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는 전회사에 있을 때보다 훨씬 많이 사람을 만나고 다닌다. 예전에는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사람들이 찾아와 주고는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찾아가야 한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나의 이야기를 하고, 피드백을 받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배우고 있다. 이런 시간들을 보내면서, 내가 갑자기 쑥쑥 성장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최근의 시간들이 너무 순간순간 감사하다.
43세의 나이에 스타트업에 조인했다고 하니,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궁금한게 많은 것 같다.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내게 되었냐? 무슨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냐? 두렵지는 않았냐? 등등 물어보시는 내용도 다양하다. 매번 같은 '나'의 대답이지만, 교묘하게 다른 버전으로 대답하고 있다.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아니고, 상대방의 흥미나 반응에 맞게 말씀드리고 있다.
반면 공통적으로 묻는 내용이 겹칠때가 있다. 특히 투자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이 물어보시는 내용인데,
" 거기 가실때 지분에 대한 약속을 어떻게 하셨나요? "
나도 사업에 동참하는 것은 처음이라, 어떻게 할 줄 몰랐다. 솔직히 궁금은 했다. 우리의 대표에게 이걸 물어볼까 말까를 수십번 고민했던것 같다. 하지만 말은 꺼내지 못했는데, 속마음은 내가 물어보기 전에 속시원하게 공유해 줬으면 하는 것이었다. 결국 정식 출근 첫날 나는 이 얘기를 꺼냈다.
" 스토브 리그에서 나이든 투수와 재계약 하는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그 투수는 1/10 수준으로 깎인 연봉을 거절하면서, 이렇게 말했지요 ' 연봉이라는건, 가족한테 내가 이만큼 벌고 있으니까 힘들어도 조금 참고 같이 하자 라는 의미가 있는데, 이 연봉은 같이 고생하자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 못된다' 라구요. 저한테는 다니던 회사를 박차고 나왔을때, 지분이라는 기대가 거기에 해당하는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무 얘기가 없으니까 조금 서운하네요"
거기에 대한 대표의 대답은, 투자사에게 우리의 수익을 일정부분 떼어주고, 지분과 관련해서는 매년 발생하는 수익의 일정부분을 현금화 혹은 지분화 해서 공평하게 나누는 제도를 설계했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래서 일단 지분은 누구에게도 가지 않고 대표 100% 로 유지하는 것으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설명에서 대표의 진심을 보았다. 어떤 분은 너무 순진하게 신뢰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우려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나는 우리 대표를 믿는다. 내가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은 지분 때문이 아니라, 내가 해보고 싶은 가치 있는 일들을 동료들과 마음껏 펼쳐 보는 것이 주된 이유였으니까. 그래서, 가족에게도 이런 내용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했다.
그리고 또 자주 물어보시는 질문,
" 그럼 제가 뭐라고 불러야 하나요? 직급은 어떻게 되세요?"
이부분도 선배들이 '최소C레벨' 은 되어야 한다고 많이들 말씀하셨지만, 이역시도 나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4명뿐인 회사에서 다 대표고 이사면, 누가 Follower 을 할 것인가? 그래서 우리 회사에는 직급이 없다. 나중에 인원이 많아지더라도, 직급은 왠만하면 가져가지 않는 것으로 합의를 했다. 다만, 책임이나 직책은 가져갈 예정이다.
그래도, 밖에서 사람을 만나는 포지션이니, 일단 내 맘대로 이사 라는 직급으로 명함을 제작하려고 한다. 보여지는게 다는 절대 아니지만, 처음부터 스스로 낮게 나를 포장할 이유는 없으니까.
직급이고, 지분이고 중요한게 아니다. 우리에게는 우리 사업의 성공이 중요하고, 이 성공을 통해 고객에게 큰 가치를 제공하고 만족시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 이외에 노이즈가 생기는 것은 가급적 단순화 하려고 노력 중이다.
지금은 오전 미팅을 끝내고, 과천에 있는 한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 중이다. 창밖에는 벌써 나무들이 봄을 맞아 꽃눈들을 가지에 잔뜩 머금고 있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고 긴장하지도 않고,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마음껏 일할 수 있는 편안함과 행복함 만으로도, 나에게는 너무도 큰 행복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