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감동시키는 경영
이런저런 일로 오늘 하루는 조금 느슨하게 시작되었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너무나 많은 일들을 원만하게 처리하지 못해 고심하고 있었고, 제자랑 맘이 편치 않아서 어떻게 하면 소통을 잘 할까 고심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던 일을 그만 두고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 잠시 사치스러운 산책을 하기로 맘을 먹었다. 일에서 벗어나고자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었는데 다시 일중독이 되어버린 나를 보면서 너무나 안타까웠다. 우리집 빌리풍씨 하얀 포메라리안 강아지는 잠시도 쉬지 않고 시간차 공격을 하면서 연신 밖을 나가자고 조르고 있다.
우리집 빌리풍씨는 너무나 영리해서 내가 향수만 뿌리고 스카프만 두르면 어느새 외출할 것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운동복 차림의 바지를 입으면 이건 백발백중 자신과의 산책임을 알아차리기에 옷을 입는 순간부터 거의 적극적으로 나를 밀창 방어하면서 자기를 데리고 가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나도 우리집 빌리풍씨처럼 삶에 저렇게 적극적이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 너무나 많은 일들에 치여 일을 즐긴다기보다는 하나하나 쳐낸다는 느낌이 오히려 강했다.
옷을 차려입고 모처럼 산책을 시작했다. 하루가 다르게 단풍은 늘어나고 이제는 심지어 단풍이 떨어져서 바람에 뒹굴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지금 현재 시각은 11월 8일, 벌써 차가운 겨울의 문턱에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옷깃을 다듬고는 아파트 뒷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오랫만에 하는 가을 산행이라 기분이 좋았다. 우리집 빌리풍씨도 모처럼의 산책에 연신 꼬리를 연들며 길거리의 모든 사물에 관심을 보이며 자연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렇게 자그마한 행복을 왜 누리지 못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강연, 논문, 책읽기, 아니면 수업 등으로 나는 어쩌면 내 삶을 갉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바람이 그다지 차갑지 않아서 그저 가을 바람과 겨울이 오기 전의 뒷산은 아름답기만 했다. 산을 거닐면서 연신 어떻게 하면 소통을 잘 할것인지 고심을 하고 있었다. 산을 거닐면서 생각을 하는 건 너무나 좋았다. 그리고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며칠 전부터 아내가 반찬을 시켜달라고 졸라대고 있었다. 반찬을 배달해서 먹고 있었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반찬 배달을 하지 않아 아내가 밥을 먹지 못한다고 칭얼대길래 나도 모르게 화가 나서 이제 알아서 먹으라고 했다. 왜 반찬을 할 생각은 하지 않느냐부터 시작해서 그 동안 참았던 화가 한꺼번에 터져버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오늘은 큰맘 먹고 반찬가게에 가 보기로 했다. 아내는 배달해주는 반찬이 조미료가 없어서 좋은데, 일반 반찬가게는 조미료가 강하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여튼 빌리풍씨와 함께 산을 내려와 반찬가게로 향했다. 언젠가부터 반찬가게 오픈한다는 문구를 보았는데 오늘은 글쎄, 그 반찬가게가 드디어 오픈을 한 것이다. 그것도 오늘이 개업 첫날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카드를 들고 갔는데 안타까운 건 아직 카드단말기가 개통되지 않아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빌리풍씨까지 가게에 들어오게 해주는 친절한 사장님께 감동을 받았는데 그래서 더더욱 반찬을 사야하는데... 망설인 순간 , 사장님은 아직 바쁘지 않으니 반찬을 구매하면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하셨다.
집까지 멀지는 않았지만 내가 아마도 오늘 이 반찬가게의 맞수인가 보다. 다들 내가 맞수를 해주면 하루가 대박이 난다고 하는데 이 집도 그런 모양이다. 난 보기에 너무나 인심좋게 생겼다. 그것은 후덕한 나의 외모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살이 쪄서 옷을 예쁘게 입는데는 실패하지만, 좋은 인상을 주는데는 백프로 성공이다.
"저가 반찬이랑 같이 모셔다 드릴께요! 첫 손님이고 하니 ... 호호호"
"너무나 감사합니다. 전부 맛있게 보여요. 그러면 여기 잡채, 도라지 무침, 쇠고기 국, 오징어부추전, 고등어조림, 음.. 그리고 문어무침, 그리고 개업 떡은 정말 맛있어 보이는데 두 개 줄 수 있죠? " 하면서 오랜 기간 단골인척 너스레를 떨었다.
반찬가게 사장님이 보여준 친절 덕분에 나는 카드단말기가 작동되지 않아서 차마 살 수 없었던 맛있는 반찬을 구입할 수 있었고 집까지 오신 반찬가게 사장님께 현금을 드릴 수 있었다.
"반찬이 입에 맞을지 모르겠지만 맛있게 드세요.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아 맛이 담백할 수 있어요 ㅎㅎㅎ"
"저가 원하는 반찬입니다. 넘 감사드립니다."
사실 난 다이어트 하느라 밥을 거의 먹지 않는다. 그럼에도 맛있는 반찬이 있으면 참지를 못한다. 오늘 반찬은 너무나 맛있어 보였고 실재 사장님이 돌아간 순간, 맛을 봤더니 오 놀라운 맛 그 자체였다. 아내가 돌아오면 너무나 좋아할 얼굴이 그려졌다.
그렇게 잠시의 행복을 그리는 순간, 내 핸드폰에 띵똥이라고 메세지가 떴는데 헐, 아내는 내가 반찬을 산 줄도 모르고 또 다른 반찬 가게에서 여러가지 반찬과 떡집에서 떡까지 구입을 했다. 하지만, 굳이 취소하라고 할 수도 없는게 그 집 반찬가게는 덜어서 반찬을 팔기 때문에 지금 취소하면 너무 반찬가게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 참에 두 가게의 반찬을 비교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 두었다. 날씨가 더워서 음식이 상하는 것도 아니고...
아내는 돌아오자마자 식탁위에 아직 치우지 않은 반찬을 보면서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허겁지겁 잡채부터 먹기 시작했다. 어찌나 맛있게 먹든지 며칠 전 화를 낸 것이 괜히 미안해졌다.
행복이 별 것인가 싶었다. 저렇게 한 끼의 식사를 먹으면서 누리는게 작은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반찬가게 사장님이 베풀어준 작은 정성과 배려가 또 다른 행복의 씨앗이라고 생각했다. 오늘 베풀어준 친절 덕분에 난 아마도 종종 그 반찬가게를 찾을 것 같다.
내가 아무리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줘도 아내는 이미 내 반찬을 너무 많이 먹어서 질렸는지 색다른 반찬을 원하고 있다. 난 아무리 먹어도 내 반찬이 최고인데 ....
이 가을, 반찬가게 사장님의 따뜻한 전처럼 행복이 내 가슴 속이 조용히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