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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지몽 Nov 23. 2023

평범하게 좀 살자

요새 계속 핑퐁핑퐁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습니다. 밤새 기침을 하고, 잠을 못자고, 그래서 낮에 헤롱헤롱 하는 상태가 계속 반복입니다. 운동하러 나가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식욕도 떨어지고, 한겨울에도 침실 창문을 열어놓고 잘 정도로 열이 많아 항상 팬티에 티셔츠만 입고 집을 돌아다니던 사람이 이제는 두터운 겉옷에 패딩조끼 까지 입고 집에 있을 정도입니다. 


이런 와중에도 달리기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제 하루의 삶을 지탱해 주는 주춧돌 같은 존재니까요. 아무리 아프고 기침을 해도 잠시라도 달리고 오면 몸이 개운해 집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계속되는 기침도 달리기를 할 때는 잦아들더라구요. 아파서 처지고 구석에 앉아있고 누워있는 저를 달리기라는 녀석이 끄집어내 줍니다. 물론 달리기를 하고 나면 다시 콜록거리는 사람으로 돌아오지만요.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달리기 말고 또 있습니다. 달리고 난 후에 하는 찬물샤워이지요. 달리기를 한 다음에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면 몸이 오랫동안 고아서 흐물흐물한 도가니 처럼 되는 기분입니다. 찬물로 샤워를 하면 뜨거워진 철이 갑자기 차가워 지면서 더욱더 단단한 질감을 가지듯이 제 몸이 기운을 받는 느낌이거든요. 평소에는 정말 좋은데, 요새같이 몸상태가 별로인 때는, 찬물로 샤워를 한 후에 몸안에 열이 한참동안 돌아오지 않습니다. 손발이 차갑고 오들오들 떨리지요. 


그렇게 오들오들 떨면서 옷을 껴 입고 있던 어느날,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습니다. 저보다는 아이를 보고 싶어서 늘 전화를 하시지요. 아이가 할머니와 한참을 영상통화를 하던 중, 다른 장난감에 눈이 팔린 녀석이 핸드폰을 저에게 맡기고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갑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영상통화를 하게 되었지요.


" 너 근데 집이 춥니? 왜 집에서 패딩조끼를 입고 있어?"

" 아 좀전에 운동 다녀와서 그래요"

" 운동 다녀왔으면 더울텐데 왜 조끼를 입고 있어?"

" 찬물로 샤워해서 그렇지. 조금 지나면 괜찮을꺼에요"

" 이 겨울에 찬물로 샤워를 한다고?"


어머니께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의 연속입니다. 매일같이 10km 를 달리는 것도 모자라 찬물로 샤워를 하고, 그것때문에 추워서 옷을 집에서 껴입고 있는 아들을 상상하기 어려우셨을 테니까요. 가뜩이나 주름이 많아진 얼굴을 잔뜩 걱정스럽게 많이 만드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살뺀다고 그렇게 까지 하는거야? 이제 그만좀 해 충분히 뺐어. 아들아 우리 평범하게 좀 살자. 왜 찬물로 한겨울에 샤워를 하고 그래? 제발 그러지좀 마"


찬물 샤워가 건강에 좋다고, 달리기를 시작해서 이렇게 건강하게 살았던 적이 없었다고 말씀드려도, 어머니가 보실 때는 제가 왠지 극한의 삶을 살고 있고, 목표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견디고 있다고 느끼신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그런 심정이었지만, 지금은 무엇인가를 위해 견디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좋아서 하는 것들인데, 어쨌든 인내라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내 아들이 힘들게 살고 있구나 하고 걱정이 되셨나 봅니다.


" 엄마 저녁에는 따뜻한물로 샤워해요 걱정마세요"

" 그래 따뜻한물로 씻어. 너 냄새나"


그말에 빵 터져버렸습니다. 이제 냄새가 날까봐 걱정하시는건 좀 웃기더라구요. 걱정마시라고,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삶이 평범한 것이 아닌건가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확실히 시계처럼 정확하게 돌아가는 회사원의 생활은 아니니 평범한 것은 아닙니다. 가까운 미래가 보장되어 있지도 않으니 평범한 생활은 아니지요. 내가 사용하는 시간에 대해서 내가 결정하는 삶도 역시 평범한 삶은 아닙니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평범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정말 그러네요.


그런데, 평범하지 않다는 것 즉, 남들과 똑같거나 유사한 삶의 패턴을 가져가지 않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달라서 행복하지 않은가? 이제 그렇게 된지 10개월도 안되었는데? 앞으로 나는 쭉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텐데? 그렇게 살아도 될까? 생각해 봅니다.


오랜 고민이 필요없이 제 마음속에서 그래도 괜찮다 고 대답이 울려나옵니다. 평범하게 살지 않아도 된다구요. 누군가 나의 머리 꼭대기에서, 내가 모르는 나를 평가하고, 내가 모르게 나의 쓰임을 재단하고, 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내 쓰임의 끝을 결정하는 삶이 평범한 것이라면, 그 삶을 끊어낸 지금의 삶이 맞다고 제 마음이 말합니다. 광야로 나와서 벌판에 서 있는것 같이 막막한 순간이라도, 방향이 어딘지 모르더라도, 결국 어디로 갈지는 제가 결정할 수 있으니까요.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삶인것 같습니다.


늘 걱정이 많으신 어머니께, 이렇게 말씀드려야 겠습니다.


" 걱정마세요. 평범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제가 살고 싶은대로 살면서 행복을 찾고 있는 지금이 너무 좋아요 엄마. 대신, 찬물샤워는 꼭 하루에 한번만 할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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