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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설 Oct 01. 2020

V. 사람 사이에서

관계의 뿌리, 가족

책을 쓰면서 내 인간관계의 뿌리, 시작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인간관계, 사람과의 만남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 테고 어떤 환경이 내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뿌리를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족이 떠올랐다. 

모임을 주최하는 일이 많은데(물론 최근에는 코로나로 인해 이러한 일상은 거의 상상을 못하지만) 가끔은 카페나 음식점이 아닌 집이나 일터에서 모임을 열기도 한다. 그런 모임에서는 내가 음식을 만들고 상을 차린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내가 무슨 종갓집 맏며느리도 아니고, 장금이도 아닌데 하는 푸념을 늘어놓곤 했다. 그럼에도 나는 참 무던하게도 열심히 음식을 만들고 그릇이 비면 음식을 담아서 사람들에게 갖다 주고 있었다. 마치 내 모습은 어머니가 살뜰하게 주위 사람들을 챙기고 베푸는 모습과 같았다. 

어머니는 참 좋으신 분이었다. 내 인간관계의 뿌리, 회복탄력성의 근원은 어머니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머니는 내 인생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치신 분이다. 내가 영국 유학 생활을 하며 공부에 지쳤을 때나 살면서 인생에 지쳤을 때,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질 때도 어머니는 항상 내 편이셨다. 내가 힘이 들 때면 어머니는 내 이름을 부르시면서 언젠가는 세상에 빛을 발하는 큰 인물이 될 것이라는 칭찬과 덕담을 자주 해 주셨다. 이 세상에 남들이 뭐라고 해도 내 편이 되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된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모습은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모습이다. 우리 집 형편과는 상관없이 주위에 어려운 이웃들에게 쌀을 가져다주고 반찬을 만들어서 갖다 주는 등 어린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내가 막내여서 그랬는지 어머니는 밖에 나가실 때 나를 대동하고 다니셨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게다가 추운 날씨에 어린 나를 데리고 남의 집에 무언가를 가져다주시며 좋아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정말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끊임없이 반찬을 만들고 떡을 만들고 장을 담그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어느새 내가 한식을 마스터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나 역시 요즘 모임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먹을 음식을 만들곤 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내가 좋아서 직접 김치를 담그고, 해물찜을 만든다. 외식을 해도 되는데 굳이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집밥을 해 먹이는 내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의 피가 고스란히 흐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나와 있으면 엔도르핀이 돌고 기분이 좋아진다고들 하는데 이런 특징도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모임을 주관하는 것을 즐겨했고 어머니가 대화를 이끌고 나가셨다. 나 역시도 전체 모임을 주관하고 스트레스를 푸는 시간이 있을 때 내가 사회를 맡고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들고 웃게 만드는 능력도 어머니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어려울 때 긍정적인 이야기로 힘을 주시고 사람들에게 베푸는 등 인정이 넘치셨다. 이것이 어머니의 회복탄력성의 근원이었고 나는 어머니 곁에서 자연스럽게 회복탄력성을 보고 배우고 느끼며 자랐다. 

누구나 실패를 경험한다. 나 같은 경우는 내가 정말 잘난 줄 알고 까불대다가 대학 입시에서 떨어졌다.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큰 좌절이다. 대학 입시의 실패는 인생의 실패라고 생각했다. 인생의 답은 하나밖에 없다는 주입식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실패의 충격은 엄청났다. 그때 어머니가 내게 자주 해 주시던 말씀이 있다. 

“아들, 다 잘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늘 너를 위해 기도하니까 좌절하지 말고 열심히 해, 아들.” 

별처럼 빛나는 많은 말씀 중에 유독 그 말씀이 지금까지도 내 귓가를 맴돈다. 그때는 철이 없어서 어머니가 그런 말씀을 하실 때마다 속으로 투덜거렸다.  

‘아니, 내가 뭐가 잘되냐고. 먹으면 먹는 족족 다 살로 가는데. 뭐가 잘되냐고.’

애꿎은 내 몸무게와 살을 타박하며 심통 아닌 심통을 내기도 했다. 나이를 좀 더 먹고 더 큰 위기와 좌절을 경험하면서 힘들 때마다 내 곁에서 다정하게 말씀하셨던 어머니의 그 말씀이 내게 참 큰 힘이 되었다. 그 덕분에 회복탄력성도 더 단단해져서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그냥 또  일어나게 되더라. 나를 일으켜 세우는 긍정의 힘 회복탄력성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힘을 준다. 그 힘이 눈덩이처럼 커져서 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      

어떤 강연이든 강의이든 내가 살아온 삶을 먼저 소개한다. 환하게 웃으며 미 톤으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청중은 내 삶이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만 가득하겠거니 생각한다. 고려대학교, 연세대학교, 서울대학교, 영국 University of Essex, 미국 University of Pennsylvania 등에서 각각 다른 전공을 공부했고, 공부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SKY 세 곳을 다 들어갔으니 특별하다면 특별한 학력일 수 있다. 게다가 영국 유학까지 갔다 와서 이 정도면 고학력 스펙에다 외대부고 영어 선생, 외대교육대원 교수 등 남부럽지 않은 이력이다. 

누군가에는 자랑처럼 들릴 수 있는 내 이력을 소개하고 나면 당신은 행복할 수밖에 없겠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늘 좋은 일만 있을 것 같고 어떤 고민도 문제도 없어 보이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가슴 아픈 슬픈 일이 있다. 나는 누구에게나 슬픔은 배어 있다고 생각한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로 강연(강의)의 문을 열어야 좀 더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내 이야기를 주저 없이 한다. 그중에는 형 이야기도 있다. 나에게는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멋진 파일럿 형이 있었다. ‘형이 있었다’고 표현하는 것은 그 형이 얼마 전 세상을 등지고 하늘나라로 먼저 떠났기 때문이다. 형과는 나이 차가 세 살밖에 나지 않았지만 어렸을 때 형은 나에게 든든한 울타리였고, 내 삶의 버팀목이었다. 

말끔한 사관학교 제복을 차려입은 형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멋있고 한결같았다. 형에게는 내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절도와 카리스마가 있었고 약자에 대한 너그러움이 있었다. 그런 형이 비행 중 불의의 사고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형의 사고는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먼저 형을 자식처럼 돌볼 사람이 필요했다. 그 일을 내가 떠맡기로 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형의 고통, 형의 위기를 외면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일을 내 운명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픈 형을 마주한다는 것은 잔인한 현실을 맞이하는 일이었다. 육체적 상처는 치료할 수 있었지만 정신적 상처는 치유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더 힘들었다.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 하는 상처였기에 감당을 해야지 하면서도 감당하기가 버거울 때도 있었다. 게다가 잔인한 현실의 주인공이 형이라는 사실에 더 힘들었다. 늘 남을 배려하며 선한 웃음으로 나를 격려하고 위로했던 형이기에 더욱 힘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형을 외면하지 않고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내 선택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내 삶의 주인은 나이므로. 그 선택도 운명도 내 것이므로. 

내 선택을 밀고 나가기 위해 포기해야 할 것들은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무슨 일이든 선택을 하게 되면 그에 따라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모두 것을 다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약에 의지하지 않으면 아이가 되어 버린 형을 제대로 돌보기 위해서 아이를 갖지 않기로 했다. 아내의 동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도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다른 형제들이 있었지만 다들 자식들이 있어서 형을 돌보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그 당시 아이가 없던 내가 고민 끝에 형을 돌보겠다고 선언할 수 있었다. 나는 형을 내 아이라고 생각하고 정성을 다해 형을 돌봤다. 

형을 돌보면서 정말 많은 것을 깨달았다. 형의 죽음은 다시 나를 돌아보게 했다. 형을 내 자식을 돌보듯이 돌보겠다는 마음을 먹고 아이도 갖지 않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데 그런 형을 부담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문득 형이 100통 넘게 전화한 일이 떠올랐다. 정말 그날은 형의 전화를 받고 형을 다독이느라 아무 일도 할 수 없어서 너무 힘들었다.  

과연 나는 형을 잘 돌본 것일까, 사람을 돌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 곁에 사람이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등등 다시 사람,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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