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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작가 Sep 20. 2022

The Sign

#12




 찰스는 어제 밤일을 그냥 넘어가기에 뭔가 찜찜했지만 그렇다고 미셀의 심경을 건들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들에게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다정스러운 그녀를 보며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질문겨우 눌러 삼켰다.
  "오늘은 뭐하면 지낼 거야? 미셀?"

  "어.. 좀 있다 아이들 통학시킨 후에 친구하고 커피 마시기로 했어.."

  "누구? 어느 친구?"

  "어.. 그날 만났던 친구 있어.. 전기차에 관해 좀 물어볼 게 있어서.. 여보.. 회사 잘 다녀오고  졸리.. 엔젤 준비다 했니? 이제 학교 가야지?"

 찰스는 황급히 아이들을 부르며 차고로 향하는 미셀의 뒷모습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래... 미셀 저녁에 봐..."

  "응.. 찰스"



 분주한 사무실 산떠미처럼 쌓인 업무에도 찰스는 온통 미셀 생각에 사로 잡혀있었다. 어젯밤 그녀의 낯선 행동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나오는 한숨을 내뱉으며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창문 너머 빽빽한 고층빌딩과 유리창에 비치는 찰스의 얼굴이 서로 보였다. 그의 복잡한 일들도 머릿속에 함께 투영되어 흐릿했던 모양새가 또렷해지면서 그불안한 두 눈과 마주쳤다. 그때 번뜩 촉이 섰다. 미셀이 뭔가 달라진 것이 분명하다고 직감한 순간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네? 뭐라고요?... 아니 거기가 어딥니까? 네 당장 가겠습니다..."

 소스라치게 놀란  귀신에게 홀린 사람처럼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찰스는 황급히 병원 문을 열고 인포메이션 직원에게 미셀이 있는 병실을 물었다.

  "503호가 어디입니까? 위급환자 미셀 킴입니다."

  "여기에 이름을 작성하시고 저기 보이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가세요."

 여간호사는 귀찮은 듯 집게손가락 끝으로 복도 쪽을 가리키며 방문자용 파일을 건넸다. 찰스는 이름란에 정보를 서둘러 기입한 후 복도 끝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렸다. 저 멀리 엘리베이터의 문이 아슬아슬하게 닫히려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숨 가쁘게 도착한 엘리베이터 앞에서 문이 다시 열렸다. 누군가가 버튼을 누른 것 같았다. 안으로 발을 들일 때쯤 한 여성과 마주쳤다. 그 여성은 흑백사진처럼 검은 머리에 창백할 정도의 흰 피부가 오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찰스가 5층 누르려 하자 그녀가 먼저 버튼을 눌렀다. 이상한 촉을 느꼈다. 정막 속에서 어느덧 5층 문이 열리고 찰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503호로 뛰어갔다. 병실 문을 열려하자 그 여성이 찰스의 앞까지 와 있었다. 그리고 창백한 얼굴로 말을 건넸다.

  "실례하지만 당신이 여기에 오신 건가요?"

 다짜고짜 따지는 듯한 말투가 심기를 거슬렸다

  "아니.. 당신누구십니까? 저는 제 아내를 만나러 왔습니다만."

  "저는 다니엘의 약혼녀 에이미입니다. 아.... 그 여자분이 당신 아내였군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

 찰스는 그녀의 뜬금없는 대답에 어리둥절하는 동안 그녀가 먼저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찰스도 따라 들어갔다. 놀랍게도 미셀과 그 다니엘이라는 남자가 병실에 함께 있었다.


 미셀 다니엘은 전신 깁스와 산소호흡기로 의지한 채 누워있었다. 찰스는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변해버린 미셀의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닿고 있던 입술을 떼며 찰스가 말했다.

  "제 아내가 왜 당신 약혼남과 함께 있습니까?.."

 분노 가득 찬 에이미는 이미 알고 있다는  말을 이었다.

  "경찰이 그들의 관계를 조사했는데 친구관계만은 아닌 것 같다고 했어요. 저도 정황은 잘 모르겠으나 다니엘이 퇴근 후 대학동창과 저녁을 할 예정이라 했는데 그 시간에 당신의 아내와 함께 있었는지 저도 궁금하네요.."

 배우자의 외도에 분노한 에이미는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포스코 거리에 3중 추돌 사건이 있었어요. 당신 아내분이 저 남성분의 차에 함께 있었고.."

  "미셀이 친구와 약속 있다고 했었는데... 믿을 수가 없군요.."

  "일단 경과를 지켜봐야 알겠지만 의사의 진단에 따르면 뇌에 큰 손상을 입었고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보호자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들었어요.."

  "뭐... 뭐라고요?..."


 미셀은 산소호흡기를 입에 물고 마치 마법에 빠진 숲 속의 공주처럼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생기 있던 금발머리가 붕대로 볼품없이 눌려있었고 타박상으로 온몸이 터질 듯 부어올라 있었지만 이름을 부르면 마치 깨어날 것 같아 보였다.

  "미셀.. 다 용서할 테니 깨어나기만 해 줘.. 우리 두 아이를 위해서라도..."

 에이미가 떠난 뒤 찰스는 병실에 홀로 남아 미셀의 이름을 애절하게 불렀다. 미셀의 부어오른 손가락을 압박하는 결혼반지를 빼내려다 복잡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결국 통곡하고 말았다.

  "미셀.. 제발 눈을 떠.."

 찰스울부짖는 목소리가 고요한 병실을 가로질렀다. 그는 떨어지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며 두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다 무언가 다짐한 듯한 표정으로 병실 밖으로 홀연히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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