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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 Aug 07. 2021

[브런치X저작권위원회] 미운 오리 새끼

너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만 주변에 두자

 "쟤 봐. 확실히 털이 회색이야!"


 "어릴 땐 몰랐는데, 지금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얘."

 

 "왜 거무튀튀한 거야. 더러워. 안 씻어서 저런 잖아."


 "그래, 어릴 땐 우리랑 똑같았잖아. 야, 좀 씻어."


  엄마도 한마디 하십니다.

 "네가 깔끔해야 네 형제들도 너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텐데. 네 형제들이 뭐라 못하게 행동하렴."


 나는 우리 가족이 다 함께 물가로 산책을 나갈 때 맨 뒤에서 그들을 따라갑니다. 물에 들어갈 때를 노리기 위해서입니다. 가족이 물에 몸을 담글 때 나도 들어가 잽싸게 털을 마구 씻어냅니다. 앞에서 그러다 움직임이 늦어지면 뒤에 있는 형제들이 화를 내기 때문에, 나는 그들의 맨 뒤에 떠서 회색 털을 물에 몇 번이고 씻어냅니다.


 나도 너희 속에 살고 싶어.


 밝게 빛나는 건 노란 털뿐만이 아닙니다. 그들이 함께 어울려 장난치고 서로를 챙기는 모습에서도 빛이 납니다. 나는 그들의 챙김을 받지 못합니다. 더러운 색의 털을 갖고 있으니까요. 잿빛 털 색깔뿐만 아니라 내 관계도 우중충합니다.


 뭐가 잘못돼서 그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걸까. 생각해 보면 더 힘듭니다.


 내 털 색깔이 회색인 것은 나 때문이야. 모두가 그렇게 말하잖아. 내가 안 씻어서 그렇다고. 깨끗이 씻으려고 노력해도 안 되는 건 내가 그들만큼 능력이 없어서 깔끔하게 씻지 못하기 때문이야. 어쩜 이렇게 겉모습도 못난데 가진 능력도 보잘것없는지. 정말 별로다 나. 그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마땅해. 나도 내가 사랑스럽지 않은걸.


 "네 털 색깔 봤니? 더 어두워지잖아. 좀 씻으라고! 엄마, 쟤랑 하루 종일 같이 다녀야 되는 게 너무 싫어요!"


 "미안."


 엄마는 묵묵부답입니다. 나는 더 보호받을 가치도 없습니다. 내가 못나서 그래요. 어쩜 그러니 넌. 정말 한심해.



 여느 때와 같이 가족들과 물가로 산책을 나간 날, 갈대 줄기 사이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털 색깔이 회색이라니, 완전 멋지다!"


 흠칫 놀라 말소리가 들리는 곳을 돌아봤습니다. 수달이 서 있었습니다.

 

 "안 씻어서 그래. 멋진 것 아니야."


 "그래? 그래도 멋진데? 안 씻었는데도 윤기가 줄줄 흐르잖아."


 내가 가족들 사이에서 기죽어있는 걸 눈치채고 격려해 주려고 저런 말을 하나 봐요. 고맙지만 너무나 부끄럽네요.


 "아니야, 고마운데 안 멋져."


 수달의 칭찬을 받아치는 사이 가족들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가족을 잃었어요.


 "야 너 가족들 다 갔다. 나랑 놀자!"



 수달은 헤엄치는 걸 좋아합니다. 물속으로 쑥 들어가더니, 3초 만에 저 멀리 갈대가 끝나는 곳까지 가서 고개를 내밀고 다시 3초 만에 내 앞으로 돌아옵니다.


 "내 물갈퀴 봐. 멋지지? 이것 덕분에 물을 잔뜩 밀어내며 앞으로 빨리 나갈 수 있어. 네 물갈퀴도 한 번 보자."


 "너 진짜 멋지다. 근데 내 물갈퀴는 작고 얇아서 너처럼 빠르게 움직일 수 없어."

 

 "뭔 소리야. 내 물갈퀴가 더 작아. 내 물갈퀴 무시하지 마!"


 "미안. 무시하려던 거 아니야."


 "이거 봐. 내 것보다 훨씬 크고 튼튼하게 생겼잖아! 내 물갈퀴도 장난 아닌데, 네 것이 최고 멋진데?"


 내게 자신감을 주려는 듯한 수달의 말이 고마웠지만 내 생각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고마워. 근데 네 물갈퀴가 진심으로 멋지다."


 "뭔 소리야. 네 것도 진심으로 멋져!"



 수달과 며칠 동안 물가에서 함께 놀았습니다. 그동안 가족이 나를 찾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더 볼 수 없었으니까요. 수달은 나의 회색빛 털을 사랑해 줬습니다. 나의 털이 비를 내려주는 하늘처럼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대요. 자기가 비 오는 걸 좋아하니까 아무렇게나 가져다 붙입니다. 상대방이 사랑해 주고 마음을 쏟아주는 나의 모습을 내가 사랑하지 않는 게 미안해서, 나도 차근차근 내 모습을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달의 말처럼 나의 회색 털은 모든 생물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비 오는 하늘 같습니다. 윤기가 나고 사랑스러워요. 수달과 함께 물가를 누비면서는 나를 싫어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수달과 물길을 타고 둥둥 떠내려가다가, 깊은 곳에 있는 호수를 발견했습니다. 그곳에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백조가 있고, 또...


 "쟤 봐, 나랑 똑같이 생겼어!"


 "진짜네! 푸하하. 네가 저기에 여러 마리 있어!"


 백조의 뒤를 따르는 수많은 나를 발견했습니다. 윤기 나는 회색 털의 오리들이었습니다.


 "아니 너 오리가 아니라 백조였잖아! 푸하하. 지금까지 네가 오리인 줄 알고 살았던 거야? 백조인 줄 알았으면 진작 당당하게 다른 동물들을 꼬시고 다녔을 텐데, 억울해서 어쩐담!"


 나는 초연히 말했습니다.

 "아무렴 어때!"


 내가 커서 백조가 되든 오리가 되든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내가 우아한 백조이든지 못난 오리든지 전혀 개의치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해 주는 수달이 옆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삶의 행운은 내가 백조였다는 사실이 아닌, 내 모습을 사랑해 주는 수달을 만난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는 누군가의 가치가 주변 사람의 평가에 의해 결정되는 경향이 있지요. 주변 사람의 평가에 휘둘리지 말고 스스로 강인한 사람이 라고들 하지만, 사회적 존재인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들의 평가에 따라 나를 깔아뭉개버릴 때가 있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요소들을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일차적으로 필요하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내 주변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구나 사랑받아 마땅해요. 나를 사랑스럽게 쳐다봐주는 사람들만 내 곁에 두고 내 본연의 아름다움을 지켜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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