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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지몽 Jan 06. 2024

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나는 직관적인 사람이다. 감이 좋은 사람이다. 핵샘을 꽤뚫는 사람이다


제 의식속에 항상 가지고 있는 자부심 들입니다. 무엇인가 의심스럽고 불안하면 꼭 그 일이 터지고는 했습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지 않아도 단순히 생각하고 딱 보면 알 수 있는 것이 있다고 말하고 다녔지요. 사회초년생때 잠깐 책을 보고 공부했던 관상을 가지고 사람을 알아보고 판단할 수 있다고 떠들고 다녔습니다. 신기하게도, 제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게 맞았는데, 좋은 일 보다는 나쁜일을 맞추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나쁜일을 위주로 일어날 일을 맞추면서, 도데체 무슨 자부심이 그렇게 강했는지 모르겠습니다.


" 저저 저사람 얼굴 좀 봐. 정말 말 안듣게 생겼네 "

" 내가 콧수염 기른 사람 치고 인성이 바른 사람을 본적이 없어 "

" 담배피우는 사람 치고 공중도덕 지키는 사람을 못봤네 "

" 남자가 왜 저렇게 말하는게 여성스러워? "

" 어어어 저사람 운전하는 것좀봐. 저기서 끼어들지. 저봐봐 끼어들잖아"

" 눈썹이 지나치게 길면 미련한 사람이라고 했어"


제가 가진 근거 없는 선입견이란, 정말 한도끝도 없이 써내려갈 수 있을것만 같습니다. 제가 쓴 것들을 살펴보니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왜 이렇게 삐뚤어진 선입견을 나이 44세가 되도록 층층히 겹겹이 쌓아놓고 있었을까요?


염치없게 스스로를 변론하자면, 저는 절대 실패하면 안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일단 나와 다른 기준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이면 이상한 사람으로 간주하고 의심을 거두지 말아야 나중에 나에게 피해가 올 확률이 높을때 재빨리 피할 수 있습니다. 나는 실패하면 안되는 사람이어서, 실패하면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는 한줌의 여유가 없는 사람이어서 지나치게 조심스럽고, 정직하고, 정도만 밟아왔다고 자부했기 때문에, 나와 다른사람은 이상한 사람이고 잘못된 사람이었습니다. 저의 삐뚤어진 선입견은, 빈곤함과 결핍함에서 부터 출발했던 것입니다.


저의 상태가 심각하다고 느낀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아내와 어린이집 행사를 다녀오는길에 아이의 친구들과 동생들, 형아 누나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보고는 저 아이는 왠지 이럴것 같다. 저럴것 같다 라는 말을 아내에게 하고 있었습니다. 제 말을 듣다가 참다못한 아내가 저에게 짜증섞인 말을 던집니다


" 아니 어린애들이자나. 아직 미래가 시작도 안된 아이들이고. 그런 애들 얼굴을 보고 뭘 그리 평가를 해?"


제가 평소에 늘 하던 나쁜 선입견 만들기를 아이들의 얼굴에도 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 아이들이 저에게 무슨 해를 끼치겠으며, 어떤 방어가 저에게 필요하겠습니까? 제가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변명은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이런 짓을 중단해야 합니다. 아내처럼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절대 입밖으로 뱉어내지 않는 말과 생각이라도, 이제는 그만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석사과정을 마치고 나서 선배들이 적극 권유했던 컨설턴트 일을 제가 몸서리 치게 거절했던 이유가 바로 선입견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단편적이고 편협적인 기업의 제한적 정보를 가지고 그 회사의 잘못된 과거를 진단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결정한다니요? 내가 진단하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보다 이론적으로 더 멋진 몇마디를 안다고 해서, 과연 컨설팅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까? 컨설팅이라는 것은 결국 이 회사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 라는 근거없는 전제를 두고 시작하는 것은 아닐까?


마치 제가 저와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을 잘못된 사람 이라고 규정하는 것과 닮았습니다. 커리어에 대한 결정을 할때는 선입견이라는 것때문에 거부를 했으면서, 사람을 보고 판단할때는 선입견이라는 왜곡된 안경이 없으면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는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나와 다른 저 사람에 대해서 나는 무엇을 알고 그 사람을 평가한다는 말입니까?


사회초년생이었던 때에 비해서 저는 절대 빈곤하다고 볼 수 없고, 결핍이 많다고 볼 수 없습니다. 밥벌이로 하는 일이 있고 좋아하는 일이 있습니다. 작지만 서울에 제 명의로 된 집(물론 빚이 있지만) 이 있고, 주말에 가족과 함께 어디든 다닐 수 있는 꽤 넓고 조용한 차도 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 배우고 싶은 일, 해야할 일들이 너무 많구요. 이런 저를 빈곤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이제는 어려운시절에 올렸던 선입견이라는 가드를 내려야 할 때가 온것 같습니다. 나만의 비뚤어진 기준으로 상대방을 재단하지 않고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본다면, 더 많은 것을 보고 교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지 않은 모습만 보지 말고 좋은 모습만 더 파고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 주위에 좋은 사람이 참 많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주위에 좋은 사람이 많은건 나의 운이 아니라, 나의 노력으로 얻어질 수 있다는 것도 이제는 어렴풋이 알것 같습니다.


우습게도, 그것을 알게 된 계기는, 제가 석사졸업시절에 극렬히 거부했던 컨설팅을 무료로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무료로 상담을 해드린다니까 저희 사무실에 찾아오신 50대 후반의 남자분이 있었습니다. 자켓을 걸쳤으나 온통 구겨져 있고, 어울리지 않는 골프웨어 카라티를 입고, 목에는 스마트폰을 걸고, 짧은 바지에 양말이 한껏 올라와 있는 차림새의 남자였습니다. 왠지 욕심은 많은데 능력은 없을것 같은 사람이다. 라는 말도 안되는 선입견이 제 머리를 때리고 있었지만, 애써 눌러놓고 상담을 진행했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많은 것을 바라는게 아니었습니다. 어떤 가르침을 구하는 것도 아니었구요. 저보다 업력도 오래되신 분이었습니다. 그런 분이 저에게 선입견을 버리고 찾아오셔서 바라셨던 것은 단 하나였습니다. 그건 바로 " 내 이야기를 좀 들어주세요 " 였습니다. 본인이 이미 답을 다 알고 있지만, 상대방이 그 답을 다시한번 짚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 누군가 나의 고민과 답답함을 좀 들어주었으면 바람 하나를 가지고 본인보다 어린 상대를 만나려고 먼 길을 오셨던 겁니다.


그분이 저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저에게 말을 건냈을때, 기껏 행색따위를 보고 상대방에 대한 선입견을 만들어 냈던 제 자신은 산산히 부서져 버렸습니다. 그 분을 다시 바라봤습니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에 비해서 한없이 겸손하시고, 허래허식과는 어울리지 않으며, 부드럽고 온화한 분이였습니다. 그분이 저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다가와 주셨을때 부서진 저의 선입견이라는 왜곡된 안경이 사라지자 내 앞에 있는 사람은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예전에는 이런 질문에 쉽게 대답했습니다


" 저사람 어떤것 같아?"

" 저사람? 내생각에는 이런것 같아"

한치의 망설임 없이 이야기 했던것 같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조금 달라진것 같습니다

" 저사람 어떤것 같아?"

" 저사람? 글쎄 나도 모르겠어"


이제 정말 모르겠습니다. 몰랐으면 좋겠습니다. 이유없고 터무니 없는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와 혐오가 제 삶을 망치게 둘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그 사람에 대해서 모르지만, 밝고 긍정적인 모습을 더 많이 찾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노력을 앞으로는 더 많이 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그런 노력이, 제 주위에 좋은 사람이 많아서 행복한 제 자신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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