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일을 생각한다.
생각할 수록 분하고 창피하고 불안한 3종의 부정적인 생각이란 녀석들이 나를 갉아먹고 있음을 한참 후에 알아차린다. 그때 그랬으면 어땠을까, 그렇게 말하지말껄,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나한테 이럴까. 가슴속에 뜨겁고 무거운 것이 크게 자리잡았다. 이녀석이 잠에서 막 깬 새벽녘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로 달리기 시작한지 2개월이 된다. 매일을 연속으로 달린지는 26일차다. 아직 습관으로 자리잡지 못해서인지 늘 아침에 달리러 나가는 길이 힘들지만, 오늘은 이 뜨겁고 무거운 것을 가슴속에서 몰아내기 위해서라도 신발끈을 힘껏 동여메고 나가야한다.
달린다. 평소보다 들숨이 들어오는 양이 줄어든것을 느낀다. 이 뜨겁고 무거운 화라는 녀석이 나의 숨길을 차지하고 있다. 더 가쁘게 숨을 쉬도록 속도를 올려본다. 발목과 무릎은 아파오지만, 흔들고 있는 팔과 어깨가 욱신거리지만, 가쁜 숨이 점점 이녀석을 몰아내고 있음을 느낀다.
저녀석이 공기중으로 녹아 흩어진 자리에는 청량한 공백이 생긴다. 자꾸 다른 불안과 잡생각이 이 공백을 침범하려고 하지만, 나는 계속 달려서 이 공백을 지켜낸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달리기를 말할때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라는 책에서 언급한 그 공백 말이다
" 나는 달려가면서 그저 달리려 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원칙적으로는 공백 속으로 달리고 있다. 거꾸로 말해 공백을 획득하기 위해서 달리고 있다. "
더이상 체력과 관절이 허락하지 않아 달리기를 멈춘다. 나의 소중한 공백은 점점 나도 알지못하는 온갖 잡스러운 상념으로부터 오염되어 가겠지만, 적어도 뜨겁고 무거운 화라는 녀석은 몰아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가슴속이 많이 가벼워졌음을 알수 있다.
달리는 자의 생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달릴뿐, 그래서 1시간 남짓의 평화를 얻게 되는것만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