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한테는 지금 너무도 예쁜 아가가 있지만, 이 아이가 우리에게 오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어제 저녁, 이전에 메모했던 글들을 찾아보다가, 시험관 아기를 했던 그시절의 이야기를 쓴게 있어서 여러분께 공유해 본다. 난임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를 되돌아보게 하고, 정말 간절하게 바랬던 아이를 혼신의 힘을 기울여 키워야 겠다는 초심을 다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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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27일
출장 이후 모처럼 여유있는 주말을 맞이했다. 요새는 늘어지게 잔다고 해도 9시면 일어나지만, 아내가 된장만드는 수업을 가겠다고 아침부터 서두르는 바람에 8시쯤 눈을 떴다. 어제까지 데려다 줄 필요 없다고 얘기하던 아내는 오늘 단호한 목소리로 " 데려다죠" 라고 귀엽고 당당하게 요구한다. 이미 그럴 줄 알았지만, 못이기는 척, 전혀 예상치 못한척 데려다 주기로 한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냉장고에서 주사기 약을 꺼낸다. 오늘이 3번째 주사다. 아내의 배에 다시 바늘을 찔러 넣고 있는 것이다. 정말 어렵게, 우리는 시험관 아기를 하기로 결정했다. 어렵게 결정했다는 것은 150만원이 넘게 드는 돈 때문도 아니고, 아내의 몸에 주사를 놓을 때의 그 섬뜻함과 죄책감 때문도 아니다. 우리 부부는 실망감이 제일 두려웠다. 이렇게 까지 힘들게 했는데도 결과가 안좋았을때의 실망감은 어찌할까. 감당할수 있을까. 아내가 감당한다 하더라도, 나를 안심시키기 위한 그 의도적인 의연함을 나는 또한 감당할 수 있을까.
요새는 지나가는 아이들을 유심히 처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예전에는 단순히 귀여운 모습에 이끌렸다면, 지금은 저 피조물을 낳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통과 인내와 노력과 운이 있었을까 하고 부모들의 마음을 혼자 예단해 보고는 한다. 작고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분냄새가 나는 작은 사람이 내 뿜는 사랑스러움이 부모의 현재와 미래에 닥칠 고난을 다 상쇄할 수 있을까? 나는 이런 모든 것들을 미리 알지도 못하면서 애를 섣불리 원하는 걸까? 알면 원하지 않을까? 알아도 여전히 우리의 아이를 가지고 싶을까? 수많은 답도 없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내 머리속을 뒤덮는다. 그래서 유심히 처다보는 도중에 혼자서 왈칵 짜증이 솟는다. 아이란, 가뜩이나 잡생각이 많은 내 머리속 생각을 더 꼬아 놓는것 같아서. 내가 바라는 아이는 벌써부터 이렇게 복잡하기만 존재인건가. 나는 고개를 빠르게 좌우로 흔들어 이 복잡한 생각이 나에게 가지고 온 어지러움을 털어내 본다. 그리고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나는 혼자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도중에, 아내는 열심히 된장을 만들고 있다.
아내는 지금 된장을 담그는 방법을 열심히 받아 적으면서 잘 띄운 매주를 곱게 으깨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메주가루나 청국장 가루를 섞어서 적당한 용기에 담을 것이다. 그렇게 담든 된장은, 11월 정도가 되면 맛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내는 처음 그 용기의 뚜껑을 열때, 나를 불러서 그 순간을 같이 할 것이다. 냄새도 구수하고 감칠맛이 기가 막힌 된장을 손가락으로 찍어 먹다가 손등을 찰싹 맞을 것이다. 된장이란 콩으로 만든 음식이, 앞으로 8개월 후 우리의 모습을 그릴 수 있게 하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우리가 바라는 아기도, 그런 존재가 아닐까? 된장을 열어볼때는 함께 할 수 없겠지만, 아내의 된장으로 끓인 된장국은 함께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맛에 길들여진 우리이 아기는 기어 다닐때도 걸을 때도 부엌에서 아내가 된장찌개를 끓일 때면, 그 냄새에 이끌려 식탁 의자에 자동으로 앉을 것이다. 그리고 요리에 열중하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면서 안정감과 행복감을 느낄 것이다. 나와 함께.
만약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된장은 남을 것이고 오랬동안 우리의 식탁에 함께 할 것이다. 아내가 끓인 된장찌개를 한숟갈 맛 볼 때마다, 나는 오늘 이자리에서 쓴 글을 떠올릴 것이다. 된장도, 아기도, 된장과 아기와 함께하는 안정감과 행복감도, 모두 아내가 없으면 안되는 것임을 상기할 것이다. 아니, 결국 이 모든 것은 나의 아내 그 자체임을, 지금 이 순간처럼 먹먹하게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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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희 식탁에는 아내가 만든 된장으로 끓인 찌게가 있고, 그걸 황홀하게 먹는 저와 흐뭇해 하는 아내가 있고, 된장찌개 맛은 아직 잘 모르고 밥투정을 하고 있는 네살짜리 아이가 있네요. 된장찌게를 먹다가 문득 예전에 써 두었던 글이 생각났습니다. 난임으로 힘들어 하시는 모든분께 이 글을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