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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 Aug 09. 2023

2023년 7월 일상

세상을 보는 해상도 높여가기

7.1.(토) 영웅 뮤지컬 관람

 뮤지컬 영화를 접하고 난 후 실제 공연이 너무너무 보고 싶던 차에 4월 말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공연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바로 예매를 했다. 당시 손가락으로 떠나보낸 10만 원의 보상, 바로 이 날!

 세 번 울었다. 설희가 명성황후를 그리워하며 부르는 노래에서(OST 당신을 기억합니다 황후마마여), 링링이 죽었을 때 그를 안고 울던 유동하를 보면서, 누가 진짜 죄인인지 묻는 안중근의 처절한 절규에서(OST 누가 죄인인가). 특히 정성화가 부르는 '누가 죄인인가' 넘버에서는 귀에 직접 전달되는 그의 목소리가 영화를 통해서 전달할 수 없던 감정선을 여실히 드러내 감동이었다.


 오래된 9년 지기 좋아하는 친구랑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서 영웅 넘버들을 틀어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게 즐거웠다. 



7.8.(토) 여름날, 우리

 서면에서 인문학 강연을 듣고 너의 결혼식의 리메이크작 여름날 우리를 보러 갔다. 한 사람만 평생 보는 남주.. 이건 판타지야.. 가정폭력을 일삼던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여주를 보면서 생각했다. 나도 해준 것 없는 아버지를 챙기게 될까? 나이를 먹을수록 진정 마음 깊은 곳에 닿아 정서적 안정을 줄 수 있는 관계는 가족이 유일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불안한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내가 어릴 적 외도를 하고 우리를 떠난 아버지도 아버지라서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부모를 고른 게 아닌데, 억울해하고 미워해봤자 자기혐오와 연민만 짙어지니 이젠 나를 갉아먹는 생각들을 내려놓을 때가 되지 않았나. 그땐 어쩔 수 없었겠지. 어머니와 아버지와의 관계는 자식과 부모 관계와 별개야.라고 말하던 고등학교 선생님, 신규 때 부장님.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나 생각했지만 어른들 말씀이 맞았나 봅니다. 핏줄은 별 수 없나 봅니다. 이해와 용서가 답인가 봅니다.



7.12.(수) 방학식

많은 것을 주지 못해 미안한 내게 늘 더 많은 것을 떠 안겨주는 아이들

 늘 아이들을 데리고 했던 많은 활동들, 함께 한 경험들을 되짚게 하는 방학식인데, 이번 방학식에 아이들 얼굴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왜 이렇게 해준 게 없지.. 였다. 학기 중 매번 출장을 쓰고 신규연수를 다니고, 전문적 학습공동체 활동을 하고, 지능형 과학실 탐방을 다니고 컨설팅도 받고.. 수업준비를 해야 할 방과 후 시간에 매번 출장을 불려 다니느라 수업 준비는 커녕 부진한 아이들 남겨서 지도도 못 하고, 출장을 다녀와서 이미 떠난 학교를 다시 들어가 준비를 해도 시간은 짧고.. 짧은 1학기 진도를 빼는 데만 해도 수업시간 내내 숨도 못 쉬게 바쁘고, 그 와중에 외부강연은 또 많아서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는 시간이 굉장히 짧게 느껴진 한 학기였다. 아쉬운 마음만 가득.. 2학기에는 여유롭게 수업 연구도 하고 여러 생각할 거리를 나누면서 아이들과 소통하고 함께 성장하고 싶다.



7.19.(수) 고등학교 오랜 친구와의 만남

 고등학교 친구 결혼식 때 만나게 된 반가운 얼굴. 선뜻 다음에 꼭 한 번 같이 밥 먹자고 말하는 친구 덕에 마산에서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학 이야기가 주된 관심사이던 우리가 이제는 결혼, 주식, 부동산 같은 이야기를 하게 되는구나! 저녁을 먹고 동읍의 카페 테라스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한참 뒤 사진을 다시 봤을 때서야 그때의 하늘이 노을질 즈음 강렬한 분홍빛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아래 모든 피사체가 어찌나 아름답던지. 지금의 하늘, 그 하늘빛 아래 우리가 아름답다는 건 당시는 모르고 훗날 그 순간을 되돌아봤을 때에야 아는구나. 순간엔 모르고 지나지만 돌이키면 우리는 참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구나.



7.21.(금) 야구 직관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어려운 야구 규칙. 사실 경기보다 재밌는 건 응원이고, 일면식 없는 사람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마음, 같은 동작으로 동화된다는 게 직관의 큰 매력이다. 이닝 중간 쉬는 텀에 야구 규칙에 빠삭하다는 김민석이 낸 퀴즈를 맞히면서 야구 규칙을 하나 더 알아간다. 주자가 타구에 맞으면 아웃이야! 아직 몰라도 한참 모른다. 야구라는 새로운 세계를 알아가는 것도 세상에 대한 해상도를 높이는 나의 방법. 내가 스며들 세상이 너무 많아! 든든한 전준우의 홈런으로 시원하게 이겨서 기분 최고였다.



7.28.(금) 거제로 잠시 귀향

 내가 정말 진짜 최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날. 세상엔 다정함이 전부라는 걸 일깨워준 사람들. 이타적인 사람들이 제일 무섭다며, 내가 그들에게 완전히 종속되게 만들어 버린다며 떠나는 내가 엉엉 울게 한 사람들. 

 거제에서 함께한 선생님들을 만나기 전에는 오랜만에 흥남 해수욕장에 차박을 하러 갔다. 주차를 해 두고 해수욕장을 걸으며 물결처럼 잔잔한 노래를 들었다. 바닷물은 따뜻하고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 물은 차가웠다. 트렁크를 열고 바다를 쳐다보고 있으면 꼭 살아있는 전시 작품을 보는 것 같다. 시각에 정적으로 스미는 걸로 그치지 않는 작품이다. 짠내도 맡으라고, 물결소리도 들으라고, 바람도 느끼라고. 그리고 일렁이는 파도의 움직임을 보라고. 살아있는 것처럼 오감을 자극하며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다음 날 편의점에서 라면과 김밥으로 아침을 때우고 구조라 해수욕장에 패들보드를 타러 갔다. 스파르타 강사님과 함께 정석으로 타는 법을 배우고 같은 시간대에 예약한 부부와 함께 윤돌섬으로 떠났다. 스노클링 장비도 준비해 갔지만 날이 안 좋아 바다가 너무 뿌옇게 흐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부부와 함께 다니며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거제에 온 이야기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근처 목욕탕에서 씻고 만나기로 한 선생님들을 만나 학동 해수욕장으로 갔다. 딱 작년 이맘때쯤 함께 학동 해수욕장을 갔었는데. 매년 이렇게, 오래오래 내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




 7월 한 달 함께한 책은 파친코 2이다. 완전히 서사에 빠져들게 만드는 자극적이고 안타까운 상황들. 작가는 직접 겪지 않았지만 치밀하게 이야기를 준비했다. 현실성을 구현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했다는 작가의 말을 읽고 글 쓰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역량으로 많은 양의 정보를 수집하고 처리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남들이 쉽게 닿을 수 없는 창의적 사고와 좋은 문체도 중요한 요소이지만 말이다.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이 너무 아쉬운 시기. 나는 모든 것을 경험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젊음이 영원하지 않기에 더 부지런히 세상과 부딪치는 모든 설레는 순간들을 즐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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