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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지몽 Jan 26. 2023

엄마귀 아빠귀

저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나이 마흔에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귀한 아들을 낳았습니다. 제 건강에 문제가 있었지요. 아기 가지는 데 실패할 때마다 제가 더 좌절했던 이유입니다. 몸은 아내가 다 상했는데도요. 그래도 제 아내가 뚝심 있게 밀어붙이고 저에게 늘 걱정 말라고 얘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 걱정하지 마 오빠. 내가 꼭 너 아빠 만들어 줄게"


그렇게 해서 예쁜 아들이 우리 부부 곁으로 와 주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낳은 아이다 보니 부모의 체력이 받쳐주지 않을 때가 많지만, 어떻게든 쫓아다니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부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이니까요. 가끔 녀석의 얼굴을 보면, 저를 너무 닮아서 미안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 아들은 졸릴 때나 피곤할 때 늘 엄마귀를 찾습니다. 귀를 만지면 아이의 표정에 불안감이 사라지고 편안한 마음이 보입니다. 대부분은 엄마의 품을 파고들지만, 엄마가 바쁠 때나, 엄마한테 혼났을 때, 잠자리에서 뒤척이다가 아빠 쪽으로 굴러왔을 때, 다리가 아파서 아빠가 안아주었을 때 아빠귀도 만져주는 영광을 줍니다.


아이가 귀를 만지는 손길은 처음에는 다급히 귀를 찾다가, 손에 만져지면 손길이 부드러워집니다. 귓불을 가지고 장난을 쳐서 품 안의 아들 얼굴을 보면 자는 게 아니라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는 걸 들키기도 하지요. 제 품에 안겨 있을 때 귀를 만지는 녀석을 보고 있으면, 행복이 가슴에 꽉 차 오릅니다.


이 녀석이 귀를 찾으려는 것 같으면, 자다가도 제 머리를 재빨리 들이댑니다. 귀를 제시간에 못 찾으면 잠에서 깨고 칭얼거리니까요. 그러다 보니 허리가 꺾인 이상한 자세를 한참 동안 유지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점점 허리가 아파 오지만, 아이가 충분히 귀를 만지고 손길이 좀 느려질 때 자세를 가다듬습니다. 


가끔은 귀를 만지는 녀석 때문에 상처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한껏 신경 써서 귀를 만지라고 머리를 들이밀면, 


" 아니야 이거 아니야 엄마 엄마 " 


하고 저를 밀쳐 낼 때가 있습니다 (대부분 엄마 귀가 필요하니까요) 그럴 때는 35개월짜리 아기한테 504개월짜리 어른이 삐지기도 하지요. 


그래도, 우리 아들이 아빠귀가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머리를 들이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커버리면 아빠귀도, 아빠품도, 아빠의 도움도 필요 없을 테니까요. 그때가 되면 좀 슬프고 허탈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빠가 필요하다는 신호만 주면, 하던 일을 멈추고 언제든 귀를 대령합니다. 이때의 행복함을 차곡차곡 저장해 두었다가 세월이 지나도 늘 꺼내서 추억하고 간직하고 싶으니까요.


오늘 새벽, 감기로 계속 기침을 하던 녀석이 제 품으로 파고 들어서 한참 귀를 만졌습니다. 기침을 하는 모습이 안쓰럽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토닥토닥해주는 것과 귀를 만지게 해주는 것뿐이었지요. 엄마가 목에 손수건을 감아주자, 기침이 잦아들고 깊은 잠에 들었습니다. 역시, 아빠가 아무리 노력해도 엄마한테는 안되나 봅니다. 아이는 잠에 들었지만, 저는 선잠에서 깨어서 한참 생각에 잠겼습니다.


지금은 아빠 귀를 줄 수 있지만, 더 자라면 나는 아이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무한이 사랑하는 만큼 무엇이든 주고 싶지만, 저는 평범한 사람이고 가진 것이 많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래도 아이가 필요한 것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언제든 주저 않고 해 줄 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아야지 하고 다짐합니다. 열심히 사는 중에도 늘 가족과 함께 있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마음먹습니다. 열심히 사는데 가족과의 시간도 있어야 한다. 잠을 줄여야 할까? 

생각은 영양가 없이 이상한 방향으로, 나를 채찍질하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잠든 아이의 평온한 숨소리가 들립니다. 문득 아내의 말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무한이 줄 수 있는 건 사랑뿐이라고. 저에게는 돈도, 시간도 유한하지만 사랑만큼은 무한하니까요. 아이를 꼭 껴안아 봅니다. 아들아 아빠는 줄 수 있는걸 다 너에게 줄게. 그리고 그중에 제일 많이 사랑을 줄게. 


잘 자라 우리 아들. 아프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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