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소 꼰대부장의 스타트업 도전기 (14)

노트북은 주나요?

by 호접지몽

이전 회사에서 쓰던 노트북이 있다. 쓴지 3년정도 되었고, 문서작업할때 딱히 불편함도 없고, 조금 무겁기는 하지만 어차피 나도 무거우니까 가지고 다니는데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늘 어디를 가던 가지고 다니던 녀석인데, 이제 회사를 옮기게 되니까 이녀석을 떠나보내야 한다. 그런데, 새 회사에 가면 어떻하지? 새 노트북이 필요한데.


신생회사이고, 4명이 구성원의 전부이다. 물론 우리 회사에도 대표가 있고, 사무실도 있고, 엄연한 법인이지만, 노트북을 달라고 해도 되는지, 급여와 복지 관련된 협상은 어떻게 해야 할지, 4대보험은 들어주는 건지, 이런걸 지금 얘기해도 되는지가 왠지 겸연쩍다. 내가 그냥 이직을 하는 거라면 이런게 너무 당연하지만, 같이 사업을 시작하는데 내 개인적인 내용을 나만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 파트너들은 이미 다른 스타트업 기업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이라, 이런 상황에 대해서 익숙하고, 물어보고 요청하면 흔쾌히 당연하게 준비해 주겠지만, 다들 나랑 똑같은 상황인데 내 불편부터 해결해 달라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당연한 것을 요청하는데 미안한 마음이 드는것. 참 오묘한 상황이다.


왜 그럴까를 곰곰히 생각해 본다. 내 동료들과 함께 똑같은 리스크를 져야 하는데, 내가 보수적인 회사에서 온 40대 꼰대부장이란 이유로, 처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그 리스크를 동료들에게 더 지우려고 하는 움직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과 미안함이었던 거다. 그래서 노트북 같은 작은 요구를 하는데도 이렇게 몸이 움츠러들었나 보다.


" 저 있자나요. 제가 부탁이 하나 있는데"

" 네 말씀하세요 "

" 혹시, 저 노트북은 주나요? 아니면 제 개인비용으로 사야 할까요?"

" 네? 하하하. 일하시는데 당연히 지급해 드려야죠"


동료중 기본적인 일들을 담당해 주는 분께 요청드렸더니 바로 노트북이 지급되었다.


" 부장님 저희가 아직 신생회사니까, 부장님이 뭐가 필요하신지 저희도 잘 모를때가 있어요. 그러니까 언제든지 편하게 물어보시고 말씀주세요."

" 네 그렇게 말해주니까 너무 고마워요"


새로 받은 노트북은 비록 중고이긴 하지만 내가 3년동안 쓰던 녀석보다 빠르고 가볍고 편하다. 이제는 3년쓴 노트북을 보내줘야 할때다. 자료를 백업해서 외장하드에 넣어두고, 쓰던 컴퓨터를 초기화 시켰다. 내 자리에 새로 온 사람이 새 기분으로 쓸 수 있게 비닐로 잘 싸서 가방에 예쁘게 넣어 두었다.


새 노트북을 가방에 챙기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러 오늘도 길을 나섰다. 이제 첫 발을 때는 초짜이다 보니 모든게 다 소심해 진다. 20대의 사회초년생의 내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하지만 그때와는 확실히 달라진 한가지가 있다. 그저 회사에 충성하고 열심히 적응해서 끝까지 살아남아야지가 목표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걸 동료들과 함께 이루어 내야지가 목표이다. 한참 성장한 느낌이다. 업그레이드 된 새 노트북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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