요구하고 있다.


  역사는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은 가. 삼라만상이 소생하는 봄이다.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자태를 한층 뽐내는 이 아름다운 계절에 21세기를 향한 경찰 나름대로 재도약의 계기를 만들 수 있게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참으로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경찰, 신뢰받는 경찰로 거듭 태어나는 몸부림. 그 몸부림 속에 지금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국민의 생명보호를 위해 치안 일선에서 소홀함이 없는 경찰관들께 경찰로서가 아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성원하고 싶다.


'정직과 성실을 영원한 벗으로'  


※ 이 글은 월간 수사연구 1996년 5월호 '독자석'에 실린 작품이다.


이미지 출처 : Pixabay로부터 입수된 Joe님의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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