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합하지만 같아지지 않는 삶
고전도 동서양으로 나누어진다. 한자 문화권이어서인지 동양고전에서는 때때로 더욱 깊은 맛이 느껴진다. 종종 동양고전에서 언급되는 '군자'의 지향점이 명확히 다가오지 않는 때가 있다. 내 공부가 짧은 탓이겠으나 한마디로 개념이나 단어가 정리되지 않는다. 예시나 행동을 통해 군자의 '언행'이 언급될 뿐이다.
논어에서 군자의 행동 중 하나로 언급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표현을 되뇌인다. 화합하지만 동화하지 않는다는 말을 곱씹으며 일생토록 가져가야 할 가치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자주 든다. 내 생각이나 의견을 잘 드러내지 않을 뿐 나름 뚜렷한 주관을 가졌다고 여긴다. 그러니 주변과는 불화하기 십상이다.
특히 직장에서는 기존의 행태나 규칙에 대해 다소 삐딱한 마음가짐을 갖게 되며 반골 기질로 발현되기도 한다. 나만의 관점에서 보이는 세상이라는 생각이나 내가 고려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한계 등이 분명 있을 것이다. 다만 이에 대한 가치판단은 차치하더라도, 불화하는 가운데 피곤함이 자주 앞서곤 한다.
누군가를 위해서 화이부동하는 게 아니라 내가 편하기 위해 화이부동이 필요하다. 이는 넓은 측면에서 조직과 상대를 조금 더 존중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경험에 갇힌다. 쉽사리 그 너머를 보거나 짐작할 수 없다. 화합하는 것으로 각자의 개별성과 한계를 존중하되 같아지지 않는 것으로 나를 지키는 것이다.
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 이사한 것으로 대표되듯 환경의 힘은 어마어마하다. 내가 '구태'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자연스레 물들 수도 있겠으나, 화합하는 것이 당장 나를 지키고 남을 지키는 길이라면 애써야 할 방향은 명확하게 정해져 있는 셈이다.
군자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소인'이 언급된다.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 한다. 동화하지만 화합하지 않는다니, 내게 적용하면 나 역시도 구태가 되는 한편 화합하지 않으니 존중도 보내지 않는다는 말이 될 것이다. 똑같은 짓을 하면서 자각하지도 못하는 후진 사람이 되는 것은 너무 끔찍하지 않나.
아직 미숙함이 많이 문득 치미는 마음을 온전히 달래지 못하고 있으나, 지향에 대한 노력이라도 조금 보탠다면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생활을 꾸려갈 수 있지 않을까 잠시 생각해보았다. 타인과의 화합이 나 자신을 위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 자체로 나 자신과의 화합이기도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