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소 꼰대 부장의 스타트업 도전기 (15)

R&R

by 호접지몽

내가 다녔던 회사들에서는 R&R (Role and responsibility)가 정말 중요한 요소였다. 일종의 '밥그릇'개념이었던 거다. 너무 많은 책임과 권한은 부담스럽고, 내 영역을 침범해서 전횡을 휘두르는 사람은 경계해야 했다. 그래서 이런 말들이 회의에서 오간다.


" 그걸 왜 그 팀에서 결정해서 진행했지요?"

"이건 저희 팀 일이 아닙니다"

"이건 선을 넘은 행동입니다"


서로 넘쳐도 안되고 모자라도 안 되는 나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다. 남의 일인 것 같이 썼지만, 내가 제일 심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다 보니 이런 타성에 젖어있어서 크게 놓치는 것이 있었구나 하고 깨닫는 바가 있었다.


지금 회사에서 나의 역할은, 내가 있는 업계에서의 불편함과 문제해결을 위한 아이디어를 제시해 주고, 개발자, 기획자와 소통하면서 피드백을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같이 일을 해보니, 개발과 관련된 단어나 용어가 익숙하지 않았고, 그들이 사용하는 여러 가지 툴의 사용법에 미숙했다. 그러다 보니, 15년 동안의 버릇이 몸에 익어서인지, 배우기 싫어서인지, 내 일이 아니라고 판단한 부분은 신경 쓰지 않게 되었고, 개발의 과정이 어떤 스케줄로 진행되고 있으며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놓치고 있었다.


나는 여기에 내 경험을 전수해 주는 마스터의 역할을 하기 위해 합류한 것이 아니다. 이들과 함께 호흡하고 일하고 싶어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 몸에 맞지 않는다 해서,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이 모든 것을 배울 기회를 놓치고 있다니. 이렇게 어리석을 수가 없었다. 스타트업에 R&R 따위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서로가 서로를 배우고 시장을 탐색하고 고객을 연구해야 한다. 끊임없이 모든 영역을 구성원 모두가 하나의 몸처럼 움직여야 한다.


꼰대가 맞는 것 같다. 아직도 열정과 배움의 의지가 넘치는 스타트업 멤버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 많은 부족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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