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접지몽 Jun 26. 2023

내가 알아차리기 전에 달린다.

새벽 다섯시의 알람이 울립니다.


그 무의식에서도, 옆에서 자는 아이와 아내가 깰까봐 화들짝 놀라서 알람을 끕니다. 순간, 조금 더 자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 잡힙니다. 하루의 시작부터 나의 시간을 잡아먹는 내 뇌의 속삭임이 들려오네요.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거실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거실에는 어제 준비해 놓은 옷과 양말이 놓여 있습니다. 옷을 찾다가 주저 앉아서 핸드폰을 볼까봐, 미리 준비해 놓은 것이지요. 여기서 시간을 지체하고 쇼파에 앉는 순간, 한시간이 순삭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너무 나가기 싫거든요. 


' 어제도 10km, 그제도 10km 를 뛰었는데, 오늘 하루쯤은 걸러도 되지 않을까?'

' 밖에 비도 오는데, 꼭 뛰어야 할까? 비 맞으면서 뛰면 감기걸릴텐데, 그게 건강에 오히려 마이너스지 않나?'

' 누가 보는 사람도 없는데, 100일 연속 달리기를 꼭 지켜야 해?'


또다시 제 뇌라는 녀석은, 제가 가장 편한 상태가 무엇인지 알고서 그리로 저를 이끄려고 부단히 노력을 하네요. 이녀석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빠르게 움직여야 합니다. 저는 묵묵히 옷을 입고, 신발끈을 동여 맵니다. 다시한번 아내와 아이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발걸음도 조용히 계단을 내려갑니다.


1층에 내려오자, 저를 붙잡던 유혹들이 잠잠해 집니다. 천천히 스트레칭을 하면서, 오늘은 어떤 코스로 달릴까를 고민합니다.마지막 동작을 마치고는, 오늘은 유혹에 유독 많이 시달린 저 스스로를 채근하는 의미로 서울대학교 한바퀴를 도는 코스를 잡습니다. 스마트워치에서 3,2,1 출발 신호가 울리고, 새벽의 첫 발걸음을 움직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처음 1km 가 참 좋다고 하는데, 저는 처음 구간이 참 힘이 듭니다. 아까 잠잠해졌던 뇌라는 녀석이 또 저를 주저앉히려고 속삭이기 때문이죠. 


" 봐봐 지금 너 몸이 무겁잖아. 오늘 컨디션이 안좋은데 니가 무리하는 거라니까 "

" 오늘은 가볍게만 뛰고, 내일 더 많이, 열심히 뛰면 되지 않겠어?"

" 이시간에 가서 책을 읽어. 아니면 아내한테 점수따게 빨래를 좀 예쁘게 개어 놓거나"


하지만 막상 1km 가 지나면 몸이 풀리고 주변 풍경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직은 출근시간 전이라 차도 한산하고, 평소에 들리지 않는 산새의 소리도 들립니다. 저녁 내내 내렸던 비냄새, 풀냄새도 느껴지고요. 새벽의 조용한 공기속에서 울려퍼지는 저의 숨소리도 같이 들리고 느껴집니다.


언덕이 시작됩니다. 여기서 부터 저의 본격적인 투쟁이 시작됩니다. 걸음은 느려지고 몸은 무거워지고 숨은 가빠져 옵니다. 정상까지는 왜 이렇게 먼지요. 그런데, 여기서 힘들어서 뛰던 걸음을 멈추면, 저 자신에게 너무 실망할 것만 같습니다. 느리더라도, 힘들더라도, 이 언덕을 넘어내 보고 말겠다고 이를 악물고 달립니다. 너무도 달콤하고 상큼했던 주위의 환경이 이제 더이상 느껴지지 않고, 나와 이 힘든 언덕만이 남아 있습니다.


너무 힘들어 바닥만 보고 달리기를 한참 후, 힘이 잔뜩 들어갔던 허벅지가 편해져 오는게 느껴집니다. 드디어 내리막길이네요. 헐떡이던 숨을 정돈하고, 무릎과 발목에 힘을 주고, 무게중심을 조금 뒤로 하고 내리막길을 맞이합니다. 새벽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다시 눈에 들어옵니다. 자칫 무릎이나 발목을 다치지 않게 조심하면서 내리막길을 내려옵니다.


달리기의 시작시점에서 그렇게 끈질겼던 제 뇌라는 녀석은, 한참을 달리고 나서야 제가 달리고 있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입니다. 이제는 제가 달리고 있는게 편안하다는 것을 아는지, 행복한 기분과 편안한 느낌을 저에게 주네요. 이렇게 달리는 것이, 내가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하다는 사실도 알게 해 주고요. 나중에는 그저 무의식적으로 다리는 움직이고, 저는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하루키가 이야기 하듯, 그저 묵묵히 달려내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오늘 하루의 10km 달리기가 끝이 났습니다. 평소같으면 나갈까 나가지 말까를 고민할 시간에 저는 이미 집으로 도착해 있습니다. 그렇게 내가, 내 뇌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할때 달렸고, 그렇게 62일을 하루도 빠짐없이 달리고 있습니다. 62일 동안, 나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기쁨과 뿌듯함, 그리고 감사한 마음을 잔뜩 품고 하루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는 여러분의 아침은 어떠신가요?

매거진의 이전글 달리는 자의 생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