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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지몽 Feb 08. 2023

신호등 앞에서

출근길에 집에서 나와서 골목을 지나면, 멀리 큰길에 횡단보도 신호등이 보입니다. 거기를 건너야 지하철을 탈 수 있습니다. 횡단보도가 가까워 올수록 머릿속은 바쁘게 돌아갑니다


'초록불이 지금 켜지면 뛰어야 되는데, 아침부터 서두르면 하루종일 쫓기던데, 그렇다고 안 뛰면 늦을 텐데, 기다리면 추울 텐데. 어떡하지? 어떻게 할까?'


뛰는 것을 결정해도, 기다리는 것을 결정해도 후회가 남는 시작부터 이상한 아침입니다. 짧은 시간 동안 바쁘게 움직인 내 머릿속의 나는 결국 , 기다리는 걸 선택했습니다. 하루종일 쫓기는 기분이 들면 아침부터 뛰어서라고 생각할 것 같았나 봅니다. 이게 뭐라고 아침부터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출근길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제 주변으로 모여듭니다. 어떤 사람은 발을 동동 구르며 신호 바뀌는 것만 바라보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 화면을 넘기고 있습니다. 어린이집 가방을 메고 칭얼거리는 아이도 보입니다. 아침부터 누군가와 열을 올리면서 통화하는 사람, 멀찍이 사람들에게서 떨어져서 급하게 담배를 빨아들이는 아저씨도 있네요. 모두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지만 온전히 기다리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그 시간을 다른 무언가로 꽉꽉 채우고 있네요.


저 역시 이 짧은 순간에 이렇게 많은 생각을 머릿속에서 만들어 냈네요. 어디 하나 쓸모가 없는 생각들입니다. 매일 머리가 꽉 차서 지끈거리는 이유는 결국 내가 무의식에서 만들어내는 수많은 생각 때문인데, 할 일이 많고, 이해 못 할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거라고 핑계가 늘어졌던 겁니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었습니다. 다들 발걸음을 반대편 지하철역으로 향합니다. 모두가 서둘러서 집 앞 신호등을 건너갑니다. 왠지 저처럼 모두가 복잡한 머릿속 생각들을 가지고 갑니다. 아침에 보이는 무표정한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그렇게 느껴집니다. 무거워 보이는 발걸음은 두꺼운 옷과 가방 때문은 아닐 것 같습니다.


문득 그런 상상을 해봅니다. 내가 보고 있는 이 풍경이 동영상이어서, 퇴근시간으로 돌리면 어떨까? 지금처럼 반대편 횡단보도에서 집에 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지금처럼 어둡고 무거울까?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동영상처럼 시간을 빨리 돌릴 수는 없지만,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얼른 복잡하고 바쁜 하루를 보내고 사람으로 꽉 막혀있는 지하철을 뚫고 나와, 퇴근시간에 다시 이 신호등 앞에 모였으면 좋겠습니다. 하루가 끝난 홀가분한 마음과 밝은 얼굴들을 보면 좋겠습니다. 아침에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했던 수많은 걱정과 생각들을 저녁이 돼서  반대편에서 다시 만난 우리 모두가 다 신호등 앞에 놔두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가면 좋겠습니다.


아침 출근길이 무겁고 힘들었을 우리 모두,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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