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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작가 Sep 27. 2022

The Infinite

#13




 한 달이 지나 5월이 되었다. 미셀을 포기하라는 주치의를 찰스가 떠밀다가 경찰에게 구속될 뻔 한 사건 이후로 소피라는 요양보호사가 미셀을 돌보고 있다. 미셀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 찰스의 고집으로 그녀는 호흡기만을 의지한 채 연명하며 하루하루 잠들어 있었다. 에이미는 다니엘의 외도로 인한 충격으로 다른 남성과 교재를 시작하였고 병실에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다니엘의 여동생이 가끔 병문안을 오기는 했지만 딱히 그를 맡아줄 사람이 없는 듯 보였다.


 소피는 오늘도 어김없이 아물어 가는 미셀의 상처를 소독하고 정성스럽게 돌봐주었다. 미셀이 깁스를 걷어낸 이후 부러지고 금 갔던 골반과 갈비뼈도 모양새를 갖춰갔다. 그러나 뇌의 기능 전혀 전되는 않았다. 퇴근 준비를 마친 소피가 찰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찰스.. 일 다 마치고 이제 퇴근해요. 아참 어제 다니엘의 여동생이 찾아와서 병원비를 청구했고요, 의사의 진단대로 더 이상의 희망이 없을 것 같다며 곧 장례식을 준비하겠다고 했어요... 찰스는..."

 "소피.. 그 자식은 그렇게 하라고 하세요. 저는 미셀을 끝까지 책임 질 겁니다.. 수고하셨고 내일 뵙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소피는 전화통화를 마치고 병실 문을 나서면서 저 멀리 누워있는 남녀를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왠지 모를 처량함에 한마디를 던졌다.

 "사랑인지 뭔지 잘 모르겠지만 결국 죽으면 다 끝인데.. 아름다운 사랑이라도 하셨으면 좋겠네요..."

  집에 아이를 두고 떠나는 엄마처럼 그녀는 몇 번을 뒤돌아보며 발길을 옮겼다.


 해가 사라지고 어둠이 내려앉았다. 모두가 잠든 새벽은 마치 가로수 밤거리를 밝히는 조명처럼 달빛에 녹아들었다. 현란한 네온들이 하나둘씩 꺼지고 구름 위로 달이 모습을 드러낼수록 어둠과 이 공존하는  다른 세상이 되어 갔다. 병실에는 그들의 숨 쉬는 소리가 새벽의 적막함을 달래었고, 창문 틈새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소리는 악랄한 마녀의 주문처럼 요란하게 울어댔다. 언제부터인지 창밖 넘어 신비로운 푸른빛이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발광하는 가늘고 긴 푸른 선들이 광활한 바다를 덮은 그물처럼 천지로 펼쳐져 갔다. 빛나는 선 하나가 병실 유리창을 관통하여 앞까지 깊이 들어왔다. 문에 닿은 빛줄기가 굴절하여 건너편 벽에 닿고 다시 다른 물체와 충돌하여 여러 방향으로 흩어졌다. 산란된 빛들이 얽히고설켜 병실을 가득 메꿔 나갔다. 그때 뇌파 검사기(EEG) 한 줄의 빛이 닿자 모닥불에 나무가 타듯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전선이 녹아내리고, 매캐한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천장 위로 수북한 연기가 산란된 빛을 받아 마치 천국의 구름처럼 묘하게 피어올랐다. 불꽃을 일으키는 뇌파 검사기가 굶주린 흡혈귀처럼 산란된 빛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강력한 에너지가 전선을 따라 그들의 뇌에 부착된 패드로 이동했다. 병실에 얽혀있는 푸른빛들이 모두 흡수되어 사라질 때까지 멈추지 않고 그들의 뇌로 채워져 갔다. 잠들어 있던 미셀의 메마른 입술에 생기가 돋고 푸석했던 금발에 매끄러운 광택이 흐르기 시작했다. 굽어진 등이 펴지고 흉터로 얼룩진 피부가 재생되어 갔다. 결혼반지로 눌려 부었던 손가락도 곱게 뻗었다. 곧 눈꺼풀이 들썩이더니 미셀이 눈을 번쩍 떴다. 다니엘도 곧이어 눈을 떴다. 싸늘하고 초점 없는 그들의 동공에서 신비의 푸른빛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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