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드는 가을 산을 바라보며
전국적으로 행복학, 리더십, 동기부여, 열정 등 강연을 많이 다니다 보니 자연적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일을 핑계 삼아 가족들이랑 차를 타고 여행을 가는 것이다. 강연장에 도착해서 강연하는 시간은 1시간에서 2시간인데, 정작 달려가는 시간은 장소에 따라 많게는 5시간 걸리는 경우가 있다. 일이라고 생각하면 도저히 갈 수 없다. 그리고, 지방이라고 해서 강연비를 많이 받는 경우도 아니지만 그래도 머나먼 곳에 있는 나를 캐스팅해주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는 생각에 나는 감히 불평을 할 수가 없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가을, 벌써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는 점이다. 아파트에 단풍이 든 줄도 모르고 너무나 하루하루빨리 급하게 살다 보니 여유를 찾고자 떠난 직장인데 또 다른 일들을 너무 많이 하는 게 아닌가 반성이 들기도 했다.
장거리 운전 중에 바라본 가을산은 그저 아름답기만 했다. 강원도가 주는 또 다른 색다른 멋이 피로에 지친 나를 잠시 휴게소에 머물게 했다. 고즈넉한 먼산을 바라다보면서 잠시 내가 잃었던 여유를 찾게 되었다. 단풍이 곱게 든 가을산이 주는 여흥은 나에게 또 다른 매력 그 자체였다. 그저 보기에는 아름다운 단풍이 사실은 열정적으로 달려온 뒤 어쩔 수 없는 약간은 탈진의 느낌이라고 하니 자못 인생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단풍이 주는 교훈은 사람도 마찬가지로 나이가 들면 늙어지게 마련인데 오히려 늙음에서 오는 아름다움의 미학이 있다는 것이다.
자연도 시간과 더불어 더 성숙해지고 아름답고 고운 자태를 자랑하는데 사람도 나이가 들수록 연륜에서 오는 여유와 삶에 대한 성숙과 반성, 여유로움이 바로 단풍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젊었을 때의 곱고 화려한 느낌은 없지만,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성숙과 인생에 대한 다소 관조의 느낌,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주는 풍요로움은 어쩌면 단풍이 주는 아름다움과 견주어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 부지런히 미금역을 달려가고 있었다. 하루 종일 스케줄이 꼬여 차로 이동하다가는 죽을 것 같아서 대중교통인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너무나 좋았다. 운전하면서 써야 하는 신경은 저만치 날아가고 지하철 안에서 나만의 사색도 할 수 있으니...
벌써 쌀쌀해진 날씨에 지하철 주변으로 맛있는 음식들이 즐비했다. 난 개인적으로 길거리 음식을 너무나 사랑한다. 나의 여유로운 몸매가 달리 나온 게 아닌 것 같다. 맛있는 음식들을 바라다보다가 결국은 이번에도 내가 루저가 되고 말았다.
"음, 어쩜 국화빵이 이렇게 예쁘게 생겼어요? 너무나 먹음직스러워요!"
"우리 집은 전국에서 유명한 곳이에요, 쌀로 만들거든. 얼마나 달콤하고 고소한데.."
안 그래도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정기 검사를 받고 오는 터라 많이 지쳤다. 그렇다고 죽을병이 있는 것은 아니고, 지난번 신장결석을 받은 후 건강염려증이 생겼는지 어쩔 수 없이 병원을 주기적으로 찾아서 검사를 받고 있는 것이다. 신장이 기능을 제대로 못하면 어쩌면 투석까지 갈 수 있기에 더더욱 두려운지도 모른다.
몸도 마음도 지쳐서 흐느적거리는데 그때 별견한 따끈하게 김이 오르는 국화빵은 작지만 너무나 탐스러웠다.
"얼마예요?"
"한 봉지에 2천 원입니다"
"그럼 한 봉지 주세요!"
부지런히 따끈한 국화빵을 담아주신다. 그런데 너무나 맛있어 보여 나도 모르게
"한 봉지 더 주세요."
"다들 많이 사 가세요"
국화빵 2 봉지를 품에 안고 그리고는 나도 모르는 새 입에는 달콤한 국화빵의 팥앙금이 사르르 녹아내리고 있었다. 달콤함이 주는 감동은 어느새 피로를 말끔히 해소시켰다.
기분이 좋았다. 건강에 대한 걱정은 잠시 사리지고, 연세 드신 노부부의 평온한 얼굴이 조용히 떠올랐다. 정말 곱게 늙으셨고 삶의 여유가 느껴졌다. 국화빵을 파시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엿보였다. 특히 전국에서도 알아준다는 그 말씀을 하시는 데는 당신의 일에 대한 강한 자부심도 느껴졌다. 국화빵 하나하나를 만드시는데 장인의 정성과 자부심이 넘쳤다. 무엇보다 국화빵을 파시는 게 아니라 사랑과 정성을 주변에 나누어주는 그 환한 미소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적 나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오늘 하루 행복하시고요. 많이 많이 파시고 건강하세요"
"젊은이가 정말 싹싹하네요"
오늘 또 젊은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나이 50에도 젊은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좋았다. 잠깐 전 들렀던 매장에서도 나보고 30대 중반이라고 했는데 역시 내가 동안은 동안인가 보다. 괜히 기분이 좋았다. 물론 옷가게어서는 립서비스로 그렇게 말할 수도 있었지만 연세 드신 노부부께서 뭣하러 나에게 립서비스를 하셨을까? 이건 분명 팩트일 거야라면서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사실, 새로 산 옷을 처음 입었는데 아침에 어디 강연장을 갔다가 잠시 자리에 앉는 순간 뿌지직 헉헉헉 새 옷이 찢어지고 말아서 많이 속상했던 참이었다. 속상했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다. 어차피 새 옷은 찢어져서 입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그렇다고 분통을 터트리면 나만 손해겠지라고 생각하며 이제는 그냥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사고의 전환이다. 화를 내서 무얼 할까?
연세 드신 노부부의 정성 어린 국화빵에 감동받으며 그리고 입에는 국화빵을 가득 물고 지하철 안으로 들어섰다. 평일임에도 금요일 이어서 그런지 오후에 전 차량 칸에 사람들로 가득 찼다. 자리를 앉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설령 자리가 있어도 연세 드신 어르신을 두고서 앉는 것도 예의는 아닌 것 같아 자리를 양보하고 서서 가던 순간 아름다운 장면을 목격했다.
경로석에 앉으신 할머니께서 애기를 업은 젊은 애기엄마에게 선뜻 자리를 양보하셨다. 당신도 불편할 텐데, 애기 엄마 힘들 거라며 양보하는 모습에 눈시울이 촉촉이 젖어들었다. 정말 아름다웠다. 아직도 살만한 세상인가 싶었다. 애기엄마도 처음에는 주저하다가 할머니의 배려에 마지못해 자리를 앉았다.
문득 얼마 전 텔레비전 프로가 생각났다. 연세 드신 분들의 삶을 잔잔히 조명해준 프로그램이었는데, 어떻게 나이 들지에 관한 몇 가지 예를 제시해 주었다. 연세 드신 분들은 조용히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계셨다. 인생을 계절에 빗대어 초가을, 겨울의 막바지, 겨울의 문턱 등 표현이 정말 다채롭고 이색적이었다.
"우리들은 선배들로부터 어떻게 늙어가는지에 대한 어떠한 가이드도 받지 못했어요. 그냥 하루하루 사는 게 너무나 힘들었죠. 그런데 이제 우리는 여유가 생겼는데 어떻게 늙는지에 대한 준비가 전혀 없어요. 그래서 하나하나 찾아보려고요. 그래서 우리 후대에 모범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아름답게 늙고 아름답게 생을 마감하는 연습을 하고 계셨다. 우선은 건강하게 행복하게 사는 연습을 하고 계셨다. 어쩌면 그분들에게는 남은 생이 많지 않다는 생각에 연습이 아니라 실전 경험을 하고 계신 것이다. 늦다고 생각한 연세에 악기를 배우고, 취미활동을 통해 주변과 나눔의 삶을 실천하는 모습에 진한 감동이 전해졌다.
가끔 나이 듦에 대해 생각한다. 예전에는 나이 먹는 것이 두렵고 싫었지만 이제는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다시금 내 삶을 조용히 살펴보게 된다. 젊어서 못했던 일들을 이제는 하나하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때로는 감사를 드린다. 다만 건강에 있어서는 나이 들수록 자꾸만 고장이 나기 때문에 조심을 해야 할 것 같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그 누구도 줄 수 없다. 다만 여러 사람의 삶을 통해서 내 삶을 찬찬히 조명하고 돌이켜보면서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나갈 뿐이다. 내가 보았던 국화빵을 신조를 갖고 파시는 노부부, 젊은 새댁에게 자리를 선뜻 양보한 연세 드신 할머니, 그리고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자신이 뒤늦게 배우 바이올린 연주를 통해 주변에 사랑을 전하는 할머니 등은 모두 나에게 어떻게 살아갈 지에 대한 모범 답안을 보여주는 듯싶었다.
내가 만들어나갈 나의 또 다른 삶은 어떨지 나도 자못 궁금하다. 하지만, 최소한 맘에 드는 생각은 아름답게 하루하루 나이를 먹자는 것이다. 아름답다는 것은 여러 가지 중의적인 의미가 있는데, 아름다움은 아마도 더불어 함께 나누며 사는 삶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