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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 Dec 19. 2020

가시나무

사랑을 쏟을 여유가 없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가 어릴 때 엄마가 좋아하던 노래이다. 조성모의 목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녹이는 미성이라며 엄청 좋아하셨다. 그러면서 TV에서 한 번씩 노래가 나오면 울 것 같은 슬픈 표정으로 노래에 빠져들었다. 노래 가사를 들으며 눈물짓던 엄마의 감정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에게는 어려운 노래였다. 내 속에 내가 많다는 의미, 그래서 당신의 쉴 곳이 없다는 말의 의미도 정확하게 나에게 와 닿지 않았다. 내가 많으면 자리가 좁고 시끄러워서 당신이 조용히 쉴 공간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고작이었다.




 얼마 전, 어쩌다 버스에서 나오는 가시나무 노래를 듣고 엄마가 떠올라 다시 그 곡을 찾아봤다.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살피다가 움찔했다. 가사와 관련해서 전에는 하지 않던 생각들이 솟아났다. 나는 이 노래 가사의 의미를 엄마의 삶에 빗대어 볼 수 있을 만큼 자라 있었다.


엄마의 속에는 견뎌내기 어려운 엄마가 너무나 많았다.

엄마의 마음은 내가 쉴 곳이 없던 곳이다.

엄마밖에 없던 나는 엄마의 속에 들어갈 수 없어서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살았다.




 가난한 가정의 맏딸로 태어나 영민한 두뇌를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업을 오래 하지 못하고

공장에서 세 동생의 대학을 보내느라 고생하며 일하고 돈을 벌었다.

 삶의 목적이 가정을 바로 세우는 데 있던 우리 엄마는 세 동생의 대학 등록금을 모두 마련하고 졸업시킨 뒤 모은 돈으로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살 집을 하나 마련해 줬다.

 돈 없다고 인문계 진학을 하지 말라던, 키운 값을 갚으라는 외할머니를 원망하며 손 털듯이 마련해준 집이었다.

 외할머니는 28살 엄마에게 결혼을 재촉했고, 엄마는 선으로 만난 아버지와 10년 만에 이혼했다.

 홀로 떠맡은 어린 네 남매를 키워내느라 엄마는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고된 일을 해야 했다.

 되풀이되는 노동에, 바람난 남편에 대한 원망에 지친 엄마 아래 있던 철없는 자식들 중 하나는 부모의 관심이 부족하다 느끼며 마음이 삐뚤어졌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엄마의 마음속에는 견뎌내야 할 그의 고된 삶이 가득 차 있었다.


당신의 쉴 곳 없네

나는 엄마의 마음속에서 의지할 곳을 찾지 못했다.


내 속엔 헛된 바람들로

고된 삶을 견디며 많이도 방황했을 것이다. 엄마는 우리를 내버려 두고 집을 나가는 일이 잦았다.


당신이 편할 곳 없네

방황하던 그 아래에 있던 나도 늘 마음이 불안했었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혼자서 그 고된 삶을 견뎌내느라 엄마는 마음이 메말라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그런 엄마의 마음은 모르고 그가 사랑을 주지 않는 것을 원망하곤 했었다.




 쉴 곳 없는 마음에서 삐뚤어져 자라던 어린 자식 중 하나는 다 자라서도 삶의 의미를 잘 찾아내지 못했다. 정신적으로 바로서지 못하고 한없이 방황하다 우여곡절 끝에 그럭저럭 사회에서 한 사람의 몫을 해내며 살아가고 있는 26살의 철없는 자식은 이제 와서야 겨우 지금 자신의 2년 후 나이였던 엄마가 어떻게 동생들을 키워내고 집안의 기둥이 되었으며 배신의 아픔을 삼키고 자식들을 홀로 키워냈을까 싶어 그를 경외하는 마음이 든다.

 어릴 적 나는 엄마의 마음 속에 쉴 곳을 찾지 못해 많이 외로워하고 스스로를 가여워했는데 지금은 뒤늦게 내가 아닌 그의 힘들었던 삶을 느낀다. 힘든 그에게 나의 투정이 짐이 되지 않았을까 후회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사랑을 쏟을 여유가 없던 그 때의 엄마에게 이제는 내가 포근한 쉴 곳이 되어주기 위해 따스하게 마음을 가꾸고 여유를 갖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어릴 때 겪은 결핍을 이겨내고 온전히 바로 선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여유있는 생각을 가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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