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정 Dec 30. 2020

브리짓 존스의 일기: 열정과 애정

그녀가 아름다운 이유

※스포주의



브리짓 존스의 일기 첫 시리즈를 본 지 오래된 최근에 


두번째 시리즈 <브리짓 존스의 일기: 열정과 애정>의 초반을 보면서 


나는 확실히 마크가 브리짓을 가지고 노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크는 여자 직장 동료와 가까이 지내며 브리짓의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직장 동료는 업무를 이유로 마크의 집에도 자주 왔다갔다 하고 


브리짓과 마크 둘만의 휴가에 따라오기까지 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마크가 브리짓을 두고 바람을 핀다고 확신했던 이유는 


정황이 명확해서라기보다는 브리짓이 그닥 사랑받을 만한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쁘고 늘씬한 외모를 타고나지 못한 브리짓 존스, 


그는 항상 다이어트와 금연에 실패하는 의지박약의 노처녀이다.


자격지심에 남자친구 주변의 여자를 경계하고 의심하며 남자친구를 곤경에 빠뜨리는데


솔직한 마음으로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브리짓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어느 것도 이루지 못한 채 그저 속절없이 세월만 흘려보내는 무능한 여자이고,


자격지심으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어른스럽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바람둥이 다니엘에게 호되게 당하고서는 또다시 그에게 넘어가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가 중반부로 갈수록 브리짓에 대한 나의 불호는 심해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크는 브리짓에 대한 사랑을 놓지 않았다.




단순히 즐기기 좋은 로맨틱 코미디이지만 영화를 보면서 썩 마음이 가볍진 않았던 것 같다.


대학 다닐 때 어느 교수님께서 말씀해주셨던 것 중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누군가의 어떤 면모가 혐오스럽고 밉다면 그것은 사실 


내가 고치고 싶어하는, 내면에 숨은 나의 면모라는 사실이었다.


그렇다. 사실 브리짓의 한심한 모습은 모두 내가 원래 가지고 있는, 내가 지독히도 싫어하는 나이다.


의지박약에, 예쁜 구석도 없고, 꿈꾸는 몽상가이며 


두루뭉술한 계획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없다.


나의 이런 면모를 너무도 싫어했다. 스스로 못나게 여기는 부분들을 고치려고 애를 쓴 결과


고쳐졌다기보다는 남들 앞에서 그런 모습을 숨기는 스킬이 많이 늘었다.


내 본연의 모습은 쉽게 바뀌지 않고, 숨기는 게 더 쉽더라.


나의 한심한 모습들을 본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꽁꽁 숨겨두고 남들 앞에서 절대 꺼내지 않았다.




영화가 후반부로 흘러가며 보이는 브리짓에 대한 마크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계속 브리짓을 사랑한다고 하는거지? 정 떨어질 때 되지 않았나? 저게 진짜 진심일까?


브리짓을 사랑하는 마크의 마음과 행동에 대한 의심이 가시지 않았는데


모르고 마약이 숨겨진 물건을 가지고 비행기를 타려다 태국 감옥에 갇힌 브리짓에게 


마크가 사무적이고 차가운 말투로 벽을 쳐버리는 것을 보고 그럼 그렇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태도는 잠시였고, 마크는 끝까지 브리짓에 대한 진심이 담긴 사랑을 보여주었다.


태국 공항에서 곤경에 빠져 있던 브리짓을 보고 그냥 지나쳤던 다니엘과 개싸움을 하고,


마크가 자신을 버렸다고 오해했던 브리짓이 사실을 깨닫고 직장에 찾아왔을 때


회의에 들이닥쳐 업무에 지장을 주는 브리짓에게 진심을 담은 프로포즈를 한다.




오래 내 안에 자리잡고 있던 하나의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는 모두 꾸미지 않은 모습 그대로일 때, 나 자체만으로 진정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브리짓이 다른 어떤 영화 여주인공보다 아름다운 이유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을 듬뿍 받기 때문이다.


껍데기를 모두 벗고 꾸며지지 않은 채로 사랑받는다니,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길래 가능한 걸까.


어쩌면 우리 모두가 브리짓의 아름다움을 내면에 품고 있을 것이다.


사람처럼 자신을 숨길 줄 모르는 고양이는 서슴없이 높은 곳에 올라갔다가 


혼자 못 내려와서 내려달라 아우성치기도 하고, 


밤새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면서 물건들을 흩뜨려 놓아 자신이 쓸고 간 자리를 티내곤 한다. 


그런 허점들이 많은 집사들이 진정 헤어나올 수 없는 고양이의 매력 포인트가 된다.


본연의 나를 책망하고 숨기는 모습보다는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투명한 모습이 훨씬 아름답지 않은가.


그 때의 내가 비로소 빛나고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게 어떤 모습이라도 말이다.



세상이 정해 놓은 기준에 스스로를 맞추느라 매시 매초 기진맥진하여 지친 사람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힐링을 얻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가의 이전글 가시나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