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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지몽 Jan 24. 2023

눈을 감아 봅니다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성숙해져야 하는데, 늘 그렇지 못함에 자책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살다 보면 이기적이고 못된 사람들의 행동이 보입니다. 보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돌리는 저를 툭툭 치며 보게 만드는 거슬림이 있습니다. 나만의 기준이라고,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면 그다지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단면만 보고 판단하지 말자고 생각합니다. 그게 맞습니다. 정말 그게 맞는데, 자꾸 저를 툭툭 칩니다.


그러다 보니, 좁은 일터 내에서도, 얼굴을 보기만 해도 열받았다가, 안쓰러웠다가, 설득했다가, 포기하는 일들이 반복됩니다.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면 내가 그 사람에게 품었던 생각의 역사가 쓰여 있는 듯합니다. 그냥 인사하고 지나치지만,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은 계속 제 머리카락을 붙들고 쫓아옵니다. 제가 자리에 앉으면, 머릿속으로 들어가 한참을 헤집은 다음에 사라지곤 합니다.


그래서, 어느 날은 멀리서 보이는 미운 사람을 어떻게든 피하고자, 일부러 계단으로 돌아가보기도 했습니다. 움직이기 싫어하는 저에게는 큰 선택입니다.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이라니! 그만큼  그 사람에 대한 안 좋은 생각에 사로잡히는 제가 싫었습니다. 그런데 계속 계단을 이용하니까, 만보기에 걸음수도 올라가고, 아내도 오늘 계단을 많이 걸었나 보다  예쁘다 예쁘다 칭찬받을 거리도 생기고 좋았습니다. 앞으로는 이렇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멀리서 보이는 미운 사람이 점점 많아지는 겁니다. 이 사람을 피하면 저 사람이 다가옵니다. 꼭 제 앞으로 걸어오지 않더라도, 전화로 메일로 제 앞에 머무는 미운 사람들이 늘어나는 겁니다. 하루종일 아무도 없는 계단만 오르락내리락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모난 저를 스스로 다듬는 것이 제일 빠르겠지만, 저의 모난 각은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한 모양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뭉툭해지지 않고 견고합니다.


어느 날은 여러 사람이 모인 회의실에 들어갔는데, 미운 사람이 갑자기 한꺼번에 시야에 보입니다. 처다 볼수록 미운 감정이 올라와서 고개를 푹 숙입니다. 그런데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자니 너무 목이 아파서,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제 머릿속을 쫓아다니는 미운 사람에 대한 감정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눈을 감자, 따뜻한 눈꺼풀의 온도, 살색과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감은 눈의 세상이 새롭게 보입니다. 그리고 뜨겁고 불쾌한 감정이 서서히 밑으로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런 것에 집중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다시 눈을 떠 봅니다. 몇 초나 지났을까?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저의 감정을 단순히 눈을 감는 행동이 차분하게 해 주었습니다. 눈을 다시 떠서 그 사람들을 다시 볼 때는 미운 감정은 사라지고 그저 내가 있는 장소의 배경이 되어 버립니다.


미운 사람, 미운행동은 아마 죽을 때까지 저를 거슬리게 하고 괴롭힐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미운 사람은 계속 생겨나겠지요. 하지만 언제까지 그들이 저를 괴롭히게 두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그저 입을 닫고 잠깐의 시간 동안 눈을 감겠습니다. 찰나의 시간이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평안해진 나로 만들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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