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정 Nov 16. 2020

지각생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선생님 아침마다 전화해주시고 뭐라도 꼭 챙겨 먹고 나오라고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기장에 소율이가 써둔 한마디에 눈물이 줄줄 흘렀다. 어릴 적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며 아침 일찍 엄마가 출근해버리면 나는 아무도 나를 챙기지 않는 텅 빈 집에서 스스로 나를 챙겨 등교하거나, 아니면 학교에 가지 않았다.






 학기 초 예쁘장한 외모로 친구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던 소율이는 이제 모든 친구들에게서 외면당하는 왕따가 되었다.


 인정받는 위치에 서게 되자 친구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베풀던 친절을 멈추고 이기적인 면모를 여지없이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의자 좀 앞으로 당겨 줘. 내 자리로 들어가기 힘들단 말이야."


 율이다빈이가 자신에게 던지듯 요구하는 것이 못마땅했나 보다.


  "싫은데?"


 어렵지 않은 부탁을 기분 나쁘게 거절하는 소율이의 태도에 다빈이도 화가 났다.


 "너가 그렇게 말하면 나는 기분이 나빠."


 "기분 나쁘라고 한 말인데?"


 이 사건을 기점으로 크고 작은 일에 예민하게 구는 소율이에게 친구들은 점점 거리를 두며 어울리지 않으려고 했다.


 어느 순간부터 소율이는 쉬는 시간에 엎드려 있기만 했다. 친구들의 싸늘한 반응에 더 이상 다가가지 못하고 혼자가 된 것이다.





 어느 날 체육 시간 전 아이들을 복도에 줄 세우는데 소율이는 엎드려서 나오질 않았다. 감정이 힘든 상태인 걸 짐작하고 일단 소율이를 빼놓고 아이들을 운동장으로 보냈다.


 교실로 들어와 소율이를 부르는데 대답이 없다.

대여섯 번 부르자 고개를 드는데 두 눈이 벌겋게 부어선 울고 있었다.


 둘만 남은 빈 교실에서 소율이친구들과 잘 못 지내는 것이 힘들다고 토로했다. 친구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밝게 지내려 하고 옷도 잘 입고 다니는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엉엉 울었다.


 사람들은 자라면서 타인에게 나쁘게 보이는 기질을 숨기며 사회화한다. 소율이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타고난 이기적 면모를 타인에게 완벽하게 숨기지 못한다.


 뭐가 문제겠어 너가 문제겠지. 라고 차갑게 현실을 알려주기엔 소율이가 처한 상황이 딱하다.


 재혼가정을 이루고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가정에 불화가 생긴 상태였다. 새아버지는 일은 하지 않고 놀기 바빠서 어머니가 밤늦게까지 반찬가게에서 일을 하며 두 딸을 키워내고 계신다. 두 딸은 어머니의 손길 없이 아침에 스스로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한다. 


 잘잘못을 따지는 건 미루고,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갈등을 겪는 상태이지만 가정에서 소율이의 정서적 그늘의 역할을 해 주지 못한다. 어느 한 곳 기댈 데가 없는 상황이다. 나마저 소율이에게 잘못을 돌리고 책망하면 이 아이의 마음이 어디에 의지하겠는가.


 율이가 많이 속상했겠구나. 지금 많이 힘들 것 같아. 소율이가 힘들 때 말할 데가 없으면 언제든 선생님에게 이야기하렴.


 경험이 부족한 신규 교사로서 문제행동을 하는 아이를 감싸는 말도, 차가운 환경에 놓인 아이를 책망하는 말도 섣불리 하지 못해 답답하다.





 며칠 뒤부터 소율이가 학교에 지각하기 시작했다. 늦으면 3교시를 하고 있는 11시쯤 교실에 들어오기도 했다. 학교에서 친구들은 자신을 멀리하고 가정상황도 어려워지는 상태에서 학교 가는 게 끔찍이도 싫었을 것이다.


 학교에 늦게 와서는 머리가 아프다며 보건실에 가서 누워있는 시간이 태반이었다. 교실에 있는 동안에는 친구들과 어떻게든 지내보려고 친절하고 밝게 다가가다가도 본인이 기대하는 반응이 돌아오지 않으면 금세 풀이 죽어 책상에 엎드려 있기를 반복했다.


 "사랑합니다"

 종례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이 우르르 교실에서 나가고 소율이만 또 엎드린 채로 남았다. 가까이 다가가자 고개를 든 소율이가 오늘은 무슨 억울한 일이 있었는지 울먹이며 들려주었다. 나는 가만히 들었다. 친구들이 자신을 멀리하는 것이 사춘기 5학년에게는 너무나 버거운 일이다.


  "소율아, 친구에게 친절하지 못했던 실수 때문에 힘든 시기도 잠시일 거야. 너무 조급하게 마음먹지 말고 항상 역지사지하며 친구들을 대해 주렴. 그리고 선생님이 보기에 소율이는 정말 사랑스러운 친구야. 선생님한테는 소율이가 정말 소중해."


 율이를 꼬옥 안아주었다. 아이들에게 불편한 말과 행동을 하는 친구와 같이 놀라고 강제로 요구할 수 없는 교사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나라도 아이를 사랑해주는 것뿐이었다.





 다음 날 소율이가 또 지각할까 출근 후 8시 15분쯤 소율이에게 전화를 했다.

 "소율아 40분까지 등교니까 지금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하고 집에 있는 빵이라도 간단하게 챙겨 먹고 오렴."


 율이가 전화를 받고 일찍 준비해 학교에 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누구도 자신을 반기지 않는 교실에 밝게 인사하며 들어오는 소율이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래, 소율아 일찍 왔구나!"


 이후로 매일 아침마다 소율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율이는 전화를 받고 일찍 오기도 하고 자느라고 전화를 못 받다가 1교시 중에 들어오기도 했다. 전화를 못 받더라도 매일매일 소율이에게 아침 전화를 걸었다.


 대부분의 다른 아이들은 어머니가 아침 일찍 깨워 씻게 하고 아침식사를 하게 도우시겠지만 어머니가 아침에 일 때문에 집을 비우는 소율이네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내가 어머니 대신 고작 할 수 있는 일은 전화로나마 깨우고 밥 챙겨 먹으라고 말만 던져주는 것이었다.


 교사가 온전히 가정을 대신할 수 없지만 아이가 혼자라는 느낌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든 아이는 사랑받을 자격을 충분히 갖춘 존재이다. 그저 아침에 전화 한 통일 뿐인데, 아이에게 나의 마음이 와 닿기나 할 것인가. 그저 지각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시작한 매일 아침 전화였다. 그리고 한 달 뒤 나는 소율이의 일기를 통해 아이가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내 마음은 어떤 표현으로든 아이에게 분명히 닿는다는 것을 느꼈다.


 너의 실수에 모두가 너에게 등 돌려도, 선생님은 너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줄게. 너가 변화해야 할 점은 꾸준히 이야기하겠지만 너의 마음이 힘들면 감싸줄게. 여기 너를 무조건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작가의 이전글 4 곱하기 10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