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벚꽃의 꽃말이 시험기간이 아님은 - 저모

[이모저모세모] 2022년 04월호

by 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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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벚꽃의 꽃말이 시험기간이 아님은



[저모] 더 이상 벚꽃의 꽃말이 시험기간이 아님은.


더 이상 벚꽃의 꽃말이 시험기간이 아님은, 역시 모든 교육과정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이야기다. 더 이상 시험도, 과제도 없다. 매일같이 쏟아져 나와 나를 밤새우게 하는 과제도, 한숨 돌리면 돌아오는 시험 기간도 사라지고 나니 홀가분하고 행복했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불안한 자유였다.


졸업 후 바로 인턴을 하게 되었다. 직장인은 학생과 달리 주어진 업무 시간이 있고, 그 안에 업무를 끝내면 퇴근 후에는 자유가 주어졌다. 학생 때는 수업이 끝나도 과제가 내 목줄을 잡고 있는 기분이었는데, 직장인이 되니 퇴근하면 그 무엇도 나를 옭아매는 것이 없었다. 그런 면에서 인턴을 통해 경험한 직장인의 삶은 만족스러웠다. 적절한 노동에서 오는 삶의 만족감, 퇴근 후 보장된 자유, 얼마 안 되지만 쌓여가는 통장 잔고. 원하던 직무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낮에 적당한 일을 하고 저녁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정직원이 아닌 인턴. 반쪽짜리 자유였다. 미래의 온전한 자유를 위해 반쪽짜리는 반납하고, 퇴근 후 일주일에 4일 정도 취업을 준비했다. 인턴이 끝나기 전에 미리 취업을 준비해 놓고 인턴이 끝나면 곧바로 짜잔 하고 취업에 성공해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퇴근 후 나의 마음가짐과 체력은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취업을 준비하기에 힘에 부쳤다. 사실 그때의 취업 준비는 제대로 된 취업 준비라기 보다는 취준을 ‘흉내 낸’ 것에 가까웠다. 취준생 흉내 내기는 얼마 가지 않아 그만뒀다. 이후로는 퇴근의 자유를 누리며 쉬기 바빴다.


공식적 백수가 된 지금, 이제서야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강제하는 일들이 없어지니 심적,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조금씩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실행해나가고 있는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고 만족스럽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삶이란, 참 꿈과 낭만이 가득하게 들린다. 하지만 외면하기 힘든 현실 또한 존재한다. 예를 들면 취업과 돈.


앞서 간략하게 적었지만, 현재까지도 진행되고 있는 졸업 이후 방황기에 대해 적어 볼까 한다.




엉뚱한 길로 가는 가장 쉬운 방법: 조급해하기


졸업을 앞두고 조급해졌다. 남들보다 한 학기 늦게 졸업한 탓에 더욱 그러했다. 얼른 취업해서 내가 뒤처지지 않았다는 것을, 내가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할 것만 같았다. 불안함에 휩쓸려 무작정 회사에 지원했고, 요즘 많이 뽑는다는 직무의 스터디 그룹도 만들었다. 그렇게 한 회사에서 인턴을 하게 되었고, 디자인 분야에서 채용이 가장 많은 직무의 포트폴리오 스터디를 하게 되었다.


인턴은 나름대로 편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었지만 내가 원하던 직무가 아니었다. 그곳에서의 성장 가능성도 의심스러웠다. 포트폴리오 스터디는 하면 할수록 내 자신이 작아지는 것만 같았다. 스스로 느끼는 실력의 격차도 있었지만, 그들이 가진 열정과 노력에 비해 나의 열정과 노력은 보잘것없었다. 취업을 향해 열심히 준비하는 그들이 부러웠다. 그리고 열심히 살지 못하는 나에 대한 자괴감이 들었다. 나는 도대체 왜 열심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까? 무엇을 하면 나도 저렇게 열정적으로 살 수 있을까?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 이게 아닌데…’였다.


사실 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이야기를 만들어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데 앞길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디자인 직무 취업이라는 비교적 명확해 보이는 길을 택했다. 적어도 이건 어떻게 준비 해야 하는지 아니까, 디자인도 재밌긴 하니까. 또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의심했다. ‘취준하기 싫어서 핑계 대는 거 아니야? 그 생각을 도피 수단으로 삼는 거 아니야? 네가 나약해서 취준하기 싫은 걸 진짜 하고싶은 일이라느니 꿈이라느니 같은 말로 포장하지 마.’ 괴로운 마음은 취준 흉내 내기를 그만둘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취준을 그만두고 나서야 내가 참 엉뚱한 곳을 헤매고 있었다는 것을, 내게 맞지도 않는 곳에 나를 어떻게든 구겨 넣으려고 애쓰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급함과 불안함은 나를 엉뚱한 길로 이끈다. 인턴이 그러했고 취업 준비가 그러했다. 그리고 나의 경우, 조급함은 남들과의 비교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다 보니 남들에게 휩쓸리기도 쉬웠다. 주변 친구들로부터 합격 소식이 들려오자, 나의 페이스에 맞춰 준비하기보다 쉽고 빠른 길을 택했다. 요즘 많이 뽑는다는 직무, 연봉이 좋다는 직무, 내 주변 친구들이 많이 준비한다는 직무 주변을 기웃거렸다. 조급해하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조금 더 회사를 알아보고, 내가 원하는 직무에 맞춰 준비하고, 좀 더 배울 점이 많은 곳에서 나의 커리어에 더 도움이 되는 인턴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를 통해 얻은 것은 있다. 인턴 경험이 하나라도 있어 지금의 백수 생활을 덜 불안하게 보내고 있고, 포트폴리오 스터디를 통해 그 직무가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 미련은 없다.


조급함은 마치 불안함의 진화 버전 같았다. 불안함은 어떻게 잘 구슬려 잠재울 수도, 이용할 수도 있었지만 조급함은 불안함보다 강력해 내가 다루기 참 어려웠다. 그럼에도 다시 조급한 마음이 든다면 이전보다는 잘 다룰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경험을 통해 조급한 마음이 남들과의 비교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았으니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잊지 말자, 또 엉뚱한 곳을 헤매고 싶지 않다면 불안해할지언정 조급해하지는 말자.




하고 싶은 것과 불안함 사이의 줄다리기


인턴을 마치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 이게 아닌데…’의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 결심했다. 앞으로도 이 생각이 내 발목을 잡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건지, 그저 취업을 회피하는 수단이었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모와 동화책을 쓰고, 글과 그림을 연습하기 위해 ‘이모저모세모’를 작업하고 있다. 또 여러 가지 아이디어와 프로젝트들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계획하고 있다. 아직 배워야 할 것도 많고 갈 길이 멀어 보이지만, 분명한 건 정말 즐겁고 이런 일이라면 열정을 갖고 할 수 있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취준을 하는 것보다 더 불안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지금 이걸 할 때가 아니라 취업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불안하다. 공백기가 더 길어지기 전에 취업을 해야 하지 않을까? 여기서 더 여유 부렸다가 취업할 때 불리해지면 어쩌지? 내가 허황된 꿈을 좇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불안함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하루에도 몇 번씩 취업과 하고 싶은 일을 저울질하다 이 일을 계속하기로 마음먹으면, 이제 다른 불안함이 몰려온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들로 먹고 살 수 있을까? 계속하다 보면 이걸로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긴 한데…웬만한 직장인 수준으로 벌 수 있을까?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성과는 언제 나타날까? 분명 결과가 금방 나타나지 않을 텐데 나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만약 아무런 성과가 없다면? 그땐 어쩌지?


하지만 지금만큼 도전하기 좋은 시기가 없다는 것 또한 안다. 지금처럼 시간과 여유가 많은 시기는 흔치 않고, 아직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 아래 있을 수 있는 것 또한 행운이다. 물론 회사에 다니며 하고 싶은 일을 병행할 수 있다면 최상이겠지만, 나는 내가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회사에 들어가게 되면 이 일은 뒷전이 될 것이고, 그럼 회사에 다니면서도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회사와 좋아하는 일을 병행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결국 나는 무엇을 선택하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로 돌아올 것인데, 그렇다면 빙 돌아가고 싶지 않다. 기회가 있을 때 도전해보고 싶다.


지금만큼 자유롭고, 또 지금만큼 불안한 시기가 없는 것 같다. 이 시기는 뭘 하든 불안한 시기인 것 같다. 이왕 불안할 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불안해하려고 한다. 불안함의 연속이지만 확실하게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조금씩 해내 가고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자 행운이다. 그렇다면 이제 불안함을 견디고 꾸준히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딱 3년. 아니 적어도 1년만 해보자. 내가 내 판을 벌여놓고 놀아보자. 앞으로의 1년을 통해 뚜렷한 성취를 이뤄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다 해도 분명 얻는 것은 있을 것이다. 그러니 두려워 말고 나의 가능성을 확인해보자. 앞으로도 꽤나 길게 이어질 것 같은 방황이다. 그리고 이 잡지가 그 방황의 기록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해당 게시글은 2022년에 쓰인 글로,

네이버 블로그에 포스팅한 게시글을 브런치에 재업로드 한 것입니다.


2023년은 홀수 해를 맞이해 홀수달에 발행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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