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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일이야? 가능한 일이야!

[소년이 온다]를 읽고

by 전성옥

군에 간 아들에게 카톡이 왔다.

“엄마, 저 펑펑 울었어요.”

“왜?”

“무슨 일이야? 군대 힘들어?”

“엄마….”

“저 제대하면 광주에서 살래요.”

밑도 끝도 없이 쏟아내는 문자에 엄마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답을 물었다.

“군대에서 무슨 일 있었어?”

“엄마.”

“[소년이 온다] 읽었어요.”

“그랬구나. 그랬구나. 마음이 그랬구나.”


군에 있는 아들이 [소년이 온다]를 읽고 울었다니 마음 한구석 쓰린 아픔이 다시 몰려온다. 스물 한 살 대학을 휴학하고 군에 입대한 아들은 엄마의 걱정 한 자락을 품고 있다.

훈련소 생활을 마친 아들은 제법 늠름한 모습이었고 자대배치를 받고 몇 달 뒤에 휴가 나온 모습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군인이었다.

그래서 마음 한구석 걱정을 조금 덜어내고

2024년 12월. 연말을 잘 마무리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늦은 밤, 편안한 졸음에 잠을 청하려 하는데.


“엄마! 엄마! 엄마!”

“큰일 났어요. 우리 오빠 어떡해요? 빨리 TV 켜봐요.”

윗층에서 자다 말고 뛰어 내려온 딸의 두려움과 공포가 온몸에 전해져 내려왔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

“오빠에게 무슨 일이 생겼어? 전쟁이라도 난 거야?”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30분. 비상계엄선포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순식간에 두려움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군에 아들이 있는 엄마는 TV를 보며 밤새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제발 아무일도 없게 해 주세요. 제발 아무일도 없게 해 주세요.’

아직도 혼란스러운 나라에 군인으로 있는 아들이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면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

광주에 살겠다는 아들의 담담한 다짐은 소년에게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을, 광주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잊지 않겠다는 책임감, 기억하고 기억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는 청년 군인의 따뜻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아직도 떠돌고 있을지 모르는 소년의 혼을 조금이라도 달래보고 싶었던 마음이었으리라.

괜찮다고 말해주어야 할까. 우리나라는 그들의 목숨값이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시켜 주어야 할까. 그러기에 지금 대한민국은 그날의 소년에게 너무나 부끄러운 현실은 아닐까.

1980년 5월의 두려움이 세대를 흘러 상처가 아물고 새살이 돋아나야 할 자리에 또한번 커다란 상처로 돌려 세워놓다니.

한강의 기적이 전 세계를 흔들고 훼손된 보편적 가치가 제자리를 찾아갈 용기를 얻을 즈음에 말이야.

지금을 사는 소년들의 말로,

“아니 이게 가능해?”

“21세기 민주사회를 사는 세상에서 계엄이 가능한 일이야?”

5월의 불꽃은 또다시 광화문으로, 여의도로, 헌법재판소로 가야 했다.

또다시 촛불을 태워 무너진 상식과 정의를 세워야 했다.

군에 아들을 둔 엄마의 마음을 세상이 좀 지켜주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다시 집어 들었다.

작은 소리로라도 말하고 싶다.

닿지 않는 마음이라도 보내고 싶다.

무엇이라도, 어떤 행동이라도 해서 보탬이 되고 싶다.

열일곱 소년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오십, 육십을 바라보는 엄마도,

이제는 숨죽이며 두려움에 떨지 않고 일어나 말하고 싶다.

소년을 지키기 위해, 아들을 지키기 위해, 대한민국의 상식과 정의가 세워지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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