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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통역사 김윤정 Aug 17. 2021

[5180] 나에게 달달한 정_매화런

달리기를 배울 때 내가 배운 진리


오후 6시 23분 사당. 상담 마치고 나오는데 비 온다. 주차장 까지는 맞고 갈 만하다. 차에 앉아 시동을 켰는데 빗줄기가 굻어진다. 신난다. 카톡에 메시지를 남겼다.


'비가 많이 와서 달리기 쉴게요. 제 머리가 염색한지 얼마 안 돼서 비 맞으면 초록물이 떨어져서요...'


감독님은 백신 접종해서 쉰다고 하고, 다른 분들도 쉰다는 톡이 올라왔다. 마음이 한결 편하다. 나는 쉬는데 다른 사람이 우중에 뛰면 살짝 죄책감 비슷한 게 올라온다. '남들 하고 있을 때 너는 지금 뭐하고 있니?'라며 내면의 검열관이 비난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소화 중이야'라고 내 말을 할 수 있게 된 건 2019년 달리기를 시작하고 3주 차 되었을 때부터였다.


달리기를 쉬니 방송에서 할 이야기를 찾기 위해 예전에 쓴 글을 찾아봤다. 훈련 첫날 감독님께 얻은 교훈과 3주 차에 겪었던 내면의 방황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이건 맥락을 벗어난 말이지만 글로 기록해 두는 건 중요하다. 영상이 아무리 발달하고 음성으로 기록해 두는 것도 좋지만 글은 묘하게 힘이 세다. 오늘 페친 석헌님이 3년 동안 매일 두 쪽씩 책을 읽고 두 줄 이상 메모하며 스스로에게 나타난 변화를 기록한 글을 읽었다. 기록의 힘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나도 글을 더 적극적으로 쓰며 기록해 두고 싶은 마음이 솟아났다.



다행히 삼 년 전 기록 속에 나의 삶을 변화시킨 중요한 교훈이 남겨져 있었다.

언덕 훈련 첫날, 꼴찌를 하는 나에게 감독님은 말씀하셨다.


"앞사람을 버리세요"

"네? 앞사람을 쫓아가지 말고요?"


경쟁에 익숙한 나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편해졌다. 세상은 나를 비롯해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남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고 가르치는데 앞사람을 버리라는 말은 새로웠다. 그다음 말은 더 충격이었다. 처음에는 감독님 말을 내가 잘 못 이해해서 '힘들면 쉬어라'로 알았다. 그래 힘들면 쉬어야지. 그 간단한 진리가 새삼 고맙게 들렸다. 한주 뒤, 감독님께 힘들면 쉬라는 말이 고마웠다고 인사를 하자 더 충격적인 말을 하셨다. 힘들면 쉬라는 게 아니란다. '힘들기 전'에 쉬어야 한단다.


내 인생에서 힘들기 전에 미리 쉬는 건 사치였다. 그래서 소진이 올 때까지 몸을 혹사시키고 잠깐 쉴라 치면 속에서 욕을 욕을 해댔다. '뭐한 게 있다고 쉬냐?'라고.


힘들기 전에 쉬고, 앞사람을 버려야 내 호흡으로 뛸 수 있다. 무리하면 완주할 수 없다. 내가 편히 뛸 수 있는 호흡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완주할 수 있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에는 쉬어가자. 나보다 앞서간 사람들 결승선에 가면 다 만난다.


#달리기

#내첫풀

#마라톤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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