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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지몽 Feb 19. 2023

욕조 있는 집

오랜만에 아내 친구들 가족과 화성에 있는 호텔로 놀러 나왔습니다. 실내수영장에서 신나게 놀고, 맛있는 저녁도 먹었지요. 우리 아들은 그 뒤로도 너무 열심히 뛰어다니다 보니, 다시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서 숙소에서 목욕을 또 해야 했습니다.


저는 차에 짐을 가지러 갔다가 올라오는데, 우리 아들은 엄마랑 욕조에서 씻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둘이 뭘 계속 다짐하길래 뭔가 궁금했지만, 그 이후에 아이 머리와 몸을 말려주고 옷 입히고 재우느라 금세 잊어버렸지요.


다음날 아침, 조식을 먹고 같이 간 가족의 아이들과 또 땀을 뻘뻘 흘리면서 놀아서 온몸이 땀범벅이 된 아이를 데리고 욕조에서 같이 물장난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물총을 가지고 한참을 놀던 아이가 물끄러미 저를 올려다보더니


"아빠 우리 다음에는 욕조 있는 집으로 이사 가자."


라고 말합니다. 저는  아이에게 미안했습니다. 그동안 집에서는  욕조가 없는 옛날 빌라라서, 김장할 때 쓰는 접을 수 있는 용기에 아이를 앉혀놓고 물놀이를 시켰거든요. 그 좁은 데서도 열심히 놀던 아이가 이곳에 와서 넓은 욕조를 보니 얼마나 좋았을까요. 저는 그런 아이의 얼굴을 보고 왜 가슴이 그렇게 쿵 하는지요.


많이 가지지 못한 아빠라서, 남들보다 더 많이 못해주는 못난 부모인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아빠랑 욕조에서 매일 물놀이를 하고 싶다는 게 얼마나 소박한 꿈일까요. 그 소박함도 못 채워주는 정도의 아빠인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합니다.


말문이 막혀 한참을 멈춰있다가 아이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그래 아빠가 꼭 욕조 있는 집으로 이사 갈게"


몇 번을 다짐하고 약속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내도 어젯밤에 똑같이 약속을 했다고 하네요. 아이에게는 소박하고 아빠한테는 많이 힘든 꿈이지만, 어떻게든 약속을 지켜주고 싶습니다. 성공해야지요. 돈 많이 벌어야지요. 지치지 말고 한 발씩 나아가야지요. 저에게는 그럴 이유가 너무도 넘치도록 많습니다.


하.. 근데  아들아. 우선 우리 집이 좀 팔리고 나서 이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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