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먼저 보여줘
" 그래서 어떤 아이템을 하고 계신 거예요?"
50대 중반, 1조 매출을 하는 회사의 전무님을 평소 가깝게 알고 많은 조언을 주시는 협력업체 상무님을 통해 점심식사 자리에서 만난 자리였다. 영업의 영지도 모르지만, 일단 알고 있는 대로 열심히 설명을 했다. 한 10분 정도 내 얘기를 들어보시고는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 아~ 그런 거면 뭐 우리랑은 전혀 상관이 없는 서비스네 "
한번 써보시죠, 저희가 서비스가 론칭되면 제안서를 보내드릴 테니 읽어봐 주시겠습니까? 어떤 게 부족한지 피드백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런 흐름으로 대화를 이어가려던 나의 계획은 산산조각이 되었다. 내가 온 힘을 다하고 모든 나의 정수를 쏟아부은 서비스가 상관이 없고 필요가 없다고 하니, 왠지 나 자신이 부정당하고 거부당한 느낌이 들었다.
이미 거기서 끝났다는 느낌을 받아서 이후 점심식사 자리나, 커피를 한잔 마시는 시간은 나에게는 길기만 했다. 상대방도 슬슬 지루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자리를 만들어 주신 상무님께서는 계속 나에게 말을 걸고 대답을 유도하셨다.
" 부장님 이전회사가 어디라고 했지요?
" 지금 회사에서는 구매 말고 어떤 일을 했다고 했지요?"
" 예전에 그 회사 구매는 태도나 이런 게 좀 별로였는데, 부장님이 지금 그 회사로 가고는 정말 많이 바뀌었어요"
" 아 학위는 석사까지 했다고 했나요? 박사도 했다고 했던가?"
" 우리가 알게 된 지가 몇 년 되었지요? 9년이요? 그렇게 오래되었나요?"
이상했다. 나와 알고 지낸 지가 9년이 되었기 때문에 나에 대해서 모르지 않으실 만한 정보를 계속 물어보셨다.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의미 없는 시간을 늘리시는 걸까? 의문이 들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대답했고, 그러다가 다른 옛날이야기가 나와서 한참을 세 명이서 즐겁게 대화할 수 있었다.
" 부장님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왜 창업을 한다고 해요. 그냥 그 회사 계속 다녔으면 대표까지 할거 같았는데"
" 아닙니다 상무님. 저 같은 게 어찌 감히. 아무튼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 그래요. 아 그리고 지난번에 소개부탁했던 D 업체는 거기 본부장이 사람 만나는걸 별로 안 좋아해서. 내가 잘 설득해서 또 자리 만들어 볼게요. 오늘 고생 많았어요"
그렇게 2시간 가까이의 점심미팅이 끝이 났다. 준비해 둔 핸드아웃은 전해드리지도 못했다. 그래도 식사 때 받았던 명함을 얼른 연락처에 등록하고는, 전무님께 메시지를 보냈다. 저희가 준비 잘해서 다시 한번 찾아뵙겠노라고. 그분은 이렇게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사람이 나를 다시 만나주고 우리 서비스를 써보고 주위에 알릴만한 사람일까? 마음이 우울해졌다.
시간이 많이 남았다. 이대로 집에 들어가면 이 기분을 고스란히 가져갈 것만 같았고, 그렇게 하루의 시간을 낭비하기 싫었다. 그래서 근처에 있는 40년 지기 친구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20대 후반부터 사업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견고하게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CEO였다. 평소에도 이 친구에게 많은 것을 상의했고, 나의 근황에 대해서는 얼추 알고 있는 터였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강남의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보이는 시원한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성공한 사람인지를 측정하는 여러 기준에는 사무실의 높이가 포함된다고 했던가. 내 위치는 어디인가를 생각해 보는 풍경이다.
" 그래서, 영업은 잘했어?"
" 아니, 그냥 일단 열심히 설명해 보는 거지 모"
" 그래? 그 설명 나한테도 한번 해봐 그럼 "
이미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지만, 친구를 영업대상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친구는 맞장구도 쳐주고 궁금한 걸 물어보기도 하면서 1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내 아이디어에 대해서 질문하고 피드백해 주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친구는 나에게 이런 조언을 해 주었다.
" 일단, 너 너무 장황하게 설명을 해. 네가 열심히 촘촘히 준비한 건 알겠는데, 너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있다. 내가 놓치지 않고 많은 부분을 커버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네. 그러면 듣는 사람은 피곤하고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 상대방의 니즈를 파악하고 그 부분에 집중해서 짧고 임팩트 있게 설명하는 게 중요해. 나랑 얘기하는 한 시간은 나는 너한테 줄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이 다 너에게 줄 수는 없어. 엘리베이터 피칭이라는 말도 있잖아. 너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5분. 거기서 승부를 볼 수 있는 설명이어야 해"
맞는 말이다. 내가 열심히 준비한 걸 빠짐없이 설명하는 게 무슨 의미란 말인가. 상대방은 관심도 없는걸. 사전에 많은 조사를 통해서 상대방의 니즈를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설명을 해야 한다. 그래야 짧고 굵은 설명이 가능하다.
" 그리고, 너는 앞으로 네트워킹이 중요하잖아. 그런데 네트워킹을 할 때 자꾸 아이템을 위주로 설명하지 마. 어차피 그 사람이 너의 한 번의 설명을 듣고 결정하지 않아. 차라리 아이템 보다, 너를 설명하고 어필하는 게 더 좋아. 그래야 여러 번 만나면서 저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이지? 어떻게 살아왔지가 궁금하고, 그다음에 네가 하는 일이 궁금해지는 거야. 상대방이 궁금해해야지 설명이 쉬워져. 아이템만 주야장천 설명하는 사람은 낮은 수준의 영업사원에 불과해."
아! 아까 그래서 협력업체 상무님이 자꾸 나에 대한 질문을 던지시고 답을 이끌어 나가셨구나.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모든 사람의 삶의 궤적은 그것만으로 관심이 갈만한 스토리다. 그런 스토리를 가지고 나를 설명하고 보여주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을 먹자는 친구의 시간을 더 뺏는 게 미안해서, 서둘러 사무실을 나왔다. 친구 사무실 앞에서 바로 집까지 가는 버스가 있었지만, 한참을 걸었다. 걷는 동안 생각이 정리된다. 내가 아니라 내 아이템을 대중없이 열심히 설명하니 자꾸 부정적인 피드백이 돌아온다. 어떤 사람에게 어떤 부분을 강조해서 설명할지 전략을 세우고 접근해야 한다. 성급하게 아이템을 설명하려 들지 말고, 당신이 우려하는 모든 상황에 대해서 우리는 준비하고 있다는 태도를 보여서 피드백이 들어갈 틈이 없게 하지 말고, 적절히 빈틈 있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무엇보다, 아이템을 설명하기 전에 나에 대해서 설명하는 기회를 먼저 가져라. 오늘 내가 보낸 시간의 결과는 이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