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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지몽 Apr 05. 2023

구둣방 아저씨의 수첩

집 앞에서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는 오래된 구둣방이 하나 있다. 구두방 아저씨는 역으로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을 요리 저리 피해 가며 거리를 쓸고 청소를 하신다. 그 청소가 끝나면, 손님을 기다리시는데, 의자를 가지고 나와서 햇볕을 쬐시거나, 뭔가를 열심히 정리하기도 하신다. 가끔 구두방을 지나가는 친구분들과 담소를 나누기도 하신다. 이런 모습들은, 내가 시간을 달리하며 구두방을 지나갈 때마다 보였던 아저씨의 일상의 조각들이다. 조용하지만, 편안하고 알찬 일과인 것 같다는 느낌을 뵐 때마다 받는다. 불행히도 나는 구두를 잘 신지 않고, 수선을 받아야 할 만큼 비싼 구두도 없어서 아저씨의 손님이 된 적은 없다.


어느 날, 아저씨가 계신 구두방을 지나가는데,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그분의 일상이 눈에 들어왔다. 아주 작은 수첩에 깨알같이 글씨를 쓰고 계신 모습이었다. 그 내용을 훔쳐볼 수는 없었지만, 하늘을 한번 쳐다보시고 수첩에 글을 쓰시고 또 한 번 하늘을 올려보시고 글을 써 내려가시는 모습이 많은 상상력을 자극하게 한다. 무슨 내용을 쓰시는 걸까? 일기를 쓰시는 걸까? 갑자기 맑은 하늘을 보면서 예쁜 글귀가 떠오르신 걸까? 예전의 추억을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적으시는 걸까? 내용은 알 수 없지만 꽤 두꺼운 수첩에 빽빽하게 써 내려간 글들이 눈에 띄었다. 왠지 작은 구두방에 일하시면서 보석 같은 글귀들이 저 수첩에 적혀있을 것만 같다.


그 장면을 스치듯 바라보면서 , 생각에 잠긴다. 나는 왜 매일매일 글을 쓰는 걸까? 단지 글을 쓰는 것이 목적이면, 브런치가 다 무엇인가. 구둣방 아저씨의 수첩처럼 아무도 안 봐도 좋은 작은 종이에 매일매일 쓰면 그만이다. 글을 써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나를 들여다볼 수 있고, 그래서 행복하다고 말하면서, 왜 나의 글을 누군가가 보았으면 하고 바라는 것일까? 허세이고 욕심이지 않을까? 왠지 나의 이 허술한 글보다, 구둣방 아저씨의 수첩에 삶의 깊이가 있는 구수하고 진한 글들이 쓰여 있지는 않을까? 나도 그런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시간이 며칠 되었다. 그 생각을 잊어버리고 있었고, 구두방을 지나칠 기회가 며칠 동안 없었다. 이 생각이 마무리되어 있지 않은데도, 나는 여전히 습관처럼 여기저기다가 글을 쓰고, 나의 글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가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브런치의 에디터 픽을 받게 되었고, 스치듯 썼던 나의 글이 하루에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보는 것을 보고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 엄청난 조회수는 3일을 가지 못했고, 나의 브런치 글은 예전처럼 50명에서 100명정도가 보는 시시한 조회수의 글로 내려앉았다.


그러다 문득, 구두방 아저씨를 보고 생각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나는 내 글을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하고 바라는 것인가 아니면 나 스스로의 만족에 가치를 두는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질문.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글을 쓰는 것 자체에 대한 만족감이 있는것은 사실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의 글을 보고 좋아해 주는 것에 더 큰 기쁨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구두방 아저씨의 수첩을 영원히 대중이 볼 수 없듯이, 나의 글을 누군가가 볼 수 없다면 너무 쓸쓸할 것만 같다. 아무리 깊이가 있는 글이라도, 다른사람과 함께 나눌 수 없다면 그 글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래서, 나를 그만 속이고 스스로에게 솔직하기로 했다. 나는 글을 쓰고 싶다. 그리고 나의 글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보고 호흡하고 비판하고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그러기 위해서 나의 글을 늘 객관화 해서 들여다 보고, 냉철한 비판에서 유연하게 배우고, 편향되지 않고 균형적이고 솔직한 글을 쓰고, 깊이가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나의 글이 구두방 아저씨의 수첩이 품고있는 글처럼 구석에 있지 않고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 그런 글과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 더욱 더 열심히 쓰고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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