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저모세모] 2022년 12월호
사람들은 어떻게 산타가 다녀갔음을 알 수 있을까? 산타를 위해 준비해둔 무언가가 사라지거나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 선물이 놓여있을 때 비로소 알 수 있다. 산타가 다녀갔다!
재작년 12월, 우리 집에도 산타가 다녀갔다. 특별했던 그 선물을 풀어보려 한다.
2020년 12월의 어느 날, 할머니 댁으로 가는 길에 택배 문자를 흉내 낸 친구의 문자를 받았다. 친구가 산타처럼 우리 집 앞에 선물을 두고 간다는 내용이었다. 이 선물은 조금 특별했다. 친구가 골라준 추리 소설을 읽어나가면 중간중간 끼워진 종이를 따라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게 되고, 친구가 준비한 또 다른 선물들을 뜯을 수 있게 된다. 덕분에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느끼기도 했고, 책을 읽어가며 선물을 나눠서 받게 됐다.
이 친구는 어느 날엔 어드벤트 캘린더를 준비하고, 어느 날엔 이런 이벤트를 준비해서 나의 12월을 늘 꽉꽉 채워준다. 12월이 더욱 알차고 즐거울 수 있는 이유는 어쩌면 이런 도움 덕이다. 매번 나의 12월을 채워주는 모든 사람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보낸다.
내가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여느 유치원과 마찬가지로 우리 유치원에도 산타 할아버지(라기엔 젊지만 변장함)가 찾아왔다. 그때의 정확한 상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조금 당황했던 것 같다. 그날 찍은 사진 속 나의 표정이 묘했기 때문이다.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선물뿐이다. 팬티 3종이었는데 산타 할아버지랑 만난 건 둘째 치고 선물 포장을 신나게 풀었지만 실망했던 감정이 흐릿하게 기억난다. 유치원생 아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몰랐던 선물. 별거 아닐 수 있는 팬티 3종이 아직도 기억나는 걸 보면 적잖이 실망했나 보다.
※ 기억의 왜곡이 있을 수 있음
가장 행복했던 나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바로바로 엔젤폰! 당시 핸드폰은 어른들의 전유물로, 공기계도 구하기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런 어린이들 앞에 나타난 것이 엔.젤.폰. 당시 엔젤폰은 메시지 카드를 통해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었고, 간단한 게임과 운세, 계산기 등 여러 가지 기능을 제공했다. 종이에 핸드폰 모양을 그려 가지고 놀던 어린이에게 실제로 작동되는 핸드폰 장난감이라니! 센세이션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엔젤폰은 단숨에 나의 위시리스트 1위를 차지했지만, 졸라도 졸라도 부모님은 사주지 않으셨다. 산타 할아버지가 대신 선물해주길 간절히 바라며 매일 기도하던 12월 밤. 그러나 크리스마스 날 마주한 것은 (뒤에 나올 이야기지만) 웬 생뚱맞은 선물이었다. 그렇게 한차례 실망을 거친 뒤, 1년을 더 기다려 마침내 엔젤폰을 손에 넣었다.
사실 엔젤폰이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는지, 생일 선물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엔젤폰을 받고 너무 행복해서 방방 뛰었던 기억, 사촌 언니들에게 엔젤폰을 자랑하며 신나게 놀았던 기억만큼은 생생하게 남아있다. 장난감 하나로 행복을 선물해준 산타 할아버지 감사해요! 덕분에 정말 행복했어요!
가장 행복했던 선물이 있다면 가장 실망했던 선물도 있는 법. 가장 실망했던 선물은 퍼즐 책 3권…. 그것도 영어로 된… 크로스워드와 워드서치 퍼즐…. 이미 유치원에서 틈만 나면 활동지로 풀던…. 아직도 기억난다, 선물을 발견한 그 순간을…. 포장조차 되어있지 않고 리본으로만 묶여있던 파란색, 초록색, 노란색 표지의 퍼즐책 3권…. 당시 나는 앞서 말한 엔젤폰을 받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고, 심지어 그 어떤 퍼즐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내게 엔젤폰은커녕 퍼즐 책이라니! 잠도 설쳐가며 기대했던 마음이 산산조각난 순간이었다.
이제서야 엄마에게 왜 퍼즐 책을 선물해줬냐고 물어보니 영어 공부하라고 주셨다고 한다. 퍼즐로 재미있게 공부했으면 하는 마음에. 하지만 안타깝게도 엄마의 바람과 달리 그 책은 한두 장 밖에 풀리지 않은 채 버려졌다. 그래도 나름 크게 실망했던 선물이라는 의미가 있어서 그런지 오랫동안 책장에 꽂혀있다 몇 년 전에야 버렸다.
지금이야 하나의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았지만. 산타 할아버지, 선물을 주신 건 고맙지만 어린 마음에 정말 실망했어요….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산타가 있다면 아이가 책을 정말 좋아하지 않는 이상, 아이가 책을 선물로 받고 싶다고 직접 말하지 않는 이상 우리 책 선물은 하지 않기로 해요~ (차라리 책이었다면 재미있게 읽었을지도 몰라… 퍼즐 책은 읽을 것도 없었어….) 그래도 크리스마스의 추억을 남겨준 소중한 선물이었다고 황급히 포장해 본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산타의 존재를 철석같이 믿고 있는 아이에게 들키지 않고 갖고 싶은 선물이 무엇인지 알아내기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산타 할아버지에게 어떤 선물을 받고 싶니?’라는 질문 하나면 아이는 술술 대답했겠지. 하지만 어린 시절에 나는 그게 너무 신기했다. 그래서 산타의 존재를 더욱 믿었던 것 같다. ‘산타 할아버지는 정말 알고 계셔! 산타 할아버지는 존재해!’
이와 관련해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이 있다. 당시 우리 집은 이모네와 함께 영어 유치원을 운영했었다. 선생님들이 모두 퇴근한 어느 저녁, 이모가 나와 사촌 언니를 선생님 사무실로 불렀다. 우리는 컴퓨터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고, 이모는 화면을 가리키며 이게 내가 갖고 싶은 게 맞는지 확인하셨다. 이모는 산타 할아버지에게 알려주기 위해 물어보는 거라고 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그리고 당연하게도) 그해 내가 받은 선물은 내가 갖고 싶다고 했던 베이킹 장난감이었다.
매년은 아니지만 대체로 내가 갖고 싶은 것을 선물해줬던 산타 할아버지. 어린 나는 내 기도가 산타 할아버지에게 닿은 건 줄 알았는데. 이 기억 덕에 부모님께서 어떻게 내가 갖고 싶은 것을 알아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마 초등학교 3학년쯤이었을 것이다. 설렘에 깊게 잠 못 들던 24일 밤. 자다 슬며시 눈이 떠졌는데 거실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선물이라는 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하고,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한창 학교에서 산타가 있느니 마느니 열띤 토론을 하던 때라, 산타의 존재에 의문을 품고 있던 시기였다. 그래서 화장실 가는 척 비척비척 거실로 나왔다. 그때 내 눈에 띈 빨간색 포장지! 의심이 확신이 된 순간, 나는 쿵쾅거리는 마음을 다독이며 다시 잠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선물을 확인해보니 역시나 빨간 바탕에 흰색 땡땡이 무늬가 그려진 포장지였다. 양쪽이 리본으로 묶여 사탕처럼 포장되어 있던 선물. 무슨 선물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후 엄마의 말에 따르면, 어느 날 내가 느닷없이 ‘산타 없대. 엄마 아빠가 주는 거래’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자 엄마가 ‘산타 안 믿으면 이제 선물 없는데.’라고 하셨고, 정말 그 이후로 산타의 선물을 받지 못했다. 산타의 비밀을 알고도 모른 척 했어야 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산타의 선물을 받을 수 없게 되었지만,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산타가 되어주신, 크리스마스의 추억을 선물해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해당 게시글은 2022년에 쓰인 글로,
네이버 블로그에 포스팅한 게시글을 브런치에 재업로드 한 것입니다.
2023년은 홀수 해를 맞이해 홀수달에 발행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