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는 굉장히 중요한 교육의 과정이다.
대한민국 사람들이라면 거의 대부분 '평가'라는 말에 굉장히 민감할 것이다.
수행평가, 기말고사, 중간고사. 그리고 대망의 수학능력시험 까지.
아마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학생들이라면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
평가라는 말에 알레르기가 있는 거처럼 진절머리 치게 될 거다.
나도 '평가'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 중 하나였고,
평가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내게 진하게 남아있었다.
근데 교대를 갔더니 내가 평가를 하는 입장이 되었다.
우리는 평가를 받는 데에 굉장히 익숙하다. 그리고 그런 평가를 받고 반성하는 데도 익숙하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레 평가를 받아 본 입장에서 평가도 잘하겠지라고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교육대학교에 가게 되면 '초등교육'을 하기 위한 굉장히 많은 것들을 4년에 걸쳐서 배우게 되는데,
사실상 실기 혹은 교과를 지탱하는 철학이나 교수 내용에 집중되어있는 경향이 있다.
교육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모든 자원과 이론을 정리하고 계획하고 하는 것을 교육공학이라고 부르는 데,
거기에는 수업 안 설계나 평가 등이 포함되어 있다.
나는 교육공학을 잘 공부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게 중요하지, 등급으로 나누는 게 큰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도 있었고. 내가 다닌 교육대학교에서는 교육공학에 주된 교육을 하는 학교가 아니었던 편이라 더욱 그랬던 면도 있다. 그래서 평가를 제대로 공부 안 했다.
그리고 근무할 때 머리가 터져버렸다.
중등이나 고등은 잘 몰라서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초등은, 정말 여러 의미로 머리가 터진다.
요즘 초등학교는 '매우 잘함', '잘함', '보통', '노력 요함'의 4가지 단계로 나누어 성취도를 입력하게 된다.
평가를 하는 기본 골자는 학습 목표에 따른 학생의 학습 성취도를 '명확하게' 파악해 짧은 한 문장, 혹은 단계로 나누어야 한다.
그래서 초등학교 선생님은 독도 사랑 수업을 하고 독도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을 단계 별로 평가해야 한다.
독도를 사랑하는 마음을 '매우 잘함', '잘함', '보통', '노력 요함'의 4 단계로 나누어야 하는데,
과연 어떻게 나눌 것이며 어떻게 문장으로 정리하여 문서화시킬 것인가는 정말 굉장한 문젯거리다.
아이의 어떤 모습을 보고 '아, 얘가 독도를 사랑하는 마음을 완전히 가졌구나!' 하고 판단할 것인가. 하물며 독도를 사랑하는 마음을 '매우 잘'하게 가진 모습은 무엇인가?
평가는 성취 기준을 얼마나 '잘' 성취했는지 정확하고, 명확하게 해야하며, 실제적으로 해야 한다. 게다가 현재 교육계에서는 '개별화 평가'를 하고 있기에, 독도를 사랑하는 마음 수업한 후 우리 반 29명 모두에게 다른 평가 결과가 나와야 한다.
처음 교사 일을 시작할 때 특히 '독도를 사랑하는 마음 가지기.' 같은 성취 기준에 따른 평가 내용을 적는 게 굉장히 당혹스러웠다. 재미있게 독도 영상 보고 독도 그리기, 만들기를 하는 수업이 중요했던 나는 첫 해 7월, 12월 학기말 평가 입력 기간은 머리를 짜내는 작문의 시간이었다.
'독도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재미있게 만들기를 했습니다.'가 실제로 수업의 전부이더라도 같은 내용을 적어줄 수는 없으니까.
물론 그럼에도 대대손손 입에서 입으로, 파일에서 파일로 물려오는 성적 적는 방법에 대한 요령이 있고,
주변의 선배님들과 동료들의 지원이 있다면 무엇이든 헤쳐나갈 수 없는 것은 없다.
나도 이제는 '독도를 사랑하는 마음 가지기' 같은 정의적 영역이라도 평가 화법이 손에 익어 얼추 알맞은 평가 기준을 적어낼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신기한 건 수능도 결국에는 내가 했던 평가 고민의 골자로부터 탄생한다는 것이다.
고등학교까지 배웠던 각 과목의 교과 성취 기준에 따라서 이것을 성취하면 이 정도의 문제는 풀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이 문제에서 더 명확하게 그 성취기준의 이 부분만 판단할 수 있을까.
나는 초등교육이기에 수능과 큰 연관은 없지만, 결국 교육공학과 교육과정은 같은 맥락이기에
이런 고민들을 아마 한 달 동안 출제 위원님들이 뼈 빠지게 하시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공교롭게도 수능이 끝난 지 얼마 안 되어 이런 글을 쓰게 되었는 데,
INTJ 식 위로를 하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평가 도구는 그 어느 곳에서도 개발되지 않았다.
내 개성과 능력이 점수로 치환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이라면 사실 오히려 운이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점수와 등급으로 치환되지 않는 나의 능력과 개성을 스스로 점수로 치환하며 매몰되지 말았으면 좋겠다.
교육계에 몸 담고 있는 입장에서, 누가 감히 날 평가해?라는 말에 동의하고 싶다.
나도 그렇다. 내가 감히 누굴 평가해? 어떻게 평가를 해? 하는 고민을 담고 지낸다.
그러니 점수를 보고 자신을 탓하지 말고, 누가 누구를 평가해? 하는 마음으로 평가 기준과 도구를 탓하면서 마음의 짐을 좀 덜었으면 좋겠다. 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잘 맞는 평가 기준과 도구가 분명 존재할 거다.
모두를 잘 성장시킬 수 있는 평가가 자연스러워질 그날까지, 평가 주체들 모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